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명정선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시장 달래기는 없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결국 시장의 기대를 저버리고 양적완화(QE)축소를 언급한 것이다.
양적완화를 유지한다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성명에 안도했던 금융시장은 기자회견 직후 흔들렸다. 국채 금리와 달러는 가파르게 상승했고 증시는 낙폭을 확대했다.
전문가들은 버냉키 의장이 보다 명확하게 자산매입 축소에 대한 입장을 밝힌 만큼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면서도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버냉키 “경기회복세 지속..양적완화 중단 고려”
◇벤 버냉키 美연준 의장(사진제공=유투브)
연준은 19일(현지시간) FOMC회의를 마치고 낸 성명에서 초저금리 기조와 매월 850억달러 규모의 자산매입 등 기존 부양책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전망에 따라 자산매입 규모를 확대하거나 축소할 준비가 돼 있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여기까지는 시장이 예상했던 바였다. 문제는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나온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의 발언이었다.
버냉키 의장은 “경제가 지속적으로 개선된다면 올해 말부터 자산매입을 줄일 수 있으며 2014년 중반에는 중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준 의장이 출구전략의 구체적인 시기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버냉키 의장의 이 같은 발언은 미 경제의 뚜렷한 회복세에 기인한다.
FOMC는 성명서에서 "실업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나 노동 시장 상황이 최근 몇 달 간 개선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FOMC는 올해 실업률이 7.2~7.3% 수준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앞서 3월에 전망한 7.3~7.5%보다 낮아진 것이다. 내년 실업률 전망도 당초 6.7~7.0%에서 6.5~6.8%로 낮췄다. 그 만큼 연준의 노동시장에 대한 전망이 밝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기준금리 인상은 당장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FOMC는 자산매입 종료와 실제 기준금리 인상 시기 사이의 시간 차이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금리 인상은 먼 미래의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업률이 6.5%까지 하락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부분의 위원들은 첫 번째 인상 시기를 2015년 정도로 전망했다"고 덧붙였다.
조지 러스낵 웰스파고 투자전략담당 이사는 "연준이 시장에 양적완화 축소에 대한 신호를 주면서도 너무 충격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균형을 맞추려고 했다"고 말했다.
◇예상보다 강한 버냉키 발언에 금융시장 ‘휘청’
그러나 금융시장은 예상보다 강한 버냉키 의장의 발언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FOMC회의 성명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뉴욕증시는 기자회견 직후 1% 넘는 급락세를 나타냈다.
국채 가격도 급락했다.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버냉키 발언 직후 2.25% 급등(가격 급락), 15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우라 테츠야 미즈호증권 수석 채권스트래티지스트는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 시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서프라이즈였다”며 “채권시장을 둘러싼 투자심리가 약화된 상황이어서 불안감이 빠르게 확산됐다”고 말했다.
외환시장도 마찬가지였다. 달러화는 급등세를 보였고 호주달러를 비롯한 신흥국 통화 가치는 급락했다.
달러·엔 환율은 전일대비 1.18% 오른 96.458엔에 거래를 마쳤고 유로·달러 환율은 0.72%내린 1.3285달러를 기록했다. 달러가 엔과 유로대비 모두 강세를 보였다는 얘기다.
반면, 상품 통화로 간주되는 호주달러는 이날 달러대비 0.9281달러까지 하락하면서 2010년 9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달러 대비 헤알화 환율도 전일 대비 1.9% 오른 2.2247헤알을 기록했다.이는 2009년 4월 이후 4년 만에 최고 수준이며 그 만큼 브라질 헤알화 가치가 급락했음을 의미한다.
씨티그룹은 “연준 출구전략을 계기로 신흥국 금융시장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며 “멕시코, 브라질, 인도, 호주 등 통화가치 하락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 "변동성 확대 불가피..장기적으론 약(藥)"
이번 FOMC회의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전문가들은 일단 FOMC 회의가 열리기 전에 비해 불확실성이 줄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히라노 켄이치 타치바나 증권 컨설턴트는 “연준이 언젠가 자산매입을 축소할 것이란 우려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졌던 게 사실이다”며 “이번 회의에서 QE 축소시기가 명확하게 제시된 만큼 이에 대한 불확실성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으로 시장 변동성 확대는 지속될 전망이다. 실제 뉴욕증시 '공포지수'로 부르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는 이날 16.64로 한달 전 12.45에 비해 33.7%나 급등했다.
러스낵 웰스파고 이사는 "연준이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면서 "시장이 긴축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줘야 하는데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연준의 출구전략이 장기적으로는 시장에 약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양적완화 축소 근거가 긍정적인 경제전망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브라이언 레빗 오펜하이머 펀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은 시간이 갈수록 경기가 개선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며 “금리정상화의 과정은 길고 먼 과정이겠지만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주식시장의 펀더멘털 측면에서 보면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투자자들은 정책이 바뀌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지만 정책 변화는 거시경제가 개선되고 있다는 환경을 수반하는 만큼 주식시장을 둘러싼 여건은 대체로 양호한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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