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4.16 - 기억을 넘어 행동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
2015-04-20 17:10:00 2015-04-20 18:34:37
뒤늦게 합류하기 위해 몸을 실은 버스에서 목적지에 다다랐음을 안 건 그 튀는 색깔 때문이었다. 시험 기간의 피곤함에 넋 놓아 갈 곳 잃은 초점에도 불구하고, 불현듯 곁눈의 시야 안에 가득 찬 색깔, 형광색이었다. 하나였으면 멍 때리던 내 시야에 들어올 리 없었다. 형광색의 대열이었다. 그 순간 피곤함에 파묻혀있던 온몸의 무기력함이 힘찬 심장박동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린 건 예정 시간보다 10분 일찍이었다.
 
◇이 대열로 인해 안내방송을 듣지 않도고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사진=바람아시아)
 
횡단보도를 건너려 신호를 기다렸다. 6시에 청년들이 이곳에 도착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옆엔 3명의 형광색 조끼를 입은 무리가 있었다. 외관상으로 나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을 힐끔힐끔 보면서 문득, 그들도 우리와 같은 또래 젊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경찰 인력 등의 사진을 이리저리 찍어대며 행진 대열을 향해 움직이는 나를, 그들도 인식한 듯했다. 그런데 그 눈빛엔 어떤 적대감도, 일말의 따가움도 없었다. 잠시 딴 길로 새자면,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순수한 추모로써 질서 있게 헌화하려던 대학생 및 시민들을 과잉진압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이때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들과 우리를 묘한 거리감으로 갈라놓는 것은 그들 스스로일까, 누군가에 의한 꼭두각시극일까.
 
◇4월 16일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 1주년 대학생 추모 행진(자료=바람아시아)
 
이날 행진엔 고려대·국민대·광운대·경기대·경희대·동국대·동덕여대·덕성여대·명지대·연세대·이화여대·서울대·서울시립대·서울여대·성공회대·성균관대·성신여대·숙명여대·숭실대·한국외대·한양대·한신대·항공대·홍익대 등 총 24개 대학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등 여러 학생단체들이 참여해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을 위한 결의를 다졌다.
 
행진은 동서남북의 4개 집결지에서 각기 다른 학교의 학생들이 출발하여 청계광장에서 모이는 방식이었다. 경희대·한양대 등은 동쪽 경희대 정문, 고려대·동덕여대·성균관대 등은 북쪽 마로니에 공원, 이화여대·연세대·경기대 등은 서쪽 이대 정문, 동국대·한신대 등은 남쪽 남영사거리에서 각각 출발하였다.
  
횡단보도를 건너자 확성기에 실린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정확히 오후 6시에, 드디어 대열에 합류했다. 청계광장 파이낸스센터 앞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대학생들로 가득 찼다. 방금 온 또 다른 학생 대열은 자리가 부족하여 앉기까지 시간이 꽤 지연될 정도였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난 후,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묵상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결의대회가 진행되었다.
 
◇사진=바람아시아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김한성 의장은 “작년 4월 16일과 오늘이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 정부는 세월호 유족들이 바라지도 않는 보상 이야기를 꺼내 진상 규명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 대학생들이 이 자리에, 이렇게 많이 모였다. 오늘만이 아니라, 진상 규명이 될 때까지 함께 해나가자!”
 
숭실대 15학번 최사라 학생은 희생자들에게 직접 쓴 편지를 낭독했다. ‘나 하나부터’ 행동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다음엔 유가족의 차례였다. 단원고 희생자의 언니였다. “청년들이 이 자리에 있는 것, 역사가 기억할 것입니다. 저는 이 나라가 얼마나 썩었는지, 어른들이 얼마나 비겁한지, 저는 전부 보았습니다. 현장에서 분명히 보았습니다. 여러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마세요”라며 운을 뗀 그는, 몇몇 유족들을 향한 불편한 시선에 관해 말하며 분을 터뜨렸다.
 
“혹자는 ‘정부가 해경을 해체하고 안전처를 신설하며 관련법을 손보는 데 무엇이 더 문제냐, 유가족이 정치색을 입고 변해간다’고 말합니다. 세월호 이전에도 법은 있었습니다. 과적하지 말라, 화물을 제대로 고정하여라. 그러나 기업들은 정부와 결탁하여 비리를 저지르고 법을 모두 어겼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또 그 허수아비 같은 법으로 우리를 가만히 있게 하려 합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과 왜곡된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말했다. “오늘 박근혜 대통령이 팽목항에 방문하여 유가족을 위로했다고 언론은 보도했습니다. 오늘 유가족들은 팽목항의 분향소를 임시 철거 했습니다. 대체 박 대통령은 누굴 위로하고 해외로 나갔단 말입니까”. 그는 희생된 동생을 이야기할 땐 감정이 북받쳐 올라 울먹였고, 끝으로 자리에 모인 수많은 대학생들에게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하며 물러났다.
 
