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서울 개화동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가 L당 1476원에 판매되고 있다. ⓒNews1
[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정부가 국제유가 하락을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압박에 나서자, 정유 업계에서는 볼멘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정작 휘발유값의 절반을 차지하는 세금은 줄이지 않으면서, 업계에 이익을 줄일 것을 주문하면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9일 오전 서울 강남 에너지기술평가원에서 대한석유협회와 주유소협회 등 석유·액화석유가스(LPG) 유통업계와 간담회를 개최했다.
산업부는 이날 간담회에서 "최근 국제유가의 하락분이 국내 석유제품과 LPG 판매가격에 적시에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관련 유통업계가 자발적으로 협조해 줄 것"을 주문했다.
정부의 명분은 국제유가 급락에 있다. 실제 국내 도입원유의 80%를 차지하는 두바이유는 지난해 1분기 평균가격이 배럴당 104.01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 4일에는 배럴당 46.6달러를 기록, 1년 전 대비 55%나 급락했다.
반면 국내 휘발유의 전국 판매가격은 지난 6일 기준 리터당 1564.04원으로, 지난해 1월 대비 17% 하락하는 데 그쳤다. 국제유가 하락에 맞춰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도 내려가고 있지만, 하락폭은 미미하다.
반면 관련 업계는 국제유가 하락분을 반영해 국내 제품가격을 충분히 내렸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유업계와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제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455.2원으로 연초(1월 첫째주)보다 327.5원 하락했다.
같은 기간 정유사의 세전 휘발유 가격은 877.1원에서 541.4원으로 335.8원 내렸다. 국내 휘발유 가격이 국제유가보다 하락폭이 크다. 유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류세를 더하면 주유소 판매가격은 같은 기간 1887.6원에서 1594.9원으로 292.7원 내렸다.
우리나라는 유가 등락에 상관없이 석유량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고정세율을 적용한다. 석유 소비량이 늘면서 휘발유 판매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월 49%에서 12월 말 56%까지 치솟았다. 이 기간 세금은 전체 가격의 10%에 해당하는 부가가치세 변동에 따라 917.4원에서 890.9원으로 26.5원 내리는 데 그쳤다.
정유업계는 세금이 휘발유값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 각종 물류비·시설운영비 등 고정비를 제외하면 실제 마진은 리터당 10원대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정유업계는 지난 2011년 이명박 정부의 '정유사 때리기'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며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을 한 이후 정부는 알뜰주우유소와 셀프주유소 설립을 적극 지원하며 휘발유 가격 인하를 압박했다.
정부는 이날 석유·LPG 유통업계를 소집해 가격 인하를 요청하는 한편 오는 3월부터 매주마다 각 구 단위별로 가장 싼 주유소와 비싼 주유소를 공개하기로 했다. 휘발유 가격인하의 발목을 잡고 있는 유류세 인하에 대해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세금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못을 박아둔 상태다. 결국 정유사와 유통업계의 몫으로 떠넘긴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유가일 때 유가 인하를 요구하면 수용할 수 있지만, 유가 급락으로 손실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내리라고 압박하는 것은 명분에도 맞지 않는다"면서 "각 사마다 정유사업에서 3년째 수익이 부진한 상황에서 정부가 시장가격 통제에 나서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속내는 따로 있는 듯 보인다. 담뱃세 인상 등 세수 걷기에 물가마저 출렁이면서 서민들의 불만이 급증하자 정유업계를 압박해서라도 기름값을 인하해 민심을 달래보자는 심산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편 국제유가 급락으로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정유 3사는 지난해 연간 적자 전환이 확실시 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1977년에 이어 창사 이래 두 번째, 1980년 SK그룹이 인수한 이후로는 처음으로 적자가 예상된다. S-Oil도 34년 만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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