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박시백 만화가 "기록은 중요하다"
13년 간 <조선왕조실록> 집필.."역사적 사명감 느껴"
조선 이후 근대사도 만화로 담을 계획
2014-08-15 22:22:24 2014-08-15 22:26:37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오는 17일까지 진행되는 제17회 부천국제만화축제의 특별전은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그린 <조선왕조실록>으로 꾸며진다. 
 
만화 <조선왕조실록>은 박시백 작가가 13년 간의 긴 집필 과정을 거쳐 지난해 전 20권을 완간한 작품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담아냈다는 것 자체도 놀랄 일이지만 만화책으로는 드물게 100만부 판매기록을 세우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 시리즈는 만화이면서도 웬만한 역사책보다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국역 조선왕조실록’을 기초로 삼은 데다 수많은 참고도서를 연구하고 집필한 덕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루한 역사책을 상상하면 오산이다. 사건 당시 각 인물의 심리를 논리와 상상의 힘으로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만화만의 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일간지에서 만평 작가로 활동하다 돌연 박차고 나와 <조선왕조실록>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박시백 작가. 무엇이 박 화백을 역사 속으로 끌어당겼을까? 부천국제만화축제 특별전 준비에 여념이 없는 박 화백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잠시 만나 <조선왕조실록> 이야기와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사진제공=부천국제만화축제 사무국)
 
-경제학과를 나오셨더라. 어쩌다가 만화를 그리시게 됐나?
 
▲경제학을 하나도 모르는 덕분에(웃음). 원래 만화 그리는 것은 어렸을 때 하고 싶어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습작은 많이 했었다. 대학에 가서 우연치 않게 이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시국이 어수선해서 학생운동을 하고 그럴 때였는데 벽에 대자보 만화를 그렸다. 5월 광주항쟁의 발단과 그 이후 과정을 만화로 그렸다. 반응이 좋았고, 그래서 다시 만화를 하게 됐다.
  
-만화만 그린 것인가?
 
▲지금도 그렇고, 그 때도 그렇고 그림은 잘 못 그린다(웃음). 회화 이런 거 특히 못한다.
 
-만화가들은 왜 다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다(웃음). <조선왕조실록> 얘기로 넘어가보자. 13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집필하면서 혹시 역사고증 시비가 일었던 적은 없었는지?
 
▲있었다. 초기에 작업을 할 때 준비과정이 길어지다 보니... 완벽하게 준비한 다음에 작업하려고 하면 끝이 없겠더라. 특히 앞부분에는 제대로 준비가 안 돼 있었는데 그냥 시작했다. 1권 같은 경우 그 당시 고려왕실의 복식이라든가 이런 것들에 대해 좀 고민을 하긴 했지만 일단 진행하자는 바람에...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이 있다. 틀린 부분은 아직 못 잡았고 개정판 낼 때 잡으려고 지금 준비 중이다.
 
-조선왕조실록 중 기억에 남는 인물로 그 동안 세종, 이순신 등을 언급하신 걸로 아는데... 조선 역사 속 인물들을 워낙 많이 다뤘으니 이 밖에도 새록새록 떠오르는 인물이 또 있을 것 같은데?
 
▲요즘은 이순신이 가장 핫한데... 세종대왕, 이순신은 언급했었고. 어쨌든 가령 대동법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김육이라든가, 병자호란 당시에 주화론을 폈다고 하는 최명길이라든가… 명분에 치우치지 않고 현실과 명분 사이를 잘 고려하면서 그래도 나라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향으로 헌신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여준 인물들이 생각난다. 
 
 
-500년에 육박하는 방대한 기간의 실록을 다루다보면 사회의 전체 시스템을 보게 되지 않나. 조선 사회의 시스템은 어땠나?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었다고 보는지?
 
▲조선시대는 정도전 등이 설계한 대로 일단 유교와 정치권력이 같이 간다. 그런 나라이고, 그런 시스템이 구축된 나라다. 중국의 천자 개념으로 하늘을 대신한 왕이 있고, 그 밑으론 사대부라고 하는 하나의 정치전문가 계급이 존재한다. 사대부들 사이에서 과거 제도를 통해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이들이 정책을 맡아보는 구조다.
 
