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국제 유가가 100달러 선을 돌파하면서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하자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의 자산매입규모가 줄어드는 ‘테이퍼링’이 시작되면 유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테이퍼링 우려를 잠재우고 유가를 끌어올린 요인으로 북미 지역을 꽁꽁 얼려버린 한파와 달러 약세 등을 지목했다.
◇美 한파로 원유 수요↑·재고↓..유가 100달러 '돌파'
10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3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전 거래일보다 18센트(0.2%) 오른 배럴당 100.06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올 들어 최고치이며 지난 12월30일 원유 재고 감소로 100달러를 넘어선 이후 두 번째로 심리 기준선인 100달러 선을 돌파한 것이다.
◇지난 4개월 간 유가 추이 (사진=인베스팅닷컴)
북미 지역에서 계속되는 한파로 원유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현지 언론들은 지난주 혹한과 폭설로 비상사태가 선포됐던 뉴욕과 뉴저지 등에 이번 주에도 한파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에너지 트레이딩 기업인 JBC에너지는 "한파로 인한 미국과 북해의 원유 수요 증가가 유가 상승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코메르츠뱅크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월 미 북동부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의 4.1%가 원유를 통해 얻어졌다. 원유로 전기를 만드는 비율이 0.7%에 그친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그 사용양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원유에 기반한 전기 발전기 사용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엄청난 한파와 더불어 값비싼 가스 값에 원유 수요가 증가하자 자연히 재고가 감소하며 유가 상승을 부추겼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달 말 보일러등유, 디젤 등 증류액 재고는 2% 하락한 1억1380만배럴을 기록했다. 이는 1월 말 기준으로 지난 2003년 이후 최대로 낮은 수준이다.
전체 원유 재고 또한 덩달아 감소했다. EIA는 원유 재고가 직전주 대비 40만배럴 증가한 3억5810만배럴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예상치인 150만배럴 증가를 밑도는 수치다.
앤디 리보우 제프리 배시 부사장은 "미 원유 재고 감소로 유가가 오른 것"이라며 "보일러등유 사용이 늘고 수출이 확대되면서 재고가 급격하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옐런 비둘기 발언..유가 상승 기대감 'UP'
연방준비제도(Fed)의 테이퍼링이 미 고용지표 부진 여파로 주춤할 것이란 전망 또한 유가에 날개를 달아줬다.
지난 7일 미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의 1월 비농업부문 신규 고용자 수는 11만3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시장 예상치인 18만5000명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전달의 7만5000명 증가 보다는 개선됐으나, 당시 고용지표가 매우 부진했던 점을 감안하면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온 것이다.
고용지표는 연준이 테이퍼링 속도를 조절하는 데 참고하는 지표로 미국 경제 회복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로 쓰인다.
코메르츠뱅크는 "살아날 것이라던 노동시장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연준이 자산매입 축소를 늦출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용지표 악화가 유가에 호재인 이유는 연준의 자산매입 축소 조치가 지연되면서 시중에 공급된 막대한 유동성이 달러약세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달러로 거래되는 원유의 특성상 달러약세는 유가를 끌어 올리는 동력이 된다.
이처럼 지난주 고용시장이 악화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자넷 옐런 신임 의장이 의회 청문회에서 경기부양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칼 랠리 오일아웃룩스앤오피니언스 분석가는 "많은 투자자들은 옐런이 양적완화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본다"고 전망했다.
◇유가 완만한 상승세..배럴당 100달러 오갈 것
전문가들은 유가가 이따금씩 랠리를 이어갈 수 있으나, 올 한 해라는 큰 그림에서는 큰 폭의 상승세를 목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선 유가 랠리를 점치는 측은 미 경기 둔화 우려에 따른 테이퍼링 지연으로 달러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유가를 뒷받침 할 것으로 전망한다.
미 고용시장이 전달까지 두 달 연속으로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미국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한 풀 꺾인 상황이란 점에서다.
맷 스미스 슈나이더 일레트릭 애널리스트는 “옐런의 비둘기 발언이 달러 약세와 유가 상승을 불러올 것”이라며 “원유 같은 상품은 달러약세에 상승 동력을 얻는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제 매체 마켓워치는 자넷 옐런 연준 의장의 행보에 유가의 향방이 달렸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원유 재고 감소 예감 또한 유가 랠리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부분이다. 지난 7일 영국 북해 버저드 유전은 9주간 유지 보수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투자자들이 예상했던 기간 보다 2주 더 연장된 것이다. 버저드 유전은 영국 최대 유전으로 원유 공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아울러 중국 경제가 둔화 우려감을 털어내고 살아나기 시작하면 수요가 증가해 유가 랠리가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미 경제 성장세가 확고해지면서 테이퍼링이 가속화되고 원유 재고 또한 늘어나면 유가가 하락세 내지는 매우 완만한 오름세로 접어들 것이란 의견이 대다수였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날 보고서를 내고 미국과 일본이 선진국 경기 확장세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100.9에서 101.0으로 오르면서 지난 2008년 3월 이후 최고치에 도달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지속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7일 발표된 미국의 1월 실업률도 6.6%로 연준의 목표치인 6.5%에 거의 근접한 만큼 고용시장을 둘러싼 우려감도 많이 완화됐다.
리비아 원유 생산이 정상화되고 미국 셰일오일 붐이 지속되는 가운데 유가 상승을 이끌었던 한파가 거치면 다시금 유가가 하락세를 보일 것이란 의견도 있다.
원유 업계들은 올해 북미 타이트 오일과 오일샌드 등 비전통적인 석유 생산이 지속되면서 원유 생산량이 전년보다 121만배럴 증가한 9159만배럴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처럼 미 양적완화 축소와 재고 증가 등의 예상이 나오면서 유가가 올해 100달러 선을 밑돌 것이란 전망이 두드러졌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이날 보고서를 내고 올해 평균유가(WTI)를 전년보다 4.58달러 낮은 93.33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2015년은 89.58달러로 전망했다.
또 조사 업체 잭스닷컴(Zacks.com)은 올해 상반기 동안 유가가 90~100달러 선을 왔다갔다 할 것으로 내다봤고, 한국 석유공사는 올해 유가가 100~105달러 수준으로 안정될 것이라고 점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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