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국제유가가 바닥을 모르고 급락하면서 산업계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에너지 자원을 기반으로 고성장했던 신흥국들이 저유가 유탄을 맞고 재정난에 휘청이면서 이들 시장을 타깃으로 수출 전략을 수립해 왔던 국내 기업들도 덩달아 위기를 맞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가가 하락하면 비산유국인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원자재값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수출에서 마진을 늘릴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한다. 역으로 수출을 통해 마진을 남겨야 하는 소비국의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수출 자체가 줄어드는 부정적 효과도 동반한다.
최근에는 러시아를 비롯한 신흥국들의 화폐 가치가 곤두박질치면서 신흥국 시장 전체가 위축되고, 그 여파가 선진국에까지 전이되면서 유가 인하에 따른 원자재가격 이득을 상쇄하고도 남는 위기가 예고되고 있다.
당장 신흥국으로의 수출은 물론 오일머니의 원천인 중동 국가로의 제조업 수출과 건설 및 플랜트 수주에 유가하락이 발등의 불이 됐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지난 10년간 신흥국에 주목했던 우리기업들의 수출 전략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17일 한국석유공사와 오피넷에 따르면, 두바이유는 전날 현물기준 배럴당 56.50달러를 기록했다. 서부텍사스산(WTI) 또한 55.94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정확히 6개월 전인 지난 6월 16일 109.27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6개월 사이에 50% 수준까지 폭락했다.
이 같은 국제유가의 폭락은 자원부국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원을 팔아서 남기는 이윤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산 셰일가스에 대한 두려움이 짙어지면서 감산으로 수급 조정에 나서기는 어려워 보인다.
세계 3대 산유국으로 석유와 가스 등 자원 수출이 전체 수출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는 통화가치가 추락하면서 중앙은행조차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까지 내몰렸다. 동남아 주요 산유국인 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는 16년 만의 최저치로 종이조각이 되었고, 브라질의 헤알화도 10년 만의 최저수준인 달러당 2.685헤알(15일 기준)까지 떨어졌다.
유가하락으로 가장 심각한 고민에 빠진 곳은 정유업계다. 유가가 하락하면 이를 정제해 만든 최종 석유제품 가격도 하락해 정제마진이 떨어진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4대 정유사들의 매출 절반 이상은 수출에서 나온다. 대부분 수출이 동남아와 중국 등 신흥국에 집중돼 있다.
정유업체 관계자는 "심각한 상황 정도가 아니다. 대책도 전무한 상황"이라며 "이대로 유가가 추가로 하락하면 정유업계는 정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까지 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동차업계는 기본적으로 유가하락을 반기는 분위기지만, 금융위기를 맞은 러시아시장 등에서는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올 들어 러시아 자동차 시장이 지속적으로 축소되는 중에도 꾸준히 두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강세를 보였다.
루블화 환율 하락으로 현지생산기지의 생산성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현대차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공장에서 소형차 쏠라리스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기아차 역시 같은 공장에서 위탁생산을 통해 프라이드를 현지 주력차종으로 판매하는 중이다.
중동의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수주를 확보해왔던 선박과 해양플랜트 산업은 유가폭락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11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선박류 수출은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 운반선과 FPSS 등 해양플랜트 수출 감소로 전년동월대비 3.8% 감소한 24억4000만달러를 수출하는데 그쳤다. 11월말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주요 수출지역인 중동의 재정사정은 더 열악해질수밖에 없다.
중동지역의 건설수주 역시 마찬가지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국내 건설사들이 올 들어 지난 11월까지 사우디에서 올린 수주액은 총 29억5113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87억5826만달러의 3분의 1수준으로 급감했다.
정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유가하락이 처음에는 국내 기업들에게 호재요인이었지만, 갈수록 악재로 작용하는 모습"이라며 "우리 기업들의 경우 선진국 기업들처럼 에너지 절약을 잘하는 편도 아니어서 에너지가격 인하효과가 크지 않고, 이익도 기계류나 자동차 등으로 편중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 연구위원은 이어 "유가가 내려가면 원가하락요인이 발생하지만, 우리가 주로 수출하고 있는 자원부국들과 개도국들의 경우 유가하락이 금융쪽의 위기로 확대되고 있고, 이것이 실물경제로 번지면서 해외수요를 더욱 줄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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