일단 사대부에서는 굉장히 민주주의가 발달된 구조였다. 모든 대신들이 다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상소라는 형식으로 올릴 수 있고, 그 의견이 정부의 핵심적이고도 중요한 것들을 건드린다 하면 그 상소 하나로 영의정이 잘리는 일이 비일비재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누구나 정책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구조였다. 
 
또 왕의 권력에 대한 통제기능이 굉장히 발달돼 있었다. 지금처럼 삼권분립, 이런 개념은 아니지만 삼사라고 해서 왕과 신하들을 견제하는 역할이 굉장히 발달해 있었다. 심지어 조선의 국왕 같은 경우에는 삼사에 의한 견제, 유생에 대한 견제에다가 더 나아가 대신들의 견제를 받는다.삼정승이라 불리는 대신들은 이게 도저히 아니다 싶을 때 끝까지 반대를 하는데 이러면 사실상 일이 진행이 안 된다. 연산군 같이 이런 시스템을 무시하는 왕이라면 일을 진행하는 게 가능하지만 이 시스템 자체를 존중하는 왕들은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세계적으로 봐도 생각보다 민주주의가 상당히 발현된 정치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특히나 초기에는 이 구조가 아주 건강하게 잘 지켜졌었다. 과거를 통해 사대부라면 누구나 벼슬을 할 수 있었고. 경상도 산골에 있는 친구도 자기가 열심히 공부하면 벼슬을 해서 자기의 포부를 펴볼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런데 중반기 이후로 넘어가면서 변질된다. 모든 사회가 그렇듯 고인 물이 되고 썩어가기 시작하는 건데... 나중에 후반기 가서는 도승지 출신들은 과거에서 수석을 해도 벼슬자리 하나 얻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서울에 있는 대신들의 자식, 명문 대가들의 자식들이 계속해서 대물림 하는 구조로 변질된다. 또 초기에는 사대부들 같은 경우에도 군역도 다 지면서 권리와 의무가 균형을 유지했었는데 이후에는 군역 같은 것들을 전부 피하고 하면서 사실상 권리는 무한한데 의무사항은 아주 협소한, 기형적인 구조로 가면서 나라가 점점 쇠하고 변질되어 간다. 
 
-책에 보면 조선의 경우 옛 것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문화가 발전의 발목을 잡았다는 시각도 엿보인다. 그런데 지금 시대에는 너무나 옛 것을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 않나. 양 극단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선은 선조들이 해놓은 것은 일단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굉장히 강했다. 사회적 병폐가 많이 생길 경우 개혁을 해야 하는데...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히 있지만 또 그에 못지 않게 조정의 예법을 함부로 고칠 수 없다는 보수적인 주장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보수적 의견이 대부분일 경우에 개혁 요구가 있어도 시정이 안 되고 굉장히 지지부진해진다. 초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세종대왕 같은 경우에는 과거와 전혀 관계 없이 새로운 것들을 턱턱 만들어 나갔으니까.
  
지금 우리는 사실 너무나 새 것에 민감하고 빨리 수용하는데…그래도 현대의 모습이 옛날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거를 무시하고 잊고 살아갈 수는 없다. 과거의 좋은 것은 분명히 계승해야 하고. 하지만 워낙에 빨리 변하는 사회다 보니까 거기에 걸맞게 제도를 정비하고 개개인도 자기 역량을 바꿔가면서 진보적, 진취적으로 가는 게 맞지 않나 싶다. 기계적인 균형보다는…
    
-실록은 역사 기록이다. 우리 시대의 역사기록물을 후대가 보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조선왕조실록과 비교해서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진다. 상상해본 적 있나?
 
