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필현기자] 논란과 갈등의 한 해였다. 시장형실거래제 재도입 논란은 올 한해를 관통하는 제약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급기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오락가락 행보에 사태가 더욱 악화되며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동아제약(구)과 대웅제약이 관여된 리베이트 파문은 제약사 전체의 이미지를 추락시켰다. 제약계가 영업관행임을 항변하다가 국민적 공분만 커졌다. 일반 의약품과 제네릭에 의존하면서 정부당국과 의사들에 대한 의존도는 한층 심화됐다. '을'도 아닌 '병'이나 '정'으로의 후퇴는 신약 개발을 외면한 제약계 스스로에 대한 단죄였다.
시가총액 4조원에 이르는 코스닥 부동의 1위기업인 셀트리온의 매각 발표는 시장 전체를 뒤엎는 메가톤급 위력을 발휘했다. 서정진 회장이 공매도에 대한 관계당국의 부실한 감시를 질타하면서 괘씸죄에 걸렸고, 검찰수사로까지 이어졌다. 주가에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인 자책도 컸다는 분석. 그의 보유지분 전량 매각 약속은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과정 속에서도 제약업계는 약가인하 파고를 넘어 실적 회복세로 돌아섰다. 약가인하 2년여 만이다. 대내외 경기 침체에 사실상 산업계 전 업종이 시름하고 있는 가운데 제약업계는 건재함을 과시했다. 최씨 고집으로 불리던 최수부 광동제약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로 제약업계 전체가 깊은 슬픔에 잠기기도 했다.
수확과 비전도 있었다. 종근당은 토종신약 ‘듀비에정’을 허가 받으면서 글로벌 신약 탄생을 예고했다. 국내 20호 신약으로 또 한 번의 쾌거를 이뤄냈다. 유한양행은 100년이 넘는 제약 역사상 사상 처음으로 매출 1조원 돌파가 유력시된다. 부동의 시장 1위였던 동아제약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 그룹이 분할되면서 그 공백을 유한양행과 녹십자가 메우고 있다.
정부는 세계 10대 제약강국 도약을 목표로 중장기 청사진을 내놨다. 신약개발에 역량을 집중, 제약사들의 글로벌화 진출을 뒷받침한다는 전략이다. <뉴스토마토>는 2013년 제약업계 한 해를 마감하면서 사안별로 주요 10대 뉴스를 선정, 발표한다. 올 한 해 뉴스토마토를 메운 제약계 이슈를 토대로 제약계 원로와 해당학계의 자문을 구했다.
<뉴스토마토 선정 2013 제약 10대 뉴스>
①시장형실거래 재시행 논란
②약가인하 파고 넘어 회복세
③상위제약사 잇단 지주회사 전환
④동아-대웅 리베이트 파문
⑤최수부 광동제약 회장 타계
⑥셀트리온 매각 발표 파장
⑦제약-도매 유통마진 충돌
⑧토종 20호 신약 ‘듀비에정’ 허가
⑨유한양행 제약계 최초 매출 1조 탄생 유력
⑩정부 세계 10대 제약강국 도전 청사진
◇문형표 장관 ‘오락가락’ 행보에 끝내 파국
의료기관이 제약사로부터 의약품을 보험약가보다 싸게 구입할 시 차액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돌려주는 시장형실거래 재도입 논란은 올 한 해 내내 제약업계 ‘뜨거운 감자’였다. 급기야 문형표 복지부 장관의 오락가락 행보가 사태를 악화시켰다.
문 장관은 지난 16일 한국제약협회를 전격 방문 “시장형실거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며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제도 시행이 잠정 보류됨은 당연한 듯 보였다. 상황은 하루 만에 급변했다.
다음날인 17일 복지부는 문 장관의 발언이 “예정대로 시장형실거래를 시행하고, 이후 협의체를 만들어 문제된 부분에 대해 제도를 보완하자는 의미였다”고 해명하자 제약계는 즉각 반발했다. 양자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가운데 서로를 향한 신뢰마저 무너져 내렸다.
뒤통수를 맞은 제약협회는 복지부가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며, 협의체 구성 제안의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협의체 참가도 전면 거부했다. 제약계는 대정부투쟁 외에 사실상 대안이 없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시장형실거래 재시행은 내년 2월이다.
◇상위제약사 3분기 실적 ‘양호’..약가인하 2년만에 ‘회복세’
유한양행, 한미약품, 대웅제약 등 상위제약사들이 되살아났다.
지난해 일괄약가인하 직후 반토막났던 영업이익이 2년여 만에 회복세로 돌아섰다. 유한양행과 대웅제약은 다국적제약사들과의 공동마케팅으로, 한미약품은 국내최초 개량신약 ‘아모잘탄’의 성장이 주효했다.
