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희기자] 현직 판사가 국선변호인 관련 서류를 허위 기재한 사건이 드러나면서 '국선전담 변호사' 임용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대법원은 서울에 근무 중인 김모 판사가 2012년 수도권 법원 형사부에서 일하며 맡았던 폭행 사건에서 국선변호인 선임 취소 결정문을 조작한 것에 대해 지난 4일 감봉 4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국선변호인 선정의 효력은 보통 판결 선고까지 유지되고, 이를 취소하려면 선고가 끝나기 전에 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해당 사건에서 김 판사는 선고일인 9월 28일로부터 4일 뒤인 10월 2일에야 국선변호인 선정을 취소한다는 결정문을 작성하고서도 결정일자를 9월 10일로 허위 기재한 것이다.
당시 국선변호인의 주장에 따르면, 선고일에 피고인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김판사는 이미 '부동의' 한 증거에 대해 '동의'하라고 요구했고 변호인이 이를 거부하자 변론을 종결한 뒤 즉시 판결을 선고했다.
이 뿐만 아니라 김 판사는 이후 10월 2일에 '국선변호인 선정을 취소하겠다'고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형사소송법에는 피고인과 변호인 모두가 법정에 나오지 않으면 제출된 증거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판사가 증거조사를 다시 해야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재판 중에 변호인이 없어 나오지 않은 것처럼 꾸며 '증거 동의'를 만들어 내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의 피고인은 심신장애자에 해당해 변호인을 반드시 선임해야 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1심은 물론 항소심 재판부 역시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았고, 피고인이 상고하지 않아 유죄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이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이 가능한 것은 국선전담 변호사가 판사의 인사상 감독을 받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변협은 "피고인을 위해 변론해야 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판사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한 국선전담 변호인은 판사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찍혀 국선변호인 선정을 취소당했고, 이후 공교롭게도 재위촉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국선전담 경험이 있는 많은 변호사들은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국선전담 변호사에 대한 임용과 평가의 권한을 법원이 갖고 있는 구조 자체를 문제점으로 꼽았다.
지난 2006년부터 4년간 국선전담으로 활동한 한 변호사는 "나중에 재계약이 있기 때문에 재판부의 눈치를 스스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법원이 국선전담 변호인에 대한 평판 조사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6년 동안 국선전담으로 일한 또 다른 변호사는 "탈락한 이유는 고지되지 않고 소명의 기회도 없었다"면서 "정말 열심히 일하던 동료 국선전담 변호사가 재계약에서 탈락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재판부와 사이가 안좋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고 전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법원이 국선전담 변호인제를 로클럭(재판연구관)의 경력쌓기용으로 이용했다는 의혹도 제기한 바 있다.
올해 신규 채용된 국선전담 변호사 62명 중에 1기 재판연구원(로클럭) 출신은 27명으로 무려 43%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에서 활동하는 국선전담 변호사 수는 총 299명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 고등법원이 국선전담 변호사를 임용하고 평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변호사들 사이에서 높아지고 있다.
법원이 변호사 단체와 계약을 체결해 임용 권한을 부여하거나 변호사 단체가 추천하고 재판장이 선임하는 방식 등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판사가 서류를 조작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법원이 스스로 국선전담 변호사 제도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재고하지 않는다면, 임용 및 평가 권한을 변호사협회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주장에 더욱 설득력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뉴스토마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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