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꽃피는 봄이 찾아왔으나, 이집트는 3년째 겨울을 맞고 있다.
30년간 절대권력자로 군림한 호스니 무바라크가 축출된 지 3년이나 지났지만, 정정불안은 오히려 심화됐다. 거기에 테러 위험까지 겹치면서 관광객들이 뜸해졌고 서민의 생활고도 커졌다.
이집트 과도정부는 339억이집트파운드를 시장에 쏟아 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꽁꽁 얼어버린 민심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하락세로 접어든 성장률도 언제 회복될지 미지수다.
◇각종 시위 줄이어.."군부 통치 못 믿겠다"
이집트에는 각종 시위가 줄을 잇고 있다. 경제, 정치, 종교, 이념 등을 이유로 하루가 멀다 하고 집회가 열린다.
지난 2일에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공공 분야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감행했다.
이번 시위에는 버스 운전사, 우편배달부, 환경미화원, 의사, 간호사 등이 참여했다. 약사, 철강, 섬유 업체 기술자들도 각 사업장에서 대대적인 노동 쟁의를 벌였다.
◇간호사들이 정부에 임금을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특히, 버스 운전자들의 항의가 거셌다. 과도정부가 약속한 최저임금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중교통 같은 공공성이 높은 직종에 대해선 최저임금을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3만8000명의 버스 운전사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레다 아브델 케림 운전사는 "정부는 최저임금제를 약속했지만, 그건 우리 회사에는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놨다"며 "정부가 우리를 속인 것이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가 버스회사를 최저임금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이유는 부족한 예산 때문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아흐메드 갈랄의 조사에 따르면 일 년에 무려 25억달러(2조6700억원)가 추가로 든다.
문제는 예산이 쪼들리는 가운데 군부와 경찰 등 치안유지에 몸담은 직원들의 임금은 급격하게 올라갔다는 점이다. 아케드 갈랄 이집트 재무장관은 "그동안 내무부와 군 관련 인사들의 임금은 30%나 올랐다"고 지적했다. 쓸 돈이 없다는 정부의 말을 근로자들이 신뢰하지 않는 이유다.
아델 자카리아 노동조합 임원은 "근로자들은 쓸 돈이 없다는 정부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시위는 계속될 것이며 그들은 결국엔 정부의 돈을 얻어낼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운송 노조는 투쟁에 승리해 원하는 것을 얻었다. 정부는 버스 운전사들의 월급은 30달러씩 인상해 주기로 했다. 장기간 교통이 마비되는 것을 우려한 조처다. 그럼에도 여전히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무함마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 지지자들의 시위 또한 지속되고 있다. 무르시는 지난해 7월 군부에 의해 축출된 인물이다.
군대의 통치를 반대하는 이들 무르시 지지파는 무슬림형제단과 혁명전선의 길 등 좌파 성향의 단체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잊을 만 하면 한 번 씩 튀어나와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일에는 이집트 전역에서 시위대와 진압 경찰 간의 유혈충돌이 일어나 3명이 숨졌다. 무바라크 퇴진을 이뤄낸 민중 봉기 3주년에도 양측간의 대립이 있었다.
당시 충돌로 49명이 목숨을 잃었고 247명이 다쳤다. 지난 7월부터 지금까지 과도정부가 무르시 지지파를 진압하면서 최소 1000명이 사망하고 2000명 이상이 긴급 체포됐다. 큰 피해가 있었지만, 무르시 지지파는 과도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무슬림이 반정부 시위를 이어가자 친정부 성향의 이집트 기독 청년들도 시위를 막기 위한 또 다른 시위를 벌였다. 기독 청년들은 이슬람 사원을 통제해 무슬림 주의자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광객 발걸음 '뚝'..텅텅빈 유적지
시위가 연이어지자 정정불안은 심화됐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테러 공격도 곳곳에서 발생했다. 이집트 민중 봉기 3주년을 앞두고 카이로에서 3차례의 폭탄 테러가 일어났고 지난달에는 시나이 반도 쪽에서 관광버스가 공격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버스에 타고 있던 한국인 3명이 사망했다.
이쯤 되자 이집트 과도정부는 시나이 반도 등에 여행경보 3단계를 발령했다. 정정불안으로 가뜩이나 어려워진 관광산업이 더 위축될 위험에 처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3년 사이 관광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이 실업자가 됐다. 정정불안과 테러 위협으로 이집트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뚝 끊긴 탓이다.
가디언은 지난 2월11일자 신문에서 이집트 관광 산업이 무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히스함 자조우 이집트 관광부 장관도 신문의 보도를 인정하듯 "이집트 유적지는 유령의 도시가 됐다"며 "아스완 같은 관광지는 말 그대로 손님이 단 한 명도 없다. 0%다"라고 어려운 현실을 토로했다.
