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최근 중국산 H형강에 이어 후판까지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국내 시장을 잠식하면서 국내 철강업계에 적신호가 켜졌다.
원화 강세로 국내산과 수입재의 가격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국내 철강업계는 더 이상의 가격 경쟁은 불가피하다고 판단, 수입재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 H형강 수입량은 24만7649톤으로, 전년 동기(20만4726톤) 대비 21.0% 늘었다. 같은 기간 후판 수입량은 63만7858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8만958톤보다 32.6% 급증했다.
철강을 소비하는 주요 전방산업인 건설, 조선 등이 원가절감 노력을 위해 중국산으로 빠르게 대체하면서 국내 철강은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게 현장의 토로다. 또 그간 가격을 낮추는 방법으로 대응해왔는데 최근 들어서는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우려도 줄을 이었다.
중국발 공급과잉 여파로 물량이 넘쳐나면서 가격이 대폭 인하된 데다, 최근 원화강세 현상이 지속되면서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산 제품도 점차 국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3년 전만 해도 톤당 100만원을 호가했던 후판의 경우 현재 톤당 60만원 중반대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포스코의 경우 후판을 용접해 만든 H형강으로 H형강 시장에 진출, 우회로를 마련했다.
통상 후판 가격이 H형강보다 비싸 후판으로 H형강을 만들 경우 수지가 맞지 않지만 현재는 후판 가격이 워낙 많이 떨어져 이 같은 시도가 가능했다고 업계는 판단하고 있다.
기존 H형강 사업자인 현대제철이나 동국제강으로서는 강력한 경쟁자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여기에 지난해 9월 현대제철 3고로 완성에 이어 지난달 1후판공장 증설 등으로 국내 후판 생산능력이 확대되면서 수급상황은 더 꼬여만 갔다.
이에 국내 철강업계는 그간 중국 측에 H형강 수출량을 제한해 줄 것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지난해 말 끈질긴 국내 철강업계의 요구로 중국 측이 일정 부분 수출량을 줄이겠다고 한 차례 약속을 했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가격을 낮추는 방법으로 수입재 대응에 나섰지만 더 이상 가격을 낮출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업계는 최후의 카드로 반덤핑 제소를 검토에 돌입했다.
김영환 현대제철 부사장은 지난달 25일 1분기 실적발표회 자리에서 "비정상적 가격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위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해 이 같은 관측을 사실로 뒷받침했다.
반면 업계 일각에서는 반덤핑 제소가 실질적으로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반덤핑 제소를 하기 위해서는 정부와도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데 현재 중국과 FTA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정부가 철강업계 사정만을 위해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가격 인하만으로는 수입재 대응이 어렵다고 판단한 철강기업들은 최근 수요처와 스킨십을 강화하는 등 기존 시장 지키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지난 3월 취임 이후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을 방문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대우조선해양을 찾았다. 이들 조선 빅3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후판을 소비하는 최대 고객사다.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과 만난 자리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이 참여하는 러시아 천연가스개발사업 '야말 프로젝트'에 관심을 표하며 포스코 제품 공급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6~2008년 조선업 호황기 당시에는 후판 물량이 모자라 조선소 사장들이 철강기업들을 찾아다니며 공급 물량을 확보했지만, 이제는 정반대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전방산업인 건설, 조선업 장기 침체로 대규모 수요처의 가격협상력이 커졌다”며 “수입재 대응에 기존 수요처의 가격인하 요구까지 겹치면서 수익성을 지켜내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됐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산 H형강에 이어 후판까지 저가 수입재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국내 철강업계에 비상등이 켜졌다.(사진=뉴스토마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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