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혁의 스포츠에세이)키가 커서 '슬픈' 김신욱
2014-03-10 13:33:39 2014-03-10 13:37:59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늦은 밤 펍(pub)에 앉아 친구들과 얘기하듯 스포츠 이야기를 쓰려 한다. 때로는 달콤할 수 있다. 가끔은 씁쓸할 수도 있다. 그래도 스포츠는 이어지고 이야기는 계속된다. '스포츠에세이'는 에세이라는 자유로운 형식을 빌려 스포츠를 나누고자 한다. 관찰하고 곱씹은 시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 한다. 공감 혹은 비공감은 독자 몫이다. [편집자 주]
 
큰 키로 손해를 보는 선수가 있다. 프로축구 울산현대의 공격수이자 축구대표팀의 스트라이커 김신욱이다. 김신욱의 공식 신장은 196cm이다. 
 
농구도 아닌 축구에서 이 정도 키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 세계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공격수에서 찾아본다면 얀 콜레르(체코·202cm), 니콜라 지기치(몬테네그로·203cm), 피터 크라우치(영국·200cm) 정도가 금방 떠오르는 김신욱보다 큰 선수다.
 
◇소속팀(울산현대)과 축구대표팀을 오가고 있는 김신욱. ⓒNews1
김신욱에게 줄곧 따라다는 꼬리표는 '높이'다. 지난 시즌까지 울산현대는 '철퇴축구'를 표방했다. 긴 패스를 따라 전환하는 공격력을 빗댄 말이다. 여기에는 김신욱의 높이가 필수였다.
 
김신욱이 머리로 따낸 공은 2선 선수들이 쓸어 담았다. 김신욱은 이런 공격 선봉 역할을 하면서도 양발을 활용해 19골을 터트렸다. 높이에 발재간이 더해졌기에 가능한 수치였다. 울산은 포항에 밀려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최우수선수(MVP)는 김신욱의 몫이었다.
 
하지만 축구대표팀에서는 이 같은 장점이 단점으로 작용했다.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이 김신욱의 머리만 보고 공을 띄우려한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축구스타일과 맞지 않음을 밝혔고 급기야 지난해 8월 페루와 평가전을 앞두고 김신욱은 대표팀에서 제외됐다.
 
이 기간에도 김신욱은 포기하지 않았다. 개인트레이너를 고용해 신체 밸런스와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데 힘을 쏟았다. 이 때 공을 처음 잡아놓는 '퍼스트터치'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 결과 K리그 5경기에서 4골을 몰아치며 다시 홍명보 감독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4골 중 3골은 머리가 아닌 발로 만들어냈다. 헤딩으로 따내는 골보다 발 안쪽(인사이드)으로 밀어넣는 감각적인 골들이 많았다. 당시 김신욱은 "공중 볼 패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며 발 축구를 위해 스스로 많은 연구를 했음을 드러냈다. "발재간도 좋은 선수"라는 추상적이었던 평가가 구체적으로 수치화되는 순간이었다.
 
끝내 김신욱은 지난해 11월 대표팀에 재승선해 스위스전(15일)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이후 러시아전(20일)에서 골문 혼전 상황에서 오른 발로 골을 낚았다.
 
그러나 최근 그리스와 평가전에서는 다시 '박주영이냐 김신욱이냐'는 얘깃거리가 생겼다. 기량 자체만 놓고 보면 박주영에 무게가 쏠리는 분위기다. 박주영의 완벽한 부활은 극적 효과를 더했다.
 
박주영은 그리스전에서 전반 45분을 뛰어 1골을 터트렸다. 김신욱은 후반 45분을 소화했으나 그리스의 강력한 수비에 대표팀은 다소 밀려났다. 그 결과 다시 후방에서의 패스는 김신욱의 발보다는 머리를 향했다. 상대의 강한 압박에 조직적인 축구가 되지 않자 재차 김신욱의 머리가 빠른 길로 떠올랐다.
 
사실 김신욱의 키가 10cm만 작았어도 이런 일들은 줄었을 것이다. 박주영만 하더라도 공식 신장은 182cm다. 유럽 정상급 공격수들과 비교했을 때 결코 작은 키가 아니다. 여기에 박주영은 점프력까지 좋다. 충분히 높이에서도 강점을 보여 왔다. 하지만 아무도 박주영의 장점을 꼽을 때 '높이'를 제일 먼저 언급하지는 않는다.
 
월드컵 특성상 한 명의 공격수를 믿고 갈 수는 없다. 그러나 김신욱 활용법이 제자리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리스 같은 세계 정상급 수비를 만나자 다시 김신욱의 '발밑 축구'는 자취를 감췄다. 김신욱 개인기량의 문제인지 같이 뛴 선수들이 살려주지 못한 것인지는 생각해볼 부분이다. 분명 전반 박주영과 후반 김신욱이 뛴 축구 자체는 달랐다.
 
대표팀을 떠나 김신욱이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소속팀에서의 노력이다. 선입견을 깨기 위한 골 사냥이 시작됐다.
 
그는 지난 8일 포항스틸야드에서 열린 포항과 원정경기에서 결승골을 터트렸다. 골키퍼 맞고 튀어 나온 공을 오른발로 차 넣었다. 울산은 김신욱의 골로 1-0 기분 좋은 승리를 챙겼다. 울산 조민국 감독은 "후반 20분까지 김신욱을 지켜보겠다"며 믿음을 드러냈으나 결국 김신욱은 90분 모두 출장했다.
 
6일 새벽 그리스와 평가전을 치르고 7일 오전 귀국해 8일 오후 2시 경기에서 이런 성과를 냈다. 브라질월드컵을 향한 강한 의지가 이런 강행군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연결됐을지도 모른다.
 
김신욱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박주영에 대해 "가장 큰 목표는 월드컵을 가는 것"이라며 "존경하는 선배고 함께 월드컵을 간다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경쟁 상대이지 않느냐는 취재진에 질문에는 "감독님이 알아서 판단하실 부분"이라며 "우리는 스타일이 전혀 달라 상대에 따라 다르게 출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확실한 건 박주영과 김신욱이 함께 뛰는 시스템은 나오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홍명보 감독의 선수기용과 최근 행보를 보면 '원톱'을 사용할 전망이다. 이 경우 박주영이 주전을 꿰찰 확률이 높다. 홍명보 감독은 "아직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5월까지 선수들의 분발을 촉구한 상황이다.
 
김신욱은 또다시 K리그 무대에 올랐다. 월드컵 출전을 위해 두 다리로 골 행진을 이어가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선입견과도 여전히 싸우고 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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