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아도 걱정, 열어도 문제..20년만에 결론 날 쌀시장 개방
2014-03-06 08:36:34 2014-03-06 08:40:37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가로 4.5㎜, 세로 2㎜, 두께 1.5㎜의 작은 알갱이에 300만명의 사람들의 생계가 걸렸다. 바로 쌀 이야기다. 20년 묵은 시한폭탄 같던 쌀시장 개방이 현실로 다가오는 가운데 개방과 관세유예 사이에서 농민과 정부가 고민에 빠졌다.
 
6일 농림축산식품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9월까지 세계무역기구(WTO)에 국내 쌀시장 개방 여부를 통보해야 한다. 정부는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에 가입하며 WTO 가입국간 관세를 철폐했지만 쌀은 2014년까지 관세를 유지하기로 했다. 대신 매년 쌀 수입량을 2만톤씩 늘리기로 해 올해 수입량만 40만9000톤이나 된다.
 
이에 정부는 6월까지 국익과 국내 피해를 따져 정부 방침을 정하고 WTO에 우리 입장을 통보하기로 했다. 농림부와 산업부 등은 신중한 입장이다. 쌀이 우리 국민의 주식이고 300만 농민들의 수익이 걸린 문제라 섣불리 개방과 관세유예를 입에 담을 수 없기 때문.
 
그러나 정치권과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정부의 방침을 유추하면 개방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해 9월 민주당 심재권 의원은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를 보면 정부는 국내 쌀 자급률과 소비량 등을 고려해 쌀 시장 개방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최근 국내외 쌀값 차이는 줄고 매년 쌀 의무 수입량에 따른 부담이 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쌀 관세유예를 2014년까지 허용한다는 것은 현행 WTO 협정에서 합의한 내용"이라며 "이는 예외조항인데 올해 이후에도 관세를 유예할 수 있는 방안은 현행 WTO 협정의 모든 규정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국내 쌀 소비량이 줄고 있어서 시장을 열어도 큰 피해가 없다는 주장 역시 쌀시장 개방론에 힘을 싣는다. 실제로 농림부 자료를 보면 국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지난 1982년 130kg에서 1992년 112.9㎏, 2001년 88.9㎏, 지난해 67.2㎏으로 매년 감소세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정부는 쌀이 남아돌아 쌀값이 떨어지는 사태를 만들고 쌀 관세유예를 연장하며 다른 나라 눈치를 보느니 쌀시장을 여는 게 낫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2004년 이후 국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자료=통계청)
 
이에 최근 한덕수 한국무역협회장은 "적절한 관세화로 수입량이 도를 넘지만 않는다면 쌀 시장 개방은 오히려 농민들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쌀 의무 수입량이 국내 쌀 소비량의 8%까지 왔는데 이는 쌀 소비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굉장한 부담"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농민들은 현실론에 기댄 쌀 시장 개방논의에 강력 반발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관계자는 "정부가 쌀시장 개방에서 가질 자세는 농민과 최대한 소통해 국내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며 "시장 개방을 기정사실로 해 농민을 설득하거나 여론몰이에 들어간다면 농민의 반발만 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관계자 역시 "국산 쌀은 가격 경쟁력이 워낙 낮고 수입산과 맞서는 데 대비할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에 관세화를 가능한 한 늦춰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수진 농림부 식량정책과장은 "쌀시장 개방 여부는 아직 정부가 어떤 방침도 정한 게 없다"며 "쌀 시장 개방은 중요한 사안인 만큼 농업계 의견과 쌀 수급상황, 국내외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부 입장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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