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애-김향기-고아성 (사진제공=무비꼴라주)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우아한 배우 김희애가 2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봉준호 감독의 히로인 고아성과 재능있는 여배우로 성장한 김유정에 '여왕의 교실'의 김향기가 등장한다. 연출자는 다문화 가정의 문제를 담담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완득이' 이한 감독이다. 기대가 안 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에 걸렸던 것은 학교폭력과 왕따로 인해 14살 소녀가 죽는 스토리였다. 이한 감독의 영화라고 해도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14살 소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비극을 담담하고 우아하게 풀어낸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딸 혹은 동생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지만, 당당하고 씩씩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한 가족을 보며 희망을 얻는다.
영화관을 나올 때 무거운 고민이 머릿속을 휘어감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따뜻해진다.
◇김희애 (사진제공=무비꼴라주)
금지옥엽 딸의 자살을 겪은 엄마 현숙(김희애 분)은 이를 극복하려고 더 억척스럽게 살아가려고 한다. 억지로 웃어야 하는 마트 아침 조회에서 누구보다도 더 크고 환하게 웃는다.
그러다가 점심시간에 곱배기를 주문하는 자신의 모습에 "딸 잃고도 곱배기를 먹는 엄마"라고 자책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 감정이 가슴을 친다.
◇고아성 (사진제공=무비꼴라주)
언니 만지(고아성 분)는 동생 죽음의 비밀을 풀어내려고 한다. 학교에서 어떤 괴롭힘을 당했는지 하나 하나 찾아내려고 한다. 조금씩 사실에 근접해가면서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용서를 하려한다. 그 모습이 예쁘다.
생전 동생이 자신에게 친 SOS를 뒤늦게 떠올리고 "나는 좋은 언니가 아니었다"며 자책한다.
그럼에도 현숙과 만지는 예전처럼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하고 웃기도 한다. 신파로 만들기에 좋은 소재를 두고 영화는 담담하게 그린다. 굳이 울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무거워지려고 하는 찰나에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옆집 총각(유아인 분)은 영화의 숨통을 틔운다. 전혀 웃기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터뜨리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거칠고 강인한 인상을 가진 유아인의 변신이 새롭다.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가 일품이다. 이한 감독의 신의 한수는 어쩌면 유아인일지도 모른다.
복잡한 반전이 많지 않은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에 의지한다. 배우들이 연기를 못하면 무너지는 영화다. 배우들은 이 책임을 견뎌내고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해낸다. 김희애부터 고아성, 김유정, 김향기까지 연기 잘하는 여배우들의 향연이다.
'우아한 여배우'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김희애는 화도 버럭버럭 내고 욕도 과감하게 내지르는 억척스러운 현숙을 완벽히 연기했다. 소시민으로서의 변신도 눈에 띄고, 화분을 주거나 요리를 하면서 아픔을 이겨내는 모습이 우리네 엄마의 모습 같다.
고아성의 연기력은 무서울 정도다. 이제 겨우 21살인 고아성에게서 풍겨나오는 여배우의 아우라는 소름이 끼칠 정도다. 매섭게 노려 볼 때나 화를 낼 때나, 무뚝뚝하게 고마움을 표현할 때나 모두 만지의 느낌이 드러난다. 그의 연기가 계속해서 보고 싶다.
◇김유정 (사진제공=무비꼴라주)
죽은 천지(김향기 분)을 괴롭히는 친구 화연 역의 김유정은 첫 악역 도전이다. 마냥 나쁜 아이가 아닌, 자신의 외로움을 옳지 못하게 표현하는 치기 어린 소녀다. 김유정은 다소 복잡한 감정을 가진 화연을 정확하게 표현한다. 천지에게 대하는 행동은 밉지만, 바쁜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표출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돼 증오할 수 만은 없다. 김유정의 연기력이 발휘되는 지점이다.
항상 슬픔을 안고 있는 천지 역의 김향기는 엄청난 배우로 성장할 것 같은 기대감을 준다. 특히 영화 말미 "넌 어떤 구경을 하고 싶은데"라고 말하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난해한 의미를 가진 이 대사를 그만의 감성으로 표현한다. 울음을 가득 담은 김향기의 얼굴은 천지의 심정을 완벽히 표현한다.
◇김향기 (사진제공=무비꼴라주)
이외에도 옆집 총각 유아인, 만지의 정 많은 친구 미란 역의 천우희, 미란의 아빠 성동일, 미란의 동생이자 천지의 친구였던 미라 역의 유연미까지 모두 최선을 다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가 끝난 뒤 언론시사회에서 고아성은 "예전 학창시절로 돌아가 당시 천지 같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학교폭력이나 왕따는 학생 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세계에도 존재하는 소재다. 우리도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따돌림으로 상처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좀 더 성숙한 의식을 찾는데 도움을 주는 영화다.
15살 김향기는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우아한 거짓말'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상영시간 117분. 3월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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