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우크라이나와 베네수엘라의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면서 정정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의 강경 진압에 발끈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사망자가 속출하는 등 피해가 잇따르자 시위는 더욱 격화됐다.
사태가 악화되자 강경 진압으로 원성을 산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실각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러한 정정불안은 국내외 경제문제로 이어져 글로벌 금융권에 혼란을 불러오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야누코비치 퇴장..러시아·EU 힘겨루기 재개
23일(현지시간) 가디언은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축출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지난 22일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축출하고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의회 의장에 대통령 권한을 임시로 인계했다. 감옥에 갇혔던 야권 지도자 율리아 티모셴코 전 총리도 풀려났다.
반정부 시위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데다 디폴트에 위기감마저 불거져 의회가 해결사로 나선 것이다.
지난 11월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포기하고 러시아를 선택하면서 반정부 감정이 폭발했다. 200억유로의 차관과 가스값 인하 등을 약조한 러시아에 손을 들어준 것. 이를 계기로 반러시아 정서가 폭발하면서 거리시위가 시작됐고 지금까지 77명이 사망하는 등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정정불안이 극에 달하자 지난 21일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우크라이나의 신용등급을 'CCC'로 강등하고 전망을 '부정적'으로 제시했다. 시위로 국가부도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용등급까지 내려가자 의회는 야누코비치의 전격 퇴진을 주장하던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했고 이로 인해 사태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러시아와 유럽 간의 알력 다툼이 또 한 번 일어날 여지가 생긴 것이다. 전문가들은 오는 5월25일 선거를 앞두고 러시아와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으로 내다본다.
◇반정부 시위대가 우크라이나 키예프 독립광장에 모여있다 (사진=로이터통신)
먼저 칼을 뽑아 든 쪽은 EU다. 지난 해의 아픔을 또다시 경험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EU는 우크라이나에 7년간 200억유로의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EU 당국자는 "우크라이나의 어려운 현실을 고려했을 때 지원 규모는 커질 수 있다"며 "내일쯤 지원책이 확정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러시아는 아직 이렇다 할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언제든 개입하겠다는 여지를 남겨놨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새 정부가 출범하는 것을 보고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를 재설정해야겠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정상화되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네수엘라 반정부 시위로 몸살..마두로 회유책 통할까?
베네수엘라도 지난 2일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잦은 범죄, 생활필수품 부족 등의 이유로 마두로 정부 퇴진을 주장하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시위가 확산됐다.
특히, 물가가 엄청나게 높아 생활고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기준 베네수엘라의 실질 인플레이션율은 56%에 육박한다. 이는 세계 최고치다.
◇베네수엘라 평화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디에고 스차리프커 야권 지지자는 "사람들은 범죄로 친구를 잃어버리는 데 신물이 났다"며 "생필품 부족과 높은 인플레이션도 문제"라고 말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반정부 집회를 '쿠데타'로, 참여자를 '파시스트'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에 나섰다.
베네수엘라 경찰 당국은 반대 시위가 일어난 지역에 연료 공급을 끊는 한편 시위 현장에 낙하산 부대를 전면 투입했다. 한때 미국 CNN의 취재 활동을 금지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반정부 시위는 야권 지도자인 레오폴드 로페즈가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돼 10년형을 선고받으면서 더욱 확산됐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유혈사태로 번졌다. 지금까지 10명이 숨지고 134명이 다치는 등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네수엘라의 심각한 상황이 해외까지 전해지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사태를 대화로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남미국가연합 또한 유혈 진압에 우려를 표했다.
국제사회의 우려가 점증하는 가운데 사망자가 속출하고 경기침체 우려감마저 감돌자 마두로 정부는 강경노선을 버리고 회유카드를 꺼냈다.
이날 마두로 대통령은 시위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정치·사회 분야의 대표들이 참여하는 평화회의를 열자고 제안했다.
야권을 비롯한 반정부 시위대는 마두로의 제안에 아무런 의견도 밝히지 않았다.
◇정치권 불안..유럽 등 주변국으로 확산 우려
이처럼 우크라이나와 베네수엘라의 반정부 시위로 정치권 불안이 지속되자 자국 경제뿐 아니라 최근 안정세를 찾아가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투자자들은 노심초사다.
우크라이나와 베네수엘라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정국혼란이 심해질 경우에는 시장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우크라이나는 '빅3'로 불리는 국제 신용평가사 3곳으로부터 적게는 한 단계, 많게는 두 단계 씩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등급 전망도 '부정적'이라 언제든 사태가 악화되면 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주변국 정세가 심상치 않아 등급 강등은 물론 디폴트 위기 가능성마저 높아졌다.
우크라이나와 FTA를 맺으려는 EU와 구소련 권역에 묶어두려는 러시아의 한 판 힘겨루기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우크라이나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이미 우크라이나 정정 불안 하나만으로도 유럽 주요국 증시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9일 우크라이나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22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자 유럽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아울러 불안감은 폴란드, 헝가리, 러시아 등 인접한 신흥국으로 퍼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정불안과 디폴트 가능성이 다른 신흥국 시장으로 전이돼 투매심리를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20일 기준 폴란드 즐로티화 가치는 닷새 만에 달러 대비 0.4% 하락했고 헝가리의 포린트화는 0.8% 급락했다.
이에 도널드 터스크 폴란드 총리는 19일 연설에서 "폴란드와 유럽은 가장 극적인 상황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우크라이나 정국 불안에 미 양적완화 축소까지 겹치면 신흥국 불안이 가중되고 유로존 디플레 위기까지 불거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사이먼 퀴자노 에반스 독일 코메르츠뱅크 신흥국 책임자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주변국으로 전이될 가능성을 과소평가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팀 애시 스탠다드뱅크 남아공 부문 이코노미스트는 "우크라이나의 이웃국가 중 러시아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러시아 정부와 국영 은행은 3000억달러의 손실을 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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