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혜실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자리를 비운 지 131일째. 미래전략실이 이재용 부회장과의 논의 속에 그룹 전반을 관장하는 한편 계열사별로 영업관리에 힘을 쏟고 있지만 맞닥뜨린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미래전략실이 과거 회장 비서실을 모태로 두고 있는 까닭에 이 회장의 공백은 여전히 커 보인다. 그룹의 상징이자 구심점을 잃으면서 시스템은 '관리'에 머물고 있는 데다, 과거 이 회장이 위기 때마다 제시했던 마땅한 혜안도 보이질 않는다.
그룹의 8할을 책임지는 삼성전자가 그간의 광폭 성장을 반납하며 비용절감과 인력조정 등 사실상의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고, 여타 계열사들은 여전히 정상궤도에서 이탈 중이다. 모바일 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서 전자는 물론 부품 계열사들도 동반위기에 빠졌고, 스마트폰을 이을 차세대 성장 동력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배구조 개편 등 3세경영을 위한 체제 정비도 시급하다. 갈 길은 먼 데 딱히 답은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내부의 긴장과 위기감도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3분기 실적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극히 어두워졌다. 거듭된 하향 조정 끝에 급기야 삼성전자 영업이익을 5조원 아래로 고쳐 잡는 증권사들도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오비이락일까. 이 회장의 부재 속에 후계자인 이재용 부회장 두 어깨에는 상당한 무게의 짐이 놓였다. 위기 관리를 비롯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삼성이라는 공룡을 이끌 경영력과도 직결된다. 시장의 시선이 이 부회장을 향하는 까닭이다.
◇이건희 회장 부재 131일..삼성 "차질 없다"지만
이건희 회장이 입원한 지 넉 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만한 호전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한때 각종 위중설이 나돌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소문으로 밝혀지면서 시장은 차츰 안정세를 되찾았다. 다만 이 회장의 입원이 장기화되면서 공백의 깊이는 막기 어렵게 됐다.
이 회장은 지난 5월10일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가슴 통증으로 쓰러져 자택 인근의 한남동 순천향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심장마비 증세를 보여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삼성의료원으로 옮겨 급성 심근경색으로 진단받고 심장 혈관 확장 시술을 받았다. 이후 저체온 치료와 수면치료 끝에 큰 고비를 넘겼다.
다만 아직까지 온전히 의식을 되찾았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어 초조함은 여전하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이 회장의 건강상태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고, 이재용 부회장이 체제를 강화하며 무리없이 그룹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고 말했지만, 내부 직원들의 위기감과 피로도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전언이다.
이 회장은 쓰러지기 직전 속도감 있는 마하경영을 주문하며 제2의 신경영을 이끌었다. 특히 전자 외에 부진한 계열사들을 일일이 챙기며 좁은 국내시장에 머물지 말고 글로벌 시장으로 뛰어들 것을 주문하는 등 특유의 위기경영과 혜안을 발휘했다. 그의 출근경영이 조직에 주는 긴장감은 삼성의 성장 바퀴를 쉴 새 없이 돌게 했다.
◇실적 우려 급증에 주가 급락..전망도 '불투명'
이 회장의 부재 속에 삼성전자는 위기에 봉착했다. 고수익을 담보하던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이 급격히 정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중저가 스마트폰 수요는 샤오미를 위시한 중국 제조사들에게 몰렸다. 더 이상의 혁신을 기대키 어려우면서 비슷한 사양에 낮은 가격이 시장을 좌우하게 됐다.
갤럭시S4와 갤럭시S5가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한 가운데, 갤럭시노트 시리즈를 통해 대화면 시대를 열어젖힌 패블릿 시장에서도 애플이라는 최대 강적과 마주하게 됐다. 아이폰6와 아이폰6플러스가 시장에 나오면서 정체성을 버렸다는 비판도 일었지만, 대기수요는 블랙홀처럼 일순간에 애플로 빨려들었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의 실적에 대한 우려는 계속해서 커졌고, 주가 또한 힘을 잃었다. 지난 2분기 영업이익 7조2000억원으로 어닝쇼크를 기록한 데 이어 3분기에는 5조원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이달 들어 각 증권사들이 삼성전자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5조원대로 또 다시 내려잡는 등 시장의 불안감은 커졌다.
실적 우려에 따라 주가도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6월3일 149만5000원이던 삼성전자 주가는 17일 종가 기준으로 122만6000원으로까지 추락했다. 지난 3일에는 118만원으로 연중 최저점을 찍기도 했다. 불안감을 느낀 기관이 연일 주식을 내다팔면서 주가 하락을 주도했다.
문제는 향후 전망 또한 밝지 않다는 것. 한때 200만원을 웃돌았던 증권사들의 삼성전자 목표주가는 최근 150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3분기 성적표에 따라 또 다시 재조정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애플을 꺾고 시장 1위로 올라섰지만, 또 다른 미래시장 창출에 실패하면서 삼성전자는 견제 속에 가둬지게 됐다는 평가다.
◇스마트폰 부진 타개 어렵다..오비이락인가 이재용의 역량인가
실적과 주가의 동반 침체는 스마트폰 사업의 부진과 직결된다. 지난 7월 기준 삼성전자 스마트폰 점유율은 24%를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 35%보다 무려 11%포인트 크게 떨어졌다. 활보하던 중국에서는 시장 1위 자리를 토종업체 샤오미에 내주는 충격을 떠안았다.
이 과정에서 무선사업부(IM)의 수익성도 악화됐다. 무선사업부의 영업이익률은 2012년 20%를 상회했으나 올 3분기 13%까지 하락할 전망이다. 하반기 실적을 책임질 전략 모델 갤럭시노트4와 갤럭시노트 엣지가 공개됐지만 올해 메인 모델인 갤럭시S5의 판매 부진을 완전히 상쇄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달 동시에 공개된 애플 아이폰6 예약 물량이 하루 만에 400만대를 넘어서는 등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갤럭시노트4 행보에도 적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다. 자칫 갤럭시노트4마저 흥행에 실패할 경우 책임소재를 가릴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는 연말 인사 충격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임돌이 신영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차기 주력 시장은 가전, 자동차, 웨어러블, 헬스케어 시장으로 신규 사업의 성장이 모바일 시장 성장 둔화를 상쇄할 것"이라면서도 "스마트폰 시장 성장이 둔화되자 마자 그와 유사한 대체 시장이 하루 아침에 성립되기는 어려운 만큼 재성장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악화된 상황에 대해 이건희 회장의 부재 탓인지, 예견된 위기였는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 위기를 타개할 역량의 실재 여부다.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의 부재가 더 큰 위기를 불러 일으킬 것인지, 이재용 부회장 체제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부회장이 이 모든 짐을 진 것만은 분명하다"며 "그의 경영능력이 비로소 본격적인 평가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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