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웅크리고 있던 유럽 경제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동결돼 있던 소비심리가 풀린 가운데 좀처럼 곳간을 열지 않았던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면서 유럽 경제에 청신호를 보내고 있다.
올해부터 국제 채권단이 꿔주는 돈으로 연명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성장 폭을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산적한 공공부채와 높은 실업률이 유럽 경제의 부활을 방해하고 있어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유로존 성장률 1.2%..2년 연속 침체 졸업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25일(현지시간) '2014 겨울 유럽경기전망 보고서'를 내고 올해 유로존 18개 회원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1.1%에서 1.2%로 상향 조정했다.
내년에는 1.8%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이후 올해 부터 연이어 플러스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다.
◇2007~2015년 유럽 성장률 추이 (자료=EC)
재정위기로 통화동맹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돌던 2012년 당시 유로존은 -0.7%를 기록한 바 있다. 그 이듬해인 2013년에도 힘을 쓰지 못하고 -0.4%에 그치며 마이너스 성장률을 이어갔다.
유럽연합(EU) 28개국의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각각 1.5%, 2%를 기록했다.
국가별로 보면 유로존의 맏형인 독일이 1.8%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의 0.4%에서 4배 이상 오른 수치다.
수출 호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내수가 확대돼 성장률이 급증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올해의 호조에 이어 내년에는 2%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올해 성장률은 각각 1.4%, 1.5%로 지난해의 0%대 성장률에서 벗어나 1%를 웃돌 것이란 예상이다. 오스트리아는 -0.8%에서 올해 1.0%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 위기를 경험했던 남유럽 국가들도 일제히 약진했다. 지난해 -3.7%를 기록한 그리스는 올해 0.6%로 반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스는 60년 만에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등 달라진 면모를 보이고 있다.
작년 -1.2%에 그첬던 스페인도 올해 1.0% 성장하고 -1.9%에 머물렀던 이탈리아도 올해엔 0.6% 반등할 것으로 예상됐다.
◇유럽 경기 성장 동력, 소비수요·투자확대·수출호조
유럽 경기 성장의 동력으로는 수요 증가와 설비투자, 유럽중앙은행(ECB)의 자산평가 등이 꼽힌다.
우선 살아나기 시작한 소비심리가 실물 경제로 이어져 전체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유로존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가 완화된 가운데 경제 기초 여건이 나아지면서 얼어붙었던 소비심리가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로존의 지난 2월 소매판매가 0.1% 줄어들긴 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반등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EC는 보고서를 통해 올해와 내년 민간 소비가 1.1%, 1.7%씩 증가할 것이라고 점쳤다. 지난해의 0%, 지난 2012년의 -0.7%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올리 렌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은 "지난해 중반부터 유럽 경제가 성장세로 전환됐다"며 "살아난 내부 수요를 중심으로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기 호조에 따른 교역량 증가 또한 유럽 경기에 힘을 실어주는 부분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전 세계 무역 규모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11월까지 3개월간의 세계 무역량은 신흥국 물량에 힘입어 2.1%나 늘었다. 이는 3년래 최고치다. EC는 세계 무역 규모가 올해 5.1%, 내년 5.8%씩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무역 증가 전망은 기초체력을 회복한 유럽에 희소식이다.
아울러 프랑스를 비롯한 몇몇 유로존 국가들이 단행하고 있는 경제개혁으로 임금수준이 낮아지면 수출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경상수지가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다.
EC는 유럽연합(EU)의 재화와 서비스 수출이 올해 4.1% 늘어나고 이듬해인 2015년에는 5.5%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1.4%를 기록했다.
여기에 기업의 설비투자 활동 또한 경제 성장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유럽 경기 호조의 원인으로 공공·민간 부문에서 시작된 설비투자를 지목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추진하는 스트레스테스트 또한 긍정적인 요인이다. 단기적으로 혼란을 줄 수 있지만, 잘 마무리되면 유럽 금융권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동시에 높여줄 것이란 이유에서다.
◇유로존 성장 막는 복병, 낮은 물가·높은 실업률
다만, 유럽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들이 곳곳에 산적해 있는 상황. 높은 실업률과 산적한 부채, 저조한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유럽 경제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민간소비와 기업투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수출이 늘어 성장률이 높아진다 해도 부채를 기한 내에 다 상환하지 못하면 유럽은 디폴트 위기에 빠질 수 있다.
EC도 보고서에서 그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갔다. 한 때 유로존의 병자로 불리는 불명예까지 경험한 프랑스는 내년까지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 그러나 EC 추산에 따르면 프랑스는 올해 4%, 내년엔 3.9%로 낮추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프랑스의 경제개혁 성과는 유럽연합이 요구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며 "정부 부채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스페인은 더 암울하다. 스페인은 오는 2016년까지 재정적자를 GDP 대비 3% 이하로 내려야 하는데, 올해 5.8%, 내년에는 6.5%로 오히려 적자규모가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럽 경제의 고질병인 낮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 또한 문제다. 먼저 유럽 고용시장
◇2000~2015년 유로존 실업률 추이 (자료=EC)
은 당분간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EC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유로존의 실업률 전망치는 12.0%다. 최고치로 기록된 지난해 실업률이 12.1%인 것을 감안하면 올해에도 고용시장에 별다른 진전이 없을 것이란 얘기다. 내년에는 10.5%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별로 보면 그리스가 26% 스페인이 25.7%로 지난해와 비슷한 실업률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키프로스는 19.2%, 포르투갈은 16.8%를 각각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우려감도 여전히 남아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인 0.25%로 내렸음에도 물가상승률은 저조한 수준을 맴돌고 있다.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지난 1월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보다 0.8% 상승했다. 이는 EC의 목표치인 2%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저조한 인플레 추이는 한동안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유로존의 올해 CPI 상승률을 1.0%, EU의 상승률을 1.2%로 내다봤다.
마르코 부티 EC 경제부문 사무국장 "물가상승률에 유럽 경제의 성장 여부가 달렸다"며 "물가상승세가 둔화되면 실질 금리가 상승하고 채무부담이 늘어나 성장세를 방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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