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광범기자] 검찰이 '정윤회 문건' 내용의 진위여부에 대해 '허위'라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정윤회씨와 청와대 비서진들이 세계일보 기자들을 상대로 낸 '명예훼손' 수사가 전환점을 맞게 됐다.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씨는 10일 '정윤회 문건'을 수사 중인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고소인 조사를 받고 있다.
정씨는 청사에 들어가기 전 취재진들에게 '정윤회 문건' 내용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이런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고, 그 불장난에 춤춘 사람들이 누구인지 다 밝혀질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정윤회 문건'에서 '십상시 모임'의 당사자로 지목된 다른 청와대 비서진들과 같이 관련 내용 모두 일체를 부인한 것이다.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씨가 1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다. ⓒNews1
◇檢,'정윤회 문건' 허위 잠정 결론..명예훼손 수사 전환점
그동안 검찰은 참석자로 지목된 인사들이 모임 자체를 부정함에 따라, 모임의 실체를 가릴 객관적 증거 파악에 주력했다. 검찰은 관련자들의 대포폰 사용 가능성까지 염두해두고 휴대전화 통신기록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모임의 증거는 아직 찾지 못했다.
검찰은 또 문건의 제보자도 찾아내 제보 내용이 '풍문'·'찌라시'에서 전해들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48)에게 관련 내용을 제보한 것으로 알려진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은 검찰 조사에서 "풍문 등을 전한 것을 박 경정이 과대포장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 경정이 문건의 신빙성을 높게 평가한 이유 중 하나였던 "김춘식 행정관으로부터 들었다"는 내용도 사실이 아니라고 시인했다.
이에 따라 '정윤회 문건' 수사의 한 축이었던 명예훼손 수사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당초 검찰은 명예훼손 성립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선 '문건의 진위 파악이 우선'이라며 진위 여부 파악에 주력해왔다.
검찰은 명예훼손 종료시까지 진위에 대한 공식 결론을 내리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다. 진위 파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감에 따라, 검찰의 수사의 칼날은 세계일보를 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 고소 당한 세계일보 관련자는 6명이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세계일보 기자 3명이 정씨와 청와대 비서진들에게 고소 당했고, 발행인(사장)과 편집국장 등 3명도 청와대 비서진들로부터 고소된 상태다.
언론사의 고위직 인사들까지 얽혀있는 이번 사건에 대해 검찰은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검찰 관계자는 "(언론 보도와 관련된 부분이니까) 아주 세심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 근무 당시 작성한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진=세계일보)
언론 보도 내용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제기된다.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을 규정한 형법 309조를 보면, 출판물로써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을 경우'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등의 처벌조항을 적시하고 있다. 310조에는 위법성 조각사유를 규정하고 있지만 보도 내용이 허위일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대법 판례 "진실 믿을 만한 이유 있으면 위법성 없어"
그러나 우리 사법부는 언론보도 내용이 허위인 경우에도 무조건적인 처벌을 하지 않는다.
대법원 판례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 없더라도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에 대한 판단은 적시된 내용, 자료 등 근거의 확실성 및 신빙성, 사실 확인의 용이성, 진위여부 위한 충분한 조사 여부 등이 고려된다고 판시했다.
이 판례를 이번 사건에 대입해 보면 처벌이 어렵다는 점은 더욱 분명해 진다.
세계일보는 청와대 문건을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 등이 해당 문건의 내용을 '찌라시'라고 규정했지만, 청와대 안에서 생산된 문건임을 인정했다.
청와대 근무 당시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현 도봉경찰서 정보과장)도 문건의 진실성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그의 상관이었던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도 "문건 신빙성은 60% 이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더욱이 문건의 작성자인 박 경정은 문건 작성과 관련해선 고소조차 당하지 않은 상황이다.
문건의 세계일보 유출 경로를 수사를 통해 거의 밝혀낸 것으로 전해지는 상황에서, 검찰은 세계일보 기자들을 상대로 기사 작성 경위 조사를 이유로 소환 통보를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세계일보 기자들이 이에 응할 확률은 낮다는 것이 언론계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 경우 검찰이 과거 'PD수첩' 광우병 보도 당시처럼 강압적인 수사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강력한 대응'을 경고한 상황에서 검찰이 청와대의 바람대로 무리한 수사를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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