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지난해 금융당국이 마련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이 은행권에 속수무책으로 투하되는 정피아(정치권 출신)나 관피아(관료 출신)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후보자의 "금융권 낙하산 인사를 차단하겠다"는 발언도 무색한 상황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정치권 인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선정해 논란을 빚은
우리은행(000030)을 비롯해 하나은행,
기업은행(024110) 등 시중은행들과 일부 지방은행까지 정치권 및 관료 출신 인사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마련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은 사외이사의 자격요건으로 '금융경제경영회계법률 등 관련분야의 경험과 지식을 보유하고 직무수행을 위한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교수 출신의 사외이사들만으로는 경영일선 경험이 부족해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이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교수 출신의 사외이사 인력풀이 줄면서 그 자리를 금융위가 마련한 모범규준에 적합하지 않은 정관계 출신 인사들이 채우고 있다.
우리은행은 사외이사 후보 4명 가운데 정한기, 홍일화, 천혜숙 후보 등 3명을 정치권 출신으로 선정했다.
정한기 후보는 2012년 19대 총선 때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에 공천 신청을 했으며 대선 때는 선거 캠프에서 활동했다.
홍일화 후보은 한나라당 부대변인과 17대 대통령선거대책위 부위원장 등을 거쳤다. 천혜숙 후보의 남편은 이승훈 청주시장(새누리당)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하나은행의 현재 사외이사들도 대통령 비서실 정책기획비서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거친 박봉수 이사, 금융감독원 출신 김영기 이사, 대검찰청 공안부장 출신 이기배 이사, 외교부 주중 경제공사를 거친 정영록씨 등 정관계 출신이다.
농협금융지주의 경우 사외이사 대부분이 정부와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다.
전홍렬, 손상호 사외이사는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 부원장보를 역임했고 민상기, 김준규 사외이사는 기재부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장, 검찰총장을 지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조용 사외이사는 강원도 정무부지사, 새누리당 대표 특보를 거쳤다. 한미숙 사외이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중소기업비서관을 거쳐 이명박대통령기념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지방은행도 예외는 아니다. 경남은행의 박원구 사외이사는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민생경제위원을 역임했고, 권영준 사외이사는 한나라당 경남선거대책위원회에 몸을 담았다.
금융권에서는 사외이사의 자격요건과 평가기준을 포괄적으로 제시한 지배구조 모범규준에 헛점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모범규준 사각지대에 있는 정관계 낙하산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관계 인사들이 금융권에 득세하고 있지만 정작 금융당국은 입을 다물고 있다"며 "임종룡 금융위원장 내정자도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고 있어 외부인사 압력을 차단하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 명쾌한 해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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