상위제약사 10곳 중, 녹십자만 빼고는 모두 성장세를 이어갔다. 사실상 약가인하 파고에서 벗어났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영업이익과 비교해 봐도 전체적으로 20% 가까이 상승했다. 대내외 경기 침체로 산업계 전체가 울상인 것과는 대조된다.
제약업계는 그래도 완전 회복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며 신중론을 펴고 있다. 3분기 성장세는 수치상의 성과일 뿐, 수익률을 따져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제약계의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시장형실거래 재시행에 대한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함으로 해석했다.
◇잇단 지주회사 전환..지배구조 강화 목적
일동제약이 지난 10월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한 기업분할을 이사회에서 통과시켰다. 제약업계 7번째 지주회사 전환이다. 앞서 녹십자, 대웅제약, JW중외제약, 동아제약, 한미약품, 종근당 등은 이미 지주회사 전환을 마무리했다.
이들 제약사들은 “진정한 글로벌 제약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절차”라며 “책임경영과 전문경영 체제를 확립해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이유를 대고 있다.
하지만 2세 경영승계를 위한 수순밟기라는 지적에 설득력이 쏠리고 있다. 대부분 오너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상위 제약사들이 2·3세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방편으로, 동시에 경영권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분석이다. 결국 궁극적 목적은 지배구조 강화와 직결돼 있다.
이는 경영권을 둘러싼 각종 잡음에 시달린 해당 기업의 수순으로도 당연해 보인다. 특히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틈타 지주사 체제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대의명분도 적절하다. 동아제약과 대웅제약 등은 하나같이 경영권을 둘러싼 난투로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불법 리베이트 여전..대웅제약·동아제약 파문
대웅제약이 지난 10월24일 검찰로부터 전격 압수수색을 받았다. 수십억원의 불법 리베이트를 의사들에게 뿌린 혐의였다. 리베이트 제공 규모와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윤영환 회장의 2세간 경영권 갈등 과정에서 내부인사가 제보를 했다는 설이 파다하게 펴져 있다.
앞서 동아제약(구) 역시 수백억원의 불법 리베이트를 뿌리다 검찰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야만 했다. 전직 영업사원이 리베이트 장부를 검찰에 넘기면서 전격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파장은 컸다.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의사들은 최대 3000만원의 벌금형과 수천만원에 이르는 리베이트 제공 금액에 대한 추징형을 선고 받았다.
특히 동아제약 리베이트에 연루된 의료계가 법원 판결에 크게 반발하면서, 리베이트 이슈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대한의사협회는 1심에 불복, 항소를 제기했다. 대한의원협회는 “동아제약 약을 처방하지 말라”고 긴급공지했다. 동아제약으로서는 매출 하락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제약계 안팎에서는 쌍벌제 도입 과정에서 한미약품이 의사들로부터 찍힌 데 이어 동아제약까지 집단따돌림 대상에 오르자 불만이 극에 달했다. 자신의 이해를 챙기다 결국 법 앞에 놓인 처지에서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책임을 제약계로 돌리고, 보복에 나선다는 주장이다. 여론은 제약, 의사 양측 모두에 싸늘하게 돌아섰다.
◇제약 ‘큰 어른’..최수부 광동제약 회장 타계
최수부 광동제약 회장이 7월24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최 회장은 강원도 평창군 한 골프장 라커품에서 갑자기 쓰러져 생애를 마감했다. 제약계는 충격과 함께 깊은 슬픔에 빠졌다.
품질에 대한 ‘최씨’ 고집으로 광동제약을 일군 최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 소식에 제약계는 깊은 애도를 보냈다. 업계 ‘큰 어른’으로서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살뜰히 챙기며 제약업계 발전을 위해 묵묵히 매진했던 그였기에 비통함은 더욱 컸다.
박구서 JW홀딩스 대표는 “불모지였던 한방의 과학화를 선도했다”며 “국내 제약산업 선구자였던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최 회장의 죽음을 애도했다. 전통 한방을 접목시켜 제약의 변화와 선도를 이끌었던 고인에 대한 애도 물결이 7월 내내 제약계에 이어졌다.
◇코스닥 시가총액 1위..셀트리온 매각 발표 파장
지난 4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 자신의 보유지분 전량을 매각하겠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한다. 서 회장의 지분 가치는 1조5000억원을 상회한다. 투기세력의 공매도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관계당국의 철저한 감시도 촉구했다.