이번엔 성신여대, 이화여대 등 여러 학교의 학생회장들이 나와 결의문을 낭독했다.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프린트된 결의문을 한 장씩 돌리기 시작했다. 내 뒤에 서서 지켜보던 중년의 아저씨도 한 장 달라고 했다. 결의문의 구호는 다음과 같았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진상 규명 가로막는 시행령을 폐기하라”
 
“바닷속에 갇혀 있는 세월호를 인양하라”
 
“진상 규명 그날까지 끝까지 행동하자”
 
 
각 구호의 마지막 마디마다 앉아있던 학생들까지 큰 목소리로 함께 제창했다.
 
◇단원고 희생자 학생들 각각에게 쓴 피켓을 들고 있는 학생들(사진=바람아시아)
 
추모 결의대회가 끝난 후, 학생들은 일제히 7시로 예정된 범국민추모문화제 참석을 위해 시청광장으로 발을 옮겼다. 나 역시 재빨리 그 열을 뒤따라가 합류했다.
 
아직 해가 지기 전,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새하얀 국화꽃을 들고 다니는 사람, 책자를 나눠주는 사람, 방석을 파는 사람. 의경, 대학생, 고등학생, 아저씨, 아주머니 할 것 없이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한 데 모였다. 4월 16일, 딱 일 년 되는 날이다.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접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발만 동동 구르며 한없이 깊고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는 그들을 지켜봐야 했던 그날.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4.16 약속의 밤에 모인 사람들(사진=바람아시아)
 
노란 리본을 받았다. “오늘이 일 년 되는 날이라서 특별히 손수 만든 거예요. 달아주셔요.”하고 가는 분의 눈빛과 손길도 받았다.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여기도, 저기도 노란 빛이었다. 아름다웠다. 떠나간 그들과 그들을 기리는 사람들. 기억을 넘어 행동으로, 발로 뛰며 알리고 호소하는 사람들. 보통의 의지와 열정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랑, 사랑으로 가능한 게 아닐까. 여기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죄 없이, 이유 없이 떠나간 그들을 한 사람의 사람으로서 ‘사랑’하고 있었다.
 
오후 7시 행사 시작 전 앉을 자리를 찾아 무대 앞쪽에서 헤매던 중, 뒤쪽에서 반복적으로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정갈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두 노신사였다.
 
“노인네 말 좀 들어줍시다. 앉아서 함께 봐요!”
 
세월호로 인해 양분된 국민의 반대편 한 축엔, 노인들이 꽤 많았다. 그런 연유로 두 노신사가 퍽 인상적이었나 보다. 행사 내내 두 노신사는 유족들에게 “힘내세요!”라고 소리치며 용기를 북돋았다. 사실 나도, 내 옆의 동료도, 아이와 함께 온 아저씨도, 아줌마도, 아가씨도, 그 자리의 수만 명의 사람들이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유독 그 노신사의 위로가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인지. 마치 위로받지 못 할 것 같았던 사람에게 받는 뜻밖의 위로 같았다.
 
행사 일정 첫 번째 순서는 ‘내게 하지 못한 말’ 공연이었다. 일본의 치과의사인 간바야시 히데오씨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작사한 곡으로, 나카무라 히로키씨와 이초우씨가 불렀다. 다음은 이 노래의 후렴구이다.
 
 
네가 있어 소중했던 시간들
너는 내게 선물이었어
네가 있어 따스했던 순간들
내 맘 속에 살아 숨쉬어
네게 하지 못한 말
사랑해
 
 
영상과 함께 불려진 이 노래는 그들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들 많이 있었지 항상 그랬던 것처럼 미래가 온다 믿었지 이루고 싶었던 꿈을 얘기했었지’ 그랬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움직임을 담은 영상도 공개되었다. 팽목항, 유가족들의 행진, 그들을 방해했던 세력과의 충돌, 그리고 삭발까지. 눈물을 머금고 죽을 각오를 다지며 진상규명을 외치는 모습, 아이들의 사진을 안고 시행령 폐지를 외치며 행진하는 이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한없이 애처로워 보이던 이들은 이제 조금 단단해보였다. 슬픔이라는 망치로 단련된, 서글픈 모습이었다.
 
추모 시 낭송이 이어졌다. 도종환 시인의 화인, 진은영 시인의 부모에게, 유용주 시인의 국가를 구속하라 란 시가 낭독되었다.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그 날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한편, 아직 땅으로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사람들이 있다. 366일째 진도 앞 바다에 있을 다윤이를 기다리는 아빠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해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시민들은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다윤이 아빠를 다독였다. 일 년이 넘었다. 시신마저 만져보지 못하고 슬퍼하기만 한 지.
 
◇다윤이 아빠의 발언(사진=바람아시아)
 
합창과 락 밴드의 공연이 펼쳐졌다. 모두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것들이었다. 합창단 앞에, 어떤 여자 분이 나와 섰다. 다소 어리게 보이는 내 또래, 그 아이의 언니였다. 자신에게 ‘미안하다’란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정말 자주 듣는데, 정작 자신이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에게는 미안하단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왜 사람들은 미안하다고 하면서, 당장 죽을 것 같다고, 우리가 내민 손은 잡아주지 않는 걸까요. 여러분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살려주세요. 제발 이 나라에서 숨 쉴 수 있게 도와주세요.” 라고 했다.
 
