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우크라이나 사태가 다시금 갈등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크림반도의 분리·독립 열기가 우크라이나 동남부로 전이되면서다.
지방의회를 점령한 친러시아계와 우크라이나 치안부대가 충돌한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의 경고성 발언이 이어지자 불안감은 더욱 증폭됐다.
우크라 정정 불안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해당국은 물론, 세계 경제도 큰 위험에 처했다.
◇친러계 시위 우크라 동부 3곳서 발생.."주민투표 할 것"
8일(현지시간) 가디언 등 외신들은 친러시아계는 지방의회를 점령하고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등 우크라이나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위는 러시아계 주민이 몰려있는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인 도네츠크, 하리코프, 루간스크에서 벌어졌다.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도네츠크에는 러시아어 사용자가 전체 주민의 74.9%나 된다. 루한스크 주민의 68.8%, 하르키우 인구의 44.3%도 러시아계다.
러시아계 50%가 살고 있는 크림반도가 지난달 러시아에 귀속되자 동남부 친러계도 덩달아 분리·독립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도네츠크의 친러계 주민 120명은 지난 7일 주 정부 청사를 점거하고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창설을 선언했다. 이들은 또 크림처럼 오는 5월11일 이전에 주민투표를 시행할 계획도 세웠다.
◇하리코프 친러 시위대가 주 정부 건물을 점거하고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루간스크에서는 청사 무기고가 털리는 일이 벌어졌다. 이 지역 시위대는 훔친 무기로 무장하고 국가안보국에 체포된 인사 15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들 또한 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리코프 친러계는 한 때 주 정부 청사를 점거하면서 러시아와 합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처럼 시위가 격화되자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는 각 지역으로 치안부대를 긴급 파견했다. 덕분에 친러계 봉기는 하루 만에 부분적이나마 진압됐다. 크림 사태 당시 늑장 대응하다 러시아군에 선수를 빼앗긴 것과 대조되는 모습니다.
지난 7일 특공대로 구성된 진압대는 친러계가 점거 중이던 하리코프 주 정부를 탈환했다. 이 '대테러' 작전에서 친러 분리주의자 70명이 체포됐다.
아르센 아바코프 우크라이나 내무장관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테러 작전이 시작돼 시내가 봉쇄되고 지하철 운영도 중단됐다"며 "시위대가 점거한 하리코프 주 정부 청사 진압 작전에서 총기 없이 70명을 체포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반정부 시위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7일 청사를 점령한 도네츠크 시위대는 물러나지 않고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들은 청사 밖에 폐타이어로 바리케이트를 쳐 놓는 등 진압대의 난입에 대비했다.
◇미국·러시아, 남 탓 공방..우크라이나 의회도 '야단법썩'
친러계와 우크라이나 정부 간의 충돌은 자연히 크림반도 사태 때처럼 러시아와 미국의 개입을 불러왔다. 양측은 사태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렸다. 시위의 주모자가 우크라이나 주민이 아닌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외부 세력이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대테러 작전이 이어지자 러시아는 중앙정부의 강경 진압이 내전을 유발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나섰다.
러시아 외무부는 또 공식성명을 통해 "미국 민간 경호업체 '그레이스톤' 소속 용병 150명이 시위 진압에 동원됐다"며 "이는 우크라이나 주민의 자유와 권리,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미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 스파이가 이번 시위를 뒤에서 조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
(사진)은 "러시아가 특수부대와 첩보원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은 크림반도처럼 우크라이나 동남부도 러시아에 귀속될까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가 군사개입과 국민투표로 우크라이나 본토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러시아 군 병력이 우크라이나 국경 부근에 진을 치고 있는 점도 이러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경 부근에는 4만명의 러시아 군 병력이 주둔 중이다. 나토는 이들이 언제 본토로 들이닥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은 경계선에 있는 병력이 침략을 준비하고 있는게 아니라 일상적인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며 일축했다.
유럽연합(EU)은 꼭 군사 점령이 아니더라도 우크라이나 동부가 러시아와 '느슨한 동맹(loose federation)'을 맺을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개헌을 통해 연방제와 비동맹 체제를 택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서방과 러시아의 대립 구도는 고스란히 우크라이나 의회에서도 발견됐다. 이날 우크라이나 의회에서는 반러파와 친러파 의원들이 의견차로 주먹다짐을 벌이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혼란스런 분위기에서도 의회는 이날 영토주권 침해 활동에 5~10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법안을 가결처리했다. 러시아계 주민의 분리운동을 막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러시아 성장률 1.3%로 급감·세계 경제에도 '타격'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되자 경기 침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얽혀있는 러시아의 경제 상황이 점차 악화되고 있다.
러시아 MICEX 지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3월1일부터 지금까지 6.4%나 떨어졌다. 올 초부터 보면 약 10% 가까이 급락했다. 이웃국인 우크라이나의 정정불안이 심화된데다 서방의 제재가 강화되면서 투자심리가 악화된 것이다.
◇러시아 증시 1~4월8일 추이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성장률 전망치도 엄청나게 내렸다. 이날 국제통화기금(IMF)은 보고서를 내고 러시아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2.0%에서 1.3%로 낮춰 잡았다. 자금유출이 가속화되고 에너지 수입이 감소하면 성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러시아 정부도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올해 자체 성장률 목표치를 2.5%에서 1.3%로 하향 조정했다.
심지어 올리비에 블랑샤르 IMF 수석 경제학자는 우크라이나 불안이 지속되면 성장률이 1%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의 사정 또한 좋을 리가 없다.
우크라이나의 2023년 만기의 채권 수익률은 전일 대비 0.19% 오른 9.46%를 기록하며, 이날 채권 가격은 이날 2주 만에 최저치로 급락했다.
금융시장도 문제지만 진짜 골칫덩이는 러시아와의 가스 요금건이다. 러시아가 서방측으로 기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가스 요금을 무려 80%나 인상한 것이다. 이 통보대로라면 우크라이나는 1천㎥당 268달러에 사들이던 천연가스를 이제 485달러를 주고 사야한다. 게다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미납한 가스대금은 22억달러에 달한다. 가격이 고정되도 문제인 판국에 오히려 값이 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사태를 일으킨 당사국 뿐 아니라 주변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 같은 우려를 확인시켜 주듯 지난주 IMF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글로벌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우크라이나 사태 등 전 세계의 지정학적 긴장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악재에 덕을 본 것은 금과 원유 시장 뿐이다. 이날 국제유가는 원유재고 감소와 우크라이나 수급 불안감에 2.11% 올랐고 금값도 안전자산 선호 경향이 짙어진데 힘입어 0.8% 뛰었다.
한편,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불안이 커지자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사태 수습을 위한 4자회담을 건의했다.
존 케리는 이날 미 상원 청문회에서 "다음 주 중으로 미국, 유럽연합(EU), 러시아, 우크라이나 고위 당국자들이 만나 우크라이나 관련 4자회담을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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