서 회장 발언은 이내 시장을 뒤흔들었다. 관계부처와 정치권에서는 긴급히 진상 파악에 나섰다. 새누리당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긴급점검을 금융위원회에 요청했고, 셀트리온 소액주주들은 과도한 공매도를 방관한 감독당국을 직무유기로 고발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이 또한 서 회장이 주식시장을 움직이기 위한 의도된 정략적 발언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발표 당시 자신의 보유지분 전량을 유럽 소재 글로벌 제약사에 매각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현재는 경영권은 둔 채 일부 주식만 매각하는 쪽으로 방향이 선회했다. 서 회장은 현재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 과도하게 주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당국의 신경을 건드린 대가라는 해석도 있다.
◇제약-도매 유통마진 정면충돌
제약업계와 도매업계가 유통마진을 놓고 정면충돌했다. 업계 특성상 의약품은 제약사가 생산하지만, 유통은 도매업계가 전담한다. 도매협회는 유통마진으로 8.8%를 요구한 반면, 갈등의 당사자인 한독은 최대 6.5%까지 주겠다고 맞섰다.
결국 8.3%로 양측은 합의했다. 제약업계 최대 현안인 시장형실거래가 등 주변 여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제약과 도매 간 갈등이 장기화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특히 밥그릇 싸움에 제약협회와 도매협회가 끼어들면서 양 협회는 조정은커녕 갈등의 중심에 섰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충돌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도매협회가 저유통 마진을 주고 있는 제약사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투쟁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위제약사로까지 싸움이 확대될 경우 양측간 전면전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토종 신약 ‘듀비에정’ 허가..글로벌 신약 탄생 기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7월 인슐린 비의존성 당뇨병치료제로, 인슐린의 체내 작동을 개선하는 ‘듀비에정’을 허가했다. 이 치료제는 종근당이 국내 순수기술로 개발한 토종신약이다. 국내 20번째 신약으로 기록됐다.
‘듀비에정’은 제2형 당뇨병 환자에게 단독으로 투여하거나, 기존 당뇨병 치료제 단독요법으로 충분한 혈당조절을 할 수 없는 경우 병용투여할 수 있다.
제약계도 환영했다. 대내외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연구개발 투자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종근당의 이번 토종신약 탄생 성과를 계기로 국내 제약산업 발전은 물론, 나아가 글로벌 신약 탄생을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국내제약 100년사를 되돌아보면 토종신약 20개는 여전히 초라한 성적표다. 연구개발비가 적게 드는 일반의약품 개발에 집중한 나머지, 전문의약품 개발에 소홀하면서 토종신약은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다.
◇유한양행, 제약계 최초 매출 1조 탄생 ‘유력’
유한양행이 제약 100년사에서 업계 최초로 연 매출 1조원을 올릴지도 주목된다. 60년간 부동의 1위를 고수했던 동아제약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그룹이 분할, 그 공백을 유한양행과 녹십자가 메우고 있다.
올 초만 해도 동아제약의 매출 1조원 돌파는 기정사실로 굳어졌었다. 하지만 지난 4월 지주사인 동아쏘시오홀딩스, 동아ST, 동아제약으로 분할되면서 매출 1조원 달성의 바통을 유항양행에게 넘겼다.
유한양행은 3분기까지 누적매출 6734억원을 기록했다. 제약업계 특성상 4분기 매출이 가장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업계 첫 1조원 매출이 유력해 보인다. 유한양행은 다른 제약사들과 달리 다국적제약사들과 다수 품목의 공동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제품을 국내로 들여와 영업과 판매를 담당하며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정부, 세계 10대 제약강국 도전 청사진 제시
정부는 오는 2017년까지 글로벌 신약 4개 출시를 목표로, 총 5000억원의 연구개발비를 쏟아 붓는다. 이를 통해 의약품 수출 11조원을 달성, 세계 10대 제약강국으로 올라선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제1차 제약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주요 핵심과제로는 ▲R&D 확대를 통한 개방형 혁신 ▲제약과 금융 간 결합 ▲우수전문인력 양성 ▲전략적 수출지원 ▲선진화된 인프라 구축 등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새 정부 국정과제로, 2020년까지 세계 7대 제약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한 ‘새 정부 미래창조 실현을 위한 제약산업 육성·지원’ 법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일단 제약계는 정부의 비전 제시에 환영 입장을 나타냈다. 다만 제약산업을 규제산업으로 규정, 틀에 묶으면서 제약산업의 미래를 꺾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는 곧 상위 제약사들의 눈을 동남아 등 여타 시장으로 돌리는 기폭제가 됐다. 그럼에도 국민건강을 담보하는 있는 제약의 특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당분간 규제 일변도의 정책은 현행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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