 
“저희가 내민 손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 높으신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제발 세월호를 인양해주세요. 저는 실종된 다윤이의 언니를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들어서 미칠 것 같습니다. 시행령을 폐지해주세요. 제 동생이, 많은 동생들이 편히 눈 감을 수 있도록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세요."
 
 
대통령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대통령님, 가화만사성이란 말을 아시나요? 가정이 화목해야 밖의 일이 잘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대통령님 지금 이 나라는 너무 병들어 있습니다. 너무나 아프고, 살려달라며 울며 절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지금 당장 집에서는 아이가 죽어가고 있는데, 밖의 일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제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먼저인지 우선순위를 다시 정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엔 세월호 인양 퍼포먼스다. 두 손 안에 감싸인 형상을 하고 있는 세월호에 와이어가 설치되고, 가족들의 그리움과,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힘껏, 천천히 위로 올려졌다.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천개의 바람’이란 합창과 함께 높이 올려졌다. 멀지 않은 미래에 현실로 다가올 수 있기를. 차디찬 물속을 벗어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가수 이승환의 축하무대에서는 세월호 100일 공연을 왔던 이승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 없는 현실 앞에, 그는 위로의 노래를 전했다.
 
자리를 떠나면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외치는 사람들을 보았다. 아름다웠다. 한 뜻 한마음이 되어가는 그들을 보면서 이 움직임이 멈추지 않기를 바랐다. 이제 우리는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다.
 
선장은 “가만히 있으라” 했고, 아이들은 ‘가만히’ 있어서 돌아오지 못했다. 그 이후 국가는 “가만히 있으라” 했고, 우리는 ‘가만히’ 있었다. 그 결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특별법 시행도, 세월호 인양도 어영부영. 뭐 하나 속 시원히 풀리는 게 없었다. 그래서 아직도 그 9명은 그 물속에 ‘가만히’ 있다. 오늘이면 368일째다. 매일 매일을 세면서도 정신과 마음만큼은 그 날, 그 시간에 멈춰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더 이상 “가만히 있으라” 하지 말자. “이제 그만 좀 해라”라고 쉽게 말하지 말자.
 
“인권의 문제다. 정치로 보지 마라.” 미국의 어느 유명인사가 던진 말이다. 나는 여기에 한마디 더 하고 싶다. 유가족들을 세금도둑으로 몰아가려는 세력들에게 말하고 싶다. ‘인권’의 문제다. ‘돈’으로 보지 마라. 그 누구도 마음대로 할 자격이 없는 게 생명이다. 그 존재 자체로 어떤 이들에겐 빛이었던 사람들이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불가능에 떼쓰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희생자의 가족으로서 알고 싶은 것이다. 적어도 ‘왜’ 그런 건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그날의 함성은 내 사람이, 어떻게, 왜 떠나갔는지는 알아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제가 죽은 뒤에 진실이 밝혀진다면 지금 죽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다. 사실 이들은 자신들이 이미 ‘죽었다’고 하는 이들이다. 더 이상 물러설 뒤도 없는, 다 잃어서 잃을 것도 없는 이들에게 더 이상의 차가움은 벅차다. 어제 밤바람이 차가웠다. 캡사이신 최루액은 더 차가웠을 것이다. 강철로 된 버스의 벽은 차가웠을 것이며, 콘크리트 바닥은 차디 찬 그들의 몸과 마음을 차게 하다못해 꽁꽁 얼려놓았을 것이다. 더 이상 이들을 몰아세워 더 끝까지 밀어내려 하지 말고, 더 이상 이들의 상처를 덧나게 하지 말아 달라. 그 손을 조금만 따스한 시선으로 보아 주고, 잡아 주자. 부디, 이들에게 약간의 봄기운을 허해 달라. 봄을 잃은 지 일 년이 되어, 봄이 온지도 모른 채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이들이다.
 
세월호, 벌써 일 년이다. 대학생들이 외쳤듯이, 그 일 년 동안 그대로다. 사람들은 “일 년이 지났어도 기억한다”고 한다.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기억의 전제는 과거다. 그렇기에 세월호는 기억할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일 년 전 그대로다. 그 말인즉, 세월호는 여전히 현재이고 오늘이다. 하여 세월호는 아직 기억할 것이 아니다. 행동해야 할 때, 연대해야 할 때다. 세월호를 추모하고 그 진실을 밝히는 것조차 정치 프레임에 가둔다면, ‘인간으로서 당연한’ 이 행위들을 위해 우리는 맞설 수밖에.
 
세월호 추모 행사 중 위에서도 언급했던, 한 세월호 희생자 언니의 절절한 호소를 옮기며 글을 맺는다.
 
 
“2014년 4월 16일, 저희는 동생들이 죽어가는 걸 생방송으로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제발 저희가 죽어가는 것만은 지켜보지 말아주세요. 제발 저희와 함께 행동해주세요. 저희가 내민 손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강윤철·문혜현 기자 www.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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