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고용형태공시 결과 발표 이후 300인 이상 대기업의 고용 실태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예전 같으면 기업 정보라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던 대기업의 고용 규모 및 고용 형태가 사회 바깥으로 알려진 것이다.
고용형태공시제는 지난 2012년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이 의원입법으로 대표발의한 법안으로 비정규직 및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남용을 막기 위해 기업 스스로 고용형태를 공개하고 비교하게 해 정규직 채용을 독려하자는 것이 그 취지였다.
고용형태공시 결과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발표됐는데, 공시의무 대상은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대기업이다. 공시 결과는 세간의 예상과 다른 대기업의 일자리 실태를 보여주고 있어 향후 고용문제 해결을 위한 기업의 역할을 재조명할 수 있는 판단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2015년 고용형태 공시대상 사업장은 총 3240곳이었는데 3233곳이 공시에 참여해 공시율은 99.8%이었다. 대상 사업장의 총 노동자 수는 459만3000명으로 전년도 436만명에 비해 23만3000명이 증가했다.
노동자의 속성을 보면 직접고용이 367만6000명(80%), 간접고용은 91만8000명(20%)으로 집계됐다. 직접고용 노동자 중 기간제는 22.9%, 단시간 노동자는 5.3%였다. 전체 노동자 중 간접고용과 직접고용을 합친 비정규직 노동자는 176만명(38.3%)에 달했는데, 이는 대기업노동자 10명 중 4명이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인 셈이다.
주목할 점은 기업 규모가 클수록 파견·하도급·용역 등 간접고용의 비율이 높다는 결과다. 노동자 1000인 미만 기업의 간접고용 비율은 13.4%였지만, 1000인 이상 기업은 23%에 달했다. 2014년과 비교하면 5000인 이상 기업에서 간접고용이 1.3%포인트 증가했다. 간접고용을 줄여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와 달리 재벌 대기업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거꾸로 증가했다.
산업별로 보면 전 산업 평균이 20%였는데 건설(44.6%), 예술·스포츠(27.1%), 제조(25.0%), 도·소매(22.9%) 분야의 간접고용 비율이 높았다. 제조업에선 조선, 철강금속 부문이 간접고용 및 기간제 비율이 모두 높아 고용구조가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형태공시 결과는 고용 문제에 있어 대기업의 역할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그 동안 우리사회에는 중소기업이 전체 사업체의 99%를 차지하며 87.5%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다는 ‘9988’론이 회자됐다. 고용에 있어 중소기업이 떠맡고 있는 역할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지만 88%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다는 논리는 과장됐거나 통계의 착시 현상이다.
대기업이 직간접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고용 비중은 고용형태공시 결과가 보여주듯이 전체노동자의 25%포인트를 상회하고 있다. 그 동안 비정규직과 간접고용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의 어려움을 영세중소기업의 탓으로 돌리고 대기업의 책임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정책 방향이었다.
고용형태공시 결과는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을 떠올리게 한다. 2010년 ISO 26000 제정을 계기로 국제사회에서는 사회적책임 활동 여부가 기업 평가와 상거래 관계의 중요 지표로 부상하는 반면 우리 사회는 퇴행적인 뒷걸음질이다. '귤이 황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사회적 ‘책임’보다는 ‘자선’ 활동만 강조된다.
사회적 책임은 ‘경제, 사회, 환경’ 등 세 영역의 책임을 밑바탕으로 하며 ‘지배구조, 지역사회, 인권’ 영역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중 양질의 일자리(decent work) 창출 및 유지는 노동인권의 핵심 지표이다. ISO 26000의 노동관행은 기업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뿐 아니라 기업이 직접적인 통제권을 갖고 있는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포함한다.
이제 대기업은 간접고용과 비정규직 확산과 남용의 주범이라는 사회적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기업의 비정규직 활용은 비용절감과 고용 유연화를 위한 합리적인 인사관리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의 탐욕적인 이익 추구전략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저임금 노동의 확산, 고용불안정의 심화 그리고 만성적인 청년실업은 지난 시기 실패한 일자리 정책의 결과물이다.
재벌 대기업은 언제쯤 비난이 아닌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좋은 일자리 창출과 유지, 노동인권을 주도하는 모범적인 사용자, 상생의 대·중소기업 관계는 이제 기업의 선택이 아닌 책임으로 부여되고 있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시 곱씹어 볼 때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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