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글로비스 급락에 투자자 속수무책..공시제도 허점 없나
거래소 "정 회장 블록딜은 단순 개인매매..공시사항 아냐"
증권가 "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일환..대응책 마련해야"
2015-01-15 16:45:37 2015-01-15 16:45:37
[뉴스토마토 김병윤기자] 최근 진행된 현대글로비스(086280) 최대주주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부자의 지분 블록딜 시도는 일단 무산됐지만 시장에는 만만치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하지만 이번 이슈는 공시규정에 해당되지 않아 투자자 입장에서는 제한적인 정보를 얻을 수 밖에 없었고, 주가 급락에도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에 향후 유사한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공시제도는 정보 불균형과 주가 급등락 등으로부터 투자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것이지만 빈 틈이 존재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지난 13~14일까지 이틀간 22.8% 급락했고 시가총액은 약 2조5688억원이 증발했다.
 
이는 지난 12일 장 마감 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그의 아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보유 지분 중 13.4% 매각을 추진하자 지배구조 프리미엄이 사라지면서 매도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현대글로비스의 지난해 3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정 회장 부자의 지분율은 총 43.39%에 달하고,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이슈와 끊임없이 연계돼 왔기 때문에 증권업계에서는 이번 블록딜을 그룹경영 차원의 문제로 해석하고 있다.
 
송재학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본격적인 지배구조 재편 전까지는 사업구조 재편·일부 지분매각 등을 통해 향후 발생 가능한 변화에 대비하는 준비과정이 이뤄질 것이며 이번 딜도 이런 일환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시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은 정 회장 부자의 블록딜은 기업의 활동이 아닌 개인의 매매거래이기 때문에 공시할 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정 회장 부자의 블록딜은 주주 개인의 매매거래이기 때문에 공시 사항에 속하지 않는다"며 "만약 블록딜이 일어났다면 최대주주 지분변동과 관련한 공시는 할 수 있겠지만 기업의 행위가 아닌 개인의 행위는 공시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블록딜은 정 회장 부자 개인의 일이지 현대글로비스의 일이 아니지 않냐"며 "거래소는 회사를 상대로 공시업무를 하기 때문에 이번 건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 역시 "회사의 경영에 대해서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거래소에서 조회공시 요구를 할 수 있고 조회공시 해당 여부 판단은 거래소에서 한다"며 "법적 공시에는 그러한 사항에 대한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조회공시란 거래소가 기업의 주요 경영사항 등을 비롯해 풍문·보도의 사실여부의 확인하기 위해 기업에 답변을 요구하는 것으로 풍문 등이 없더라도 주가나 거래량이 거래소가 따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경우에 조회공시를 요구할 수 있다.
 
이번 블록딜을 예로 들면, 무산된 블록딜이 재추진 될 가능성이 있는 지 그리고 블록딜의 배경이 공정거래법 준수에 따른 것인 지 등 투자 판단에 중요한 사항을 거래소가 조회공시를 요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거래소 관계자는 블록딜 규모가 1조3500억원에 달하는데도 "조회공시 역시 기업의 활동에 국한된 것이기 때문에 이번 정 회장 부자의 블록딜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거래소 공시규정에는 조회공시 외에도 이번 블록딜과 연관된 내용이 더 있다.
 
먼저 해당 기업의 임원(이사·감사 또는 사실상 이와 동등한 지위에 있는 자를 포함한다.) 등의 공정공시 정보제공자가 기업의 장래 사업계획 또는 경영계획 등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는 공정공시가 있다.
 
또 거래소가 투자자의 투자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 그 내용을 신속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관계 기관에 요청해 확인한 내용을 기업을 대신해 공시하는 거래소 공시도 있다.
 
하지만 거래소 측은 이번 블록딜을 장래 사업계획이나 경영계획으로 보기보다는 개인의 지분 매각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판단으로 공시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번 블록딜의 성격이 사실상 현대차그룹의 경영활동과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개인의 지분매각으로 보는 것은 너무 편협한 판단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인식이다. 때문에 현행 공시제도의 허점이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증권업 관계자는 "정 회장 부자의 블록딜은 이번에 무산됐지만 일감몰아주기 논란을 벗어버리기 위해서 지분 매각은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며 매각이 추진된다면 주가는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증권업계는 사실과 거짓 정보가 범람하는 만큼 투자자들을 오도할 수 있어 관계 기관에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신년사를 하고 있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정 회장은 지난 12일 그의 아들 정의선 부회장과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대량 매각하려 했으나 결국 무산됐다. 정 회장 부자의 블록딜 소식이 전해지자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2거래일 동안 22.8% 급락했다.ⓒNews1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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