◇유적 관리소 경비가 텅빈 아부심벨신전 내부를 걷고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자조우 장관에 따르면 지난해 이집트 관광 수익은 36억이집트파운드에 그쳤다. 이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2010년 77억이집트파운드의 절반 수준이다. 무바라크 정권이 교체된 이후 정정불안이 이어지면서 관광 수입이 급감했다는 분석이다.
이집트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이집트 호텔에 투숙한 관광객은 950만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0년의 1470만명에서 크게 줄어든 수치다.
자연히 관광객들을 상대로 객차에서 기념품을 팔던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됐다. 지방 정부가 없는 돈을 짜내서 실직자들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엘하미 엘자야트 이집트 관광청 대표는 "실업자들은 말을 먹일지 가족을 먹일지를 놓고 항상 고민한다"며 "시간이 지나면 관광객들이 돌아오겠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사정 최악..과도정부, 성장률 전망치 하향·재정적자 상향
관광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11.3%를 차지하고 전체 고용의 12.5%를 담당하는 이집트의 효자 업종이다. 그런 업종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니, 이집트 고용 사정이 악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이집트의 실업률은 지난해 4분기 전 분기 대비 13.4%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최고치로 지난 3분기의 13.4%를 두 분기 연속으로 이어간 것이다. 이집트의 역대 실업률 평균치인 10.44%와 비교해도 약 3%포인트나 높은 수준이다.
경제 성장의 근간인 고용이 악화됐는데, 성장률이 나아질 리 없다. 이집트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3분기 동안 전년대비 1.04%를 기록했다. 지난 1992~2013년 3분기까지 집계된 평균치인 3.8%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관광업을 포함한 서비스업이 하락 일로를 걷고 있어 성장률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2007~2013년 3분기 이집트 경제성장률 추이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과도 정부의 성장률 전망도 이집트인들의 근심을 더 했다. 이집트 언론 '아흐람온라인'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하니 카드리 디미안 이집트 재무장관은 공식성명을 통해 "이집트는 올해 2~2.5% 성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종전에 예상된 성장률 전망치인 3.5%에서 최소 1%포인트 빠진 수치다.
아울러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를 10.5%로 전망했다. 엘베블라위 전 총리가 잡은 재정적자 목표치인 10%에서 0.5%포인트 오른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보다 많은 11~12%대까지 재정적자가 불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 경기부양 프로그램·대통령 선거 '관심'
과도 정부도 나름 애를 쓰고 있다. 경제 부흥 프로그램을 가동시키는 등 피폐해진 민간경제를 살리려하고 있다. 다가온 대선 경선에서 유권자들의 인기를 얻어 군부 출신의 후보를 당선시키려는 의도 또한 숨어있다.
정부는 아랍에미리트와 걸프국가들이 지원해 준 339억이집트파운드를 사회 각 처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번 경기부양책은 경제 부흥 프로그램의 두 번째 시리즈다. 얼마 전 이집트는 1단계 경기부양책으로 300억이집트파운드를 투입한 바 있다.
아랍의 봄 이후 하락세를 이어온 경제를 되돌리기 위해 꼭 필요한 곳에 대규모 자금을 수혈하겠다는 전략이다. 200억이집트파운드의 투자금은 인프라 등 사회 기반시설 개발에 쓰이고 20억이집트파운드는 수에즈운하 터널 공사에 쓰일 예정이다. 또 20억이집트파운드는 사회복지 예산으로 편성됐다. 남은 돈은 최저임금제 도입에 따른 임금인상분에 투입된다.
정부의 재정정책과 더불어 주목받고 있는 것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이집트 대선이다.
그동안 지도자 때문에 몸살을 앓아온 이집트이기 때문에 어떤 대통령이 집권하는지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여러 후보가 난립할 것으로 예상되나, 그 중 일찍부터 두각을 드러낸 대선 후보는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
(사진)이다.
그는 아직 출마 여부를 공식 발표하진 않았다. 하지만, 장관의 측근들은 그가 현 장관직을 내려놓으면 곧 대선에 출마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군부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당선이 유력시되는 상황이다.
다만, 엘시시 국방장관의 출마를 반대하는 여론 또한 만만치 않다. 지난 5일 데일리뉴스이집트에 따르면 이집트 시민단체인 '4월6일청년운동'은 카이로에서 공식 성명을 내고 "엘시시의 대선 출마는 이집트 사회를 더 분열시킬 뿐"이라고 밝혔다.
이집트 통치보다 군 본연의 임무인 나라를 지키는 일에 주력하라는 메시지다. 그동안 군부의 편향된 통치 방식에 반대했던 목소리 또한 일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이집트 정치·경제 상황을 정상화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대선 이후 총선이 이어지면서 한동안 자신이 원하는 성향의 지도자를 세우기 위한 시위가 난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선영 아이비토마토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