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허재호 대주그룹 회장의 '황제노역' 논란으로 국민 여론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사법부가 서둘러 환형유치제도 개선방안을 내놨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 수석부장판사들은 28일 대법원에서 회의를 열고 특가법 위반(조세, 관세, 뇌물), 특경가법 위반(수재) 혐의 등 징역형에 고액 벌금형을 반드시 함께 부과하는 범죄의 경우에는 환형유치기간의 하한을 두기로 했다.
벌금이 1억원 이상 5억원 미만인 경우 환형유치기간은 300일,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인 경우에는 500일, 5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일 경우에는 700일, 100억원 이상일 경우에는 900일 아래로는 원칙적으로 선고할 수 없다는 게 골자다.
이에 따르면 이번 허 회장의 경우에는 최소한 900일을 노역장에 유치되어야 한다. 확정된 벌금액 254억원을 900일 기준으로 산정한 노역일당은 2822만원이다.
전국 수석부장 판사들은 이같이 결정한 안을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에게 전달했으며, 법원행정처는 이에 대해 전국 법관의 의견을 수렴하고, 외부 위원이 참석한 위원회 논의를 거쳐 이르면 올 상반기 중 결론을 낸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기준이 정해지더라도 법관들이 반드시 지킬 의무가 있는지에 대한 실효성 여부다.
비슷한 예로 양형기준안이 정해져 법관들이 실무에 적용 중이지만 이는 권고적인 의미만 있다. 이를 어기더라도 위법한 판결로 파기환송 되지는 않는다. 다만, 법원조직법을 근거로 양형기준에서 벗어날 경우 판결문에 그 사유를 기록해야 한다.
환형유치제도 개선안도 어떤 효력을 부여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법관들이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는 양형에 대한 법관들의 재량과 맞닿아 있어서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관들의 기준 준수와 법관의 독립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형법조항에 이런 기준을 넣어 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벌금에 대한 노역장 유치 규정은 형법 69조 2항으로, 입법적 조치가 있다면 이 조항을 개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을 개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지적이 있을 수 있다. 형법 69조 2항은 "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한 자는 1일 이상 3년 이하의 기간 동안 노역장에 유치하여 작업에 복무하게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허 회장의 경우도 재판부가 50일이 아닌 최장기간 3년 동안 노역장 유치를 선고했다면 이번 개선안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최종형을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가 3년이라는 기간이 있음에도 노역장 유치기간을 무리하게 50일로 정한 것은 법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건전한 법관의 양심이 의심되는 재판부의 '봐주기' 판결이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또 이번 개선안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형법 69조 2항이 정한 기간을 벌금액에 따라 구분을 지은 것과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이번 환형유치제도 개선방안이 국민 여론에 밀려 서둘러 내놓은 설익은 방안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국 수석부장판사들이 28일 대법원에 모여 '환형제도 개선안' 등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사진제공=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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