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구제금융 협상을 성사시키면서 고비를 넘긴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또 다시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채권단과 합의를 이루기 위해 고강도 긴축안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적 균열을 봉합하고 수장으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져야 하는 당면과제에 봉착했다. 무리 없이 긴축 프로그램을 이행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하는 숙제다.
우선 치프라스 총리는 개혁안 의회 승인 과정에서 반대표를 던진 현 집권당 시리자의 핵심인물 5명부터 경질했다. 최측근인 가브리일 스켈라리디스 정부대변인을 원내대변인으로 임명하고 연정 소수 정당인 독립그리스인당(ANEL) 의원을 경질 대상자들의 후임자리에 앉힘으로써 2기 내각을 새롭게 출범시켰다.
또한 의회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총 32명 중 경질된 5명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는 출당시키는 대신 2기 내각에서 모두 제외시켰다. 이는 모두 긴축안 의회 승인 이후 단 사흘만에 이뤄진 신속 조치다.
하지만 이번 2기 내각은 구제금융 협상이 마무리될 때까지 소요되는 4주 가량의 시간 동안 꾸려질 임시정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협상이 마무리되면 전면적인 의회 개편을 통해 자신과 뜻을 같이할 정치권 내 핵심 세력들을 우군으로 확보하는 작업에 본격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올 가을 조기총선 가능성 높아
그리스의 새 개혁안 통과 과정에서 노출된 정치적 불확실성이 향후 그리스 사태의 핵심 변수로 지목되고 있다.
만약 긴축 반대 강경파들이 득세할 경우, 개혁안 실행과정이 순탄치 않을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그리스 리스크가 불거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스 정부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관측에 따르면 조기 총선 돌입 시기는 오는 9월~10월경으로 예상되고 있다.
니코스 부치스 그리스 내무장관은 "유동적이긴 하지만 조기 총선은 오늘 가을께가 유력하다"고 전했다.
조기총선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곧 치프라스 총리가 재집권에 대한 강한 자심감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로 현재까지 치프라스 총리의 재집권 가능성이 유력한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리스 여론조사업체 메트론이 지난 11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치프라스 총리가 대표로 있는 시리자의 예상 득표율은 38.5%로 집계됐다. 제1 야당인 신민주당(19.1%)을 무려 19%포인트 이상 앞지르는 결과다.
물론 고강도 긴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반발 등 여러가지 변수가 산재해 있지만 아직까지 치프라스 총리에 대한 지지도가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구제금융 협상 난항과 국민투표까지 위기의 순간마다 정치적 결단력과 리더십을 보여준 만큼 조기 총선에서 치프라스를 옹호하는 세력들이 다시 한번 표를 몰아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만약 치프라스 총리가 재집권에 성공할경우, 이전보다 강력한 지지기반을 확보하면서 장기 집권의 청신호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치프라스 총리가 자신의 반대 세력들을 몰아내고 핵심 지지세력을 요직에 배치할 경우, 이전보다 강력한 의회 장악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운데)가 18일(현지시간) 새로 임명된 각료들과 대통령궁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권 교체 가능성 얼마나 될까
"채권단이 그리스에 요구한 개혁안을 누가 실행을 하든지 결국 실패로 귀결될 것이다."
지난 6일 사임한 바루파키스 전 그리스 재무장관은 그리스의 긴축안이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함께 '굴욕의 길'을 선택했다며 치프라스 총리에 대한 우회적인 비난의 발언도 쏟아냈다.
일단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채권단이 요구한 긴축안을 수용했지만 실행 성공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비현실적인 긴축안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반발도 거세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무엇보다 그리스 측이 추진 중인 채무탕감이 불발될 경우, 치프라스의 입지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도 부각되고 있다. 채무탕감 없이는 그리스 리스크는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밖에 없을 만큼 재정상태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때문에 채무탐감 없이는 그리스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리스로서는 지속 가능한 재정상태 복구를 위해 반드시 채무탕감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하지만 유로존에서 가장 입김이 센 독일이 극구 불가 입장을 밝히고 있어 험로가 예상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금리인하나 만기연장 등 채무경감 논의는 가능하지만 탕감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필요하다면 그리스의 채무탕감 대신 경감에 대해서는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며 "채무탕감은 고려 대상 조차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긴축안 실행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불거지고 채무탕감까지 실패할 경우, 일시에 치프라스 총리의 위상이 추락하면서 재집권을 담보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향후 긴축안 실행 과정에서 민심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조기총선에서 승리를 확신하기에는 불확실성 요인들이 산재해 있다"고 지적했다.
김수경 기자 add1715@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선영 아이비토마토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