[뉴스토마토 명정선기자]미국과 일본은 위기 이후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완화를 실시해왔다. 양국은 경기 회복을 위해 같은 선택을 했지만 그 결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현재 미국은 경기회복을 바탕으로 출구전략을 고려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디플레이션 탈출을 목표로 또 다시 과감한 금융완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 미국은 상처가 아물어 가고 있는 데 반해 일본은 응급조치조차 끝내지 못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금융완화 과정에서 미국은 민간자생력을 회복하는 등 구조개혁이 동반됐지만 일본은 그렇지 못했다는 점. 미국과 달리 일본은 위기에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 다른 결과를 낳았다고 진단했다.
◇같은 선택 다른 결과 왜? 日, 초기대응 ‘미흡’
전문가들은 금융위기 이후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완화와 지난해부터 실시된 아베노믹스를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아베노믹스의 금융정책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본이 1990년대 이후에도 시행됐던 새로울 것 없는 정책이다.
문제는 1990년대부터 일본은 경기를 회복시키지 못하고 양적완화와 제로금리라는 금융정책을 거듭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방식으로 돈을 풀었던 미국이 현재 출구전략을 고려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선택은 같았는데 결과는 왜 달라졌을까? 전문가들은 일본은 미국과 달리 초기 대응이 신속하지 못했다는 점을 주목했다. 미국의 금융위기 초기 대응을 위한 양적완화는 ‘헬리콥터 살포’에 버금갈 정도로 공격적이었던 반면, 일본은 처방이 미약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미국은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부터 지금까지 본원통화 누적증가율은 133.3%에 달한다. 주목할 점은 늘어난 통화량의 절반 이상이 위기가 시작됐던 2008년에 집중 공급됐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당시 오바마 대통령도 “우리가 미국의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 대해 행동을 취하는 것을 늦추면 빠져나가기 어려운 악순환을 창조해놓는 것”이라며 강력하고 신속한 대응을 강조했다.
반면, 일본은 과감하고 빠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는 1990년부터 1999년까지 본원통화 누적증가율은 61.17%에 불과했고 특히, 초기였던 1990년에는 통화 누적증가율이 7.64%로 전체 통화량 공급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위기 판단 정도에서 일본 정책당국은 위기를 세계경제 충격보다 국내경제 문제로 인식했다”며 “따라서 이에 따른 처방도 미약했다”고 지적했다.
◇日 잃어버린 10년 vs 美 살아나는 실물 경기
위기 당시 신속하고 과감하지 못했던 대응의 차이는 두 나라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미국은 가계와 금융부문의 부실이 마무리되어가면서 정상 수준의 경제성장을 위한 발판을 다지고 있는 반면, 일본은 15년간 이상 디플레이션을 벗어나지 못하는 장기 불황을 경험하게 됐다.
미국의 1분기 미국 소비지출은 전분기 대비 3.2% 증가했으며 위기의 발단이었던 주택시장은 1년 넘게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가계 부문의 부실도 상당부문 해소됐다는 평가다. 뉴욕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말 미국 가계 부채 규모는 11조2000억달러로 정점을 이뤘던 2008년 3분기 12조7000억달러에서 상당폭 감소했다. 이는 또 2006년 이후 최저 수치다.
신용등급 강등이란 굴욕을 안겨줬던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최근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상향 조정한 것이나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경기회복을 근거로 출구전략을 고려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도 미국 경기회복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여겨진다.
◇자료제공=IMF, 일본 내각부, FRED
반면, 일본은 1991년부터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경기가 침체되고 이후 거듭된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2001년까지 경제성장률이 평균 1.1%에 그치는 장기침체를 경험했다.
이후에도 일본은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공공지출을 늘렸지만 불안한 가계와 기업들은 지출을 늘리지 않았고 이로 인해 경기가 침체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당시 일본은행 총재였던 시라카와 마사아키도 “일본은 1990년대와 같은 상황에 직면했지만 과감하고 재빠른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일본은 적절한 경제성장이 이뤄지지 않는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아베노믹스 "이번엔 달라"..의구심 '여전'
지난해말 정권을 잡은 아베 총리가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공언한 것도 이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다.
실제 지난해부터 실시한 미국의 3차 양적완화와 아베노믹스 이후 금융완화를 비교해보면 강도나 규모면에서 아베노믹스가 우세하다.
일본은행은 지난해 9월부터 지난 4월까지 본원통화를 20.3%, 국채보유량을 38.9% 늘린 반면, 미 연준은 각각 15.7%, 21.5% 확대했다.
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아베노믹스가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누적된 지출 확대에 따른 부채부담과 경직된 경제 구조로 인해 저성장 고리를 끊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의 국가부채 비율은 106.5%인 반면, 일본은 237.9%에 달한다.
국채에 대한 재정의존도 역시 미국이 30.7%로 49%인 일본에 비해 양호하다. 이렇다 보니 이자부담 비율도 6.5%, 10.9%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결국 과잉 양적완화와 정부 지출로 빚이 이미 한계에 달한 상태여서 아베노믹스가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 문제는 양보다 질(質)..관건은 '구조개혁'
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에 대해 구조개혁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글로벌경제실장은 “양적완화는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필요한 구조적인 정책을 취하기 위해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한다”며 “그 시간 동안 미국은 민간에 쌓였던 금융과 가계의 부채를 많이 줄였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아베 정권은 양적완화로 조성된 여건을 구조개혁을 위한 기회로 삼아야만 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디플레이션을 탈피하기 위해선 민간 수요 창출을 우선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경우 양적완화와 산업정책을 병행하며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뤘다”며 “성장전략을 통해 민간 수요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경기부양책처럼 아베노믹스 역시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선영 아이비토마토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