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법원과 검찰 중에 대한민국 법원과 검찰만큼 사과를 자주 하는 나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최근만 해도 양승태 대법원장은 소송 당사자에게 "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했던 '막말 부장판사' 사건으로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김진태 검찰총장도 '음란 지검장' 때문에 "면목 없고 송구하다"며 몸을 낮췄다.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은 3부 요인 중 하나로 그 직책이 엄중하기 이를 데 없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검찰총장이란 직책 또한 그에 버금간다. 대법원장과 검찰총장의 잦은 사과는 그래서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대법원장과 검찰총장의 그 잦은 사과는 '현직 구성원'의 비리, 추문, 구설수 안에서만 맴돌고 있다. 과거 군사정권의 품에 안겨 입맛대로 수사하고 눈치 주는 대로 판결했던 오욕의 역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사과는 없었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과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한다"고 공식 사과했지만 이미 10년 전에, 그것도 단 한번 있었던 일이다. 그나마 검찰은 지금까지 입을 닫고 있다. 그러고 보면 최근의 대법원장과 검찰총장의 사과들은 소나기나 피하고 보자는 식의 '여론 무마용'에 불과했던 셈이다.
지난 14일 '유서대필 사건'이 조작으로 백일하에 드러났다. 무려 24년만이다. 당시 사건 진행경과를 뜯어보면 검찰은 처음부터 미리 짜여진 시나리오에 사건을 우겨 넣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사법부도 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검찰이 적어준 공소장대로 1, 2심에서 대법원까지 유죄를 인정했다. 한 마디로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검찰과 법원의 합작품인 것이다. 군사정권 끝물까지 충성을 다했던 사법부와 검찰의 치욕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과는 고사하고 유감표명 한마디 없다는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이슈가 있을 때마다 내부 게시판에 올라오던 젊은 판·검사들의 자성적 비판조차 없다는 것은 더욱 통탄할 일이다.
진정한 사과와 자성적 비판은 바로 이럴 때 하는 것이다. 구성원 개인의 일탈에 일일이 사과를 하면서 사법부와 검찰의 역사적 과오에 침묵하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히 검찰로서는 역사적 과오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 같이 또 입을 닫는다면 국민의 닫힌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이다.
최기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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