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서울에서 비교적 집값이 싸서 20대~30대가 많이 모인 관악구 신림동. 그러나 여기서 사회 초년생의 넉넉하지 않은 형편을 맞출 수 있는 집은 드물다.
10일 대학 졸업후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박모씨(30세·남)는 돈도 못 버는 처지에 방값이라도 아끼자며 고시원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가 사는 곳은 서울대역 근처 쑥고개. 이곳 고시원은 대부분 월세 40만~50만원에 6.6㎡의 비좁은 공간이다.
박씨의 방은 그나마 다른 방과 달리 창문이 있어 볕이 들고 방안에 간이 세면대가 있어 개인 생활을 조금이라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게 장점. 그러나 방음도 안 되는 좁은 방은 여유공간도 없이 책상과 옷장, 작은 냉장고가 꽉 들어차 답답함을 자아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일대의 고시원 방(오른쪽)과 공용 부엌(왼쪽)(사진=뉴스토마토)
기자가 동작구 상도동 일대의 고시원을 탐방한 결과도 신림동의 사정과 비슷했다.
방은 한 사람이 겨우 누울 크기에다 방값은 평균 40만원. 그중에는 건물 기둥 탓에 침대 길이가 1.5m가 안 되는 곳도 있었다. 자려면 허리를 ㄱ(기역)자로 꺾어야 할 판. 한 고시원 주인은 기자에게 월세 35만원짜리 방을 특별히 30만원 밑으로 깎아주겠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방은 화장실 바로 옆에 있어 매번 물 내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직장인 대부분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잃는 상황에서 박씨의 사례는 특별한 게 아니다.
통계청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자료를 보면 1995년 이후 전세가 7만9000가구 감소하는 동안 월세는 184만5000가구나 늘었다. 1인 가구 증가로 소형 주택 수요가 늘었고 저금리 현상이 지속돼 전세 물량이 감소한 탓. 이에 요즘 집을 구하려면 월세나 반월세(보증금+월세) 주택을 찾거나 아예 월 40만원 하는 고시원을 택해야 하는 실정이다.
◇연도별 주거형태별 변화 추이(자료=통계청)
경제난과 주택시장 변화의 직격탄을 돈 없는 20대~30대가 맞고 있는 셈.
김지경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주택 공급이 꾸준히 확대돼 주택의 양적 부족은 해소됐지만 주거 불안정 문제는 여전하다"며 "부동산 시장이 구조적 변화로 20대의 월세 비중이 다른 세대보다 높고 거주공간 확보와 주거비 부담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전국의 20~30대 830여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를 보면 월평균 소비 중 주거비 비중이 31%~40%인 경우가 27.7%였고, 50% 이상인 경우도 22.1%나 됐다. 또 전체의 절반을 넘는 69.2%가 소비의 3분의1을 집값으로 썼다.
올해 기준 중소기업 신입사원의 평균 연봉이 2580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매년 700만원 이상의 돈이 집값으로 빠진다. 20대~30대는 재산 마련을 위한 종잣돈 모으기는 꿈도 못 꾸고 6.6㎡의 햇빛도 안 드는 좁은 공간에서 우울증을 겪는 경우까지 생길 정도다.
◇20대~30대의 월평균 총 소비지출 중 주거비 비중(자료=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이 때문에 정부의 주거복지 대책마련이 시급해 보인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김 연구원은 "주택시장이 월세 중심으로 변하는 상황에서 주거비 지불능력이 취약한 20~30대의 주거문제가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며 "집 문제를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벗어나 생활과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둔 주거정책으로 접근하고 이에 따른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 역시 "주거 빈곤층의 대상과 범위를 최저소득이나 주거형태로 구분하기보다 주택철거, 임대료 미납 등으로 주거상실, 주거불안을 겪는 사람까지 주거 빈곤층으로 감안해야 한다"며 "복지부와 국토교통부 등으로 이원화된 주거복지 체계를 통합하고 노동-소득-주거-복지가 하나된 복지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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