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시장과 구청장이 참여하는 자치분권협의회를 정례화하고 내년부터 총 2862억원을 자치구에 추가 이양하는 등 본격적인 자치분권에 돌입하기로 했다.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지 20년이 됐지만 지방분권화가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의 이번 결정은 중앙정부를 더욱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유덕열 서울시구청장협의회장(동대문구청장)은 21일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치분권 실천을 위한 약속’을 발표했다.
서울시 자치분권 실천 기자설명회가 열린 21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유덕열 시 구청장협의회장(동대문구청장)이 자치분권 실천을 위한 약속 이행서를 체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날 서울시장과 강남구를 제외한 24개 서울 자치구청장들이 합의한 약속은 분권에 기반한 상생·협력제도 추진, 생활밀착형 권한 즉시 위임, 재정교부금 지원 대폭 확대 등 크게 세가지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재정교부금 지원 추가 확대다. 서울시는 내년부터 총 2862억원 재정교부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25개 자치구 평균 지원금액이 119억원씩 늘어난 셈이다. 이렇게 되면 내년부터는 서울의 모든 자치구는 법정경비인 사회복지비를 100% 충족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기본적 행정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기준재정수요가 97.1%에 머물렀다.
서울 자치구를 비록한 기초자치단체들은 중앙정부의 조직 자율권 제한과 세수구조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세수구조의 경우 수입 8:2, 지출 4:6 비율이어서 재정자율권이 상당히 부족하다. 서울 자치구 평균 재정자립도는 올해 예산기준으로 31.5%에 불과하지만 국고보조사업 매칭비와 인건비 등 의무지출이 지속적으로 늘어 자체 사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시의 이번 재정교부금 추가지원으로 자치구 재정난이 모두 해소되지는 않겠지만 상당한 부담을 덜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앞서 2015년 복지비 미편성분 1203억원 가운데 645억원을 조정교부금 추경예산으로 편성해 자치구에 지원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서울시는 자치구가 더 잘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사무는 각 자치구에 권한을 적극 위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소규모 공원 지하공영주차장 건립에 대한 자치구의 심의 권한을 즉시 확대하고 가로수 바꿔심기 심의대상 일부와 중앙차로 버스정류소 흡연 단속권한이 즉시 각 자치구로 위임됐다. 서울시와 자치구는 '생활밀착형 권한위임 TF'를 구성해 권한 위임 대상을 지속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자치구와 분권에 기반한 상생·협력제도 강화를 위해 시청과 구청장이 참여하는 '서울 자치분권협의회'를 정례화 하기로 했다. 협의회는 자치분권 관련 의제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을 하고 자치구 권한 확대에 대해 정기적으로 협의하게 된다. 이를 위해 실무협의 기구로 시 기획조정실장이 위원장을 맡는 '자치영향평가협의회'와 시 행정국장이 위원장으로 활동할 '자치분권실무위원회'가 조직된다. 서울시는 이와는 별도로 시 주도 정책사업이 자치구에 행정적·재정적 부담을 야기시키지 않도록 적극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박 시장은 이날 발표에서 "이번 합의는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이라는 공통 인식을 토대로 시와 자치구의 지속적인 소통과 협력을 통해 마련된 것이라 의미가 크다"며 "특히 재정은 자치분권의 핵심으로 서울시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지방자치의 새 역사를 쓴다는 취지로 통 큰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유 회장도 "오늘 합의문은 앞으로 지방자치발전에 전환점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서울시 구청장 일동은 서울시와 자치구간 지속적인 소통과 협력을 통해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발전에 선도적 모델이 됨은 물론, 중앙 정부의 인식변화와 진정한 자치분권 실현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한편 강남구는 자치구 재정확충 및 분권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해결책이 빠진 방안을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번 서울시와 자치구간 ‘자치분권 실천을 위한 약속’에 불참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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