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사진제공=현대차그룹)
[뉴스토마토 원나래기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005380) 부회장 부자의
현대글로비스(086280) 지분매각 시도가 일단 불발됐지만, 이런 행보가 시장의 예측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향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권 승계에 대한 시나리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13일 현대차그룹과 국내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정 회장 부자가 추진했던 현대글로비스 주식의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는 물량이 방대하고, 일부 조건이 맞지 않아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날 정 회장 부자는 보유 중인 현대글로비스 주식 1627만1460주(43.39%) 중 502만2170주(13.39%)를 매각키로 하고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투자자 모집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분 매각에 성공하면 정 회장 부자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30% 수준으로 낮아진다. 대신 정 회장 부자는 약 1조3000억원 규모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 지분을 20.78%, 현대차는
기아차(000270) 지분을 33.88%, 기아차는
현대모비스(012330) 지분을 16.88% 갖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 6.96%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으며, 정 부회장은 현대모비스 보유 지분이 없다.
다른 계열사도 현대모비스가 주요 주주다. 정 부회장이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인 현대모비스 지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주목되는 이유다. 그룹의 정점인 현대모비스에 경영권 승계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얘기다.
◇현대차그룹 전체 지배구조도.(자료제공=삼성증권)
시장에서는 현대글로비스 주식가치를 높여 정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 '실탄'을 마련해준 후 현대모비스와의 지분 교환을 추진하는 것이 유력한 시나리오로 거론돼 왔었다.
실제 전날 정 회장 부자의 글로비스 주식 매각 방침이 알려졌을 때 시간외 거래에서 현대글로비스는 하한가까지 폭락한 반면, 현대모비스는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렸다. 그리고 13일 지분 매각 불발 소식에도 여전히 현대글로비스는 하한가, 현대모비스는 상승세를 탔다.
이번 지분매각이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며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지분교환이 추진될 것이라는 예측들이 시장에서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블록딜 재개 여부에 대해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으나, 공정거래법 취지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 등 내부거래 규제를 강화하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이 같은 기조는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을 통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재추진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고 보고 있다.
한 전문가는 "이번 매각시도 건으로 정 회장의 의도가 어느 정도 확인됐다는 점에서 분 매각 재추진 가능성이 높다"며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 과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분 매각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이날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현대글로비스 주식 매각 추진 의도에 대해 계열사 간 지배구조를 정리하기 위한 목적에 무게를 실었다. 경영승계 보다는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하는 공정거래법과 관련이 있다는 발언이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글로비스 주식 매각이 승계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있다.
특히 여론 분산 효과를 노려 향후 삼성그룹 지배구조 재편 움직임에 맞춰 경영승계와 사업재편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편으로는 매각 불발 이후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합병설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정 부회장이 갖고 있는 계열사들 지분을 현대모비스 지분과 스와프(교환)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합병설은 그간 시장에서 거론돼왔던 선결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순조롭게 합병하기 위해서는 두 회사의 시가총액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야 하고, 현대모비스의 기아차 지분을 해소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것이 우선 해결돼야 하는데, 현재 현대글로비스의 시총은 11조2500억원으로 현대모비스 23조1618억원의 48.6% 수준에 불과하고 순환출자 고리 해소도 어려운 작업이다.
계열사 지분 스와프 역시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고 대규모 손실까지 동반할 수 있어 가능성이 높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할인율을 재조정하거나 블록딜 물량을 분산하는 등의 다른 방법으로 매각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며 "무엇보다 이번 거래 여부를 통해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는 대체적으로 의견이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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