▲국정원과 관련해서 기록이 한 때 이슈였는데… 사실상 노무현 정부 이전에는 기록을 많이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대통령이 퇴임할 때 가져가고, 불리하다 싶은 건 없애버리고 그랬다. 조상들이 보면 참 한심해 할 거다. 사실 현대의 기록이라는 것은 문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동영상, 사진까지 하면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다 남겨놓는다고 해도 100년, 200년 가도록 한 번 꺼내 보지 않을 기록들이 굉장히 많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을 충실히 남겨 놓는 것은 중요하다. 유사한 일을 하게 될 때, 또 어떤 일에 있어서 연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과거 처리가 어땠는지, 그때 어떤 입장을 취했길래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자세히 알 필요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교양만화가로 분류되곤 한다. 교양만화는 아이들용이라는 사회적 편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확실히 만화 자체가 그런 평가를 받을만 했다. 아이들의 학습에 도움이 되는 식의 만화가 많았다. 사실, 만화는 굉장히 우수한 정보전달 매체라고 생각한다. 모든 기록물, 문자든 영상이든 다른 모든 콘텐츠들을 또 만화화시킬 수 있지 않나. 음악 같은 경우는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그래도 가능하긴 하고…그리고 애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지금 30~40대도 굉장히 만화에 친숙한 세대다. 잘 해내기만 한다면 그런 편견 자체는 저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한다.
 
-고우영 화백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분은 훨씬 더 극화에 강점이 있는 분이다. 정보전달도 전달이지만 그야말로 이야기를 전하는 극화 전문작가라고 볼 수 있다. 난 역사를 풀어쓴 거고. 고우영 선생님은 세계 만화계의 태두 같은 존재이시다. 감히 비교하면 안 된다(웃음).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초반에 서사적 힘이 강한데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빠진다는 평도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웃음). 왜냐면 초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만화를 바라보는 내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재미 있는 조선사를 재미 있게 잘 전달해줘야지'라고 생각했다면 세종 이후로 넘어가면서 그보다는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하는 우리의 위대한 유물이 활용이 참 안되고 있구나, 활용은 고사하고 제대로 연구조차 안 되어 있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약간은 사명감이 생긴 것이다. 기본적인 정치사 외에 철저하게 조선왕조실록에 기초해 읽어가면서 조선왕조실록의 맛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조선왕조실록을 잘 소개해야 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자연히 점점 글이 많아졌다. 통째로 상소문을 인용한다든가... 그런 게 필요했다는 생각이다. 또 후반부로 가면 사실 조선왕조실록 자체가 재미가 떨어진다. 몸이 지쳐서 속도가 느려지긴 했지만 내용 면에서는 뭐(웃음).
 
-<조선왕조실록> 완간 이후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박시백, 남경태 선생(인문저술가, 번역가), 신병주 건국대학교 교수와 함께 팟캐스트(조조록)를 진행하기도 했다. 마친 소감은?
 
과정 자체가 …난 되게 하기 싫어했다. 그 분들이 좋아서 한 거지. '이런 걸 도대체 왜 하냐'고 그랬다(웃음). 그런데 해보니까 예전에 시사만화 할 때처럼 반응들이 바로바로 오는 건 좋았다. '우리나라에 역사에 관심 갖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싶더라. 피드백이 재미 있었지만... 끝나니까 시원하다(웃음).
 
-이번 부천국제만화축제의 주제는 '만화, 시대의 울림'이다. 만화의 가능성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하다.
 
▲시대의 울림이 아닌 예술이 어디있겠나. 그림도 노래도 모두 시대의 울림이고 시대를 담아야 하고, 또 자신은 안 담으려고 해도 담기는 것 같다. 우리 어릴 때 <무지개 행진곡> 같은 거 보면... 작가들은 시대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닐텐데 시대가 읽힌다. 특히나 대중예술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시대를 담게 되는 것 아닌가. 그냥, 그런 것 같다(웃음).
  
-앞으로 계획은? 역사 만화를 더 집필할 생각이 있는지?
 
▲역사 만화를 더 할 거 같다. 원래는 끝나면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극화, 이쪽을 하고 싶었었는데 압박 때문에(웃음). 조선사에서 이어지는 1910년부터 일제 강점기, 이 시기를 다룰까 생각 중이다. 칙칙한 시대다. 정제된 텍스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당시 신문, 지금의 연구들 다 봐야한다. 조선왕조실록만큼 양은 많지 않아도 가닥 잡기가 어려울 듯하다(웃음).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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