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정치권에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사퇴 시한으로 예상됐던, 23일 문 후보자의 집무실이 위치한 서울 창성동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에는 이른 아침부터 취재진이 모여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밤 귀국 후, 22일 문 후보자의 거취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지는 상황에서, 이날 출근길 문 후보자가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여론의 주된 관심사는 크게 '자진 사퇴 의향이 있는지'와 '청와대와 어떤 식으로든 교감이 있었는지' 등 두가지였다.
이른 아침부터 창성동 별관에 진을 친 기자들은 문 후보자의 입에 주목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이 사퇴 시한으로 예상한 날에 걸맞게 이날 창성동 별관에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70여명의 취재진이 모여들었다.
문 후보자가 도착하기 10여분 전, 한 중년 남성이 문 후보자를 기다리던 기자들을 향해 유인물을 뿌렸다.
자신을 '문창극 후보자를 지지하는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남성은 문 후보자가 '진보 언론의 왜곡 보도로 피해를 봤다'고 외쳤다.
그는 곧바로 청사 경비 인력들에게 이끌려 정문 밖으로 나갔다. 그는 이후 동행한 사람들과 청사 입구 앞에서 문 후보자 지지 시위를 벌였다.
문 후보자는 평소 보다 이른 오전 8시35분경 로비로 들어섰다.
그는 로비에서 '주말 동안 사퇴 이야기가 나왔다. 자진 사퇴 의사는 있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자못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주말에 잘 쉬셨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이어 "오늘 아무 할 말이 없다"며 "조용히 제 일을 하면서 기다리겠다. 감사한다"고 짧게 말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계속됐지만 그는 아무 대답 없이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집무실에 올라갔다.
최근 출퇴근 시간에 긴 시간 동안 기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파하던 태도와는 사뭇 달라진 태도였다.
오전 11시경, 갑자기 방송 카메라 기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문 후보자가 내려올 수 있다는 얘기가 돈 것이다.
방송 카메라들의 방향이 일제히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취재 기자들의 눈도 엘리베이터에 꽂혔다.
한 시간여의 긴장 상황이 이어졌지만, 문 후보자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12시경 이전과 같이 문 후보자를 위한 도시락이 배달됐다.
이후 외부에서 모여 문 후보자 지지 시위를 하던 한 기독교단체가 기습적으로 청사 진입 시도를 했다. 이 과정에서 청사 경비 인력에 물리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결국 경찰이 출동했고, 이후 한동안 청사 입구를 통제했다. 이후에도 단체 소속 한 회원은 조용히 청사 출입을 시도하다가 경비에 제지되기도 했다.
이들 단체 회원들은 이후에도 여러차례 청사 입구 부근에서 문 후보자를 지지하며 구호를 외쳤다.
이날 정오쯤, ‘조선일보’가 인터넷판을 통해 보도한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 문남규 선생을 문 후보자의 조부로 추정한다고 밝혔다’는 기사가 인터넷 등에서 화제가 됐다.
‘조선일보’는 문 후보자가 총리 지명 이후 이를 보훈처에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문 후보자 반대 기류가 강했던 여권 일각에선 문 후보자를 두둔하는 목소리가 잇따라 흘러나왔다.
당 실세들은 ‘청문회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곧바로 여권 내 기류가 변화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문 후보자는 공언한 대로 오후 6시경 퇴근길에 1층 로비에서 다시 기자들 앞에 섰다. 그의 표정은 출근길 당시 보다 더욱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퇴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News1
기자들이 그에게 앞서 보도된 ‘조선일보’ 기사와 관련된 질문을 던졌다. ‘왜 하필 이 같은 시점’에 이에 대한 확인을 보훈처에 요청했는지 물었다.
문 후보자는 “가슴 아픈 가족사”이며, “조부님의 명예가 걸린 사안”이고 “가족이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말해,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점을 부각하려 했다.
그러면서 “보훈처가 다른 경우처럼 똑같이 처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말을 끝낸 후, 곧바로 청사 앞에 주차된 차량으로 걸어갔다.
차량으로 향하는 그를 뒤따라간 기자들이 “전에 확인 할 생각은 안 했나”고 물었지만, 그는 “그건 나중에 (답하겠다)”고 답변을 거부했다.
기자들의 차량에 탑승하는 문 후보자를 쫓아 질문을 던졌지만, 문 후보자는 아무 답변을 하지 않았다.
대신 문 후보자의 청문회를 돕고 있는 한 총리실 관계자가 “답변은 (출퇴근길에 각각) 한 개씩만 한다”고 답했다.
또 다른 총리실 관계자는 “내일도 출근하신다”고 말했다. 결국 정치권에서 예상했던 자진사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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