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계에 해양플랜트발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잦은 설계변경으로 인한 공사기간 연장과 이로 인한 비용증가로 실적악화는 물론 기업의 신뢰도 하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고난에도 조선소들은 해양플랜트는 ‘한국 조선업의 미래’라고 확신한다. 저가로 물량을 싹쓸이하는 중국과 엔저로 무장한 일본 사이에서 한국 조선업이 나아갈 방향은 해양플랜트 뿐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양질의 설계 인력을 확충하고 기자재의 국산화율을 높이는 등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은 필수다. 미래 먹거리 해양플랜트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국내 조선업이 해결해야할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양질의 인력 확보와 기자재 국산화율 확대 시급
국내 조선소들이 해양플랜트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설계와 기자재 확보 분야다. 한국 조선업의 해양플랜트 수주규모는 전 세계 30% 이상을 차지하며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대부분 역량이 하부 선체 건조 분야에 집중돼 있어 고부가 영역인 기본설계와 핵심 기자재 개발은 해외 업체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 상선의 경우 보통 시리즈로 선박을 제작하기 때문에 한 번 설계를 하면 첫 호선 제작 후 건조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설계와 기자재도 대부분 국내 기술로 제작 가능해 중간에 문제가 생겨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해양플랜트는 사용 지역과 환경 등이 다르기 때문에 수주할 때 마다 새롭게 설계를 해야 한다. 또 발주사의 주문이 변경될 경우 이를 다시 설계에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기초설계 기술 인력이 없는 국내 조선업으로서는 설계과정이 매우 번거로울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시간은 물론 비용 지출도 늘어나게 된다. 해양플랜트 한 기의 수주금액이 수조원에 달할 정도로 크지만 설계와 기자재 등 수익이 높은 분야는 직접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정작 조선소에 돌아오는 몫은 줄어들게 된다. 대신 공사기간 지연으로 추가되는 인건비와 설비 대여비 등은 조선소가 부담해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FPSO(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설비) 기준 기본설계 등 고부가가치 분야 국내 수행 비중은 약 20%에 불과하다. 특히 해양플랜트산업 전체 부가가치의 50% 이상이 창출되는 운송, 설치, 운영, 유지, 보수, 해체 등의 분야는 해외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미미한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자 조선3사도 설계 역량을 집중하는 등 인재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선 젊은 인재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수도권으로 잇따라 R&D센터를 이전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젊은 설계인력의 경우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수도권 R&D센터로 이전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009540)은 지난 3월 서울 상암동의 한 빌딩으로 플랜트 설계 인력을 결집시켰다. 해양을 비롯한 각 분야의 설계 인력을 한 자리에 모아 노하우를 공유하는 등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울산 본사의 플랜트 설계인력과 해양엔지니어링센터 설계인력 그리고 화공 플랜트 설계인력까지 총 600여명의 설계 인력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됐다.
삼성중공업(010140)은 지난해 말 거제조선소와 서울 서초사옥에 나눠 근무하던 해양플랜트 분야 설계 및 연구개발(R&D) 인력 800여명을 판교 R&D센터로 불러 모았다.
판교 R&D센터에 입주하는 연구 인력은 삼성엔지니어링 연구 인력과 함께 해양플랜트 톱사이드(원유 및 가스 처리설비) 공정 및 엔지니어링 연구를 중점적으로 수행할 예정이다.
대우조선해양(042660)은 오는 2018년 새로 완공되는 마곡지구 R&D센터로 관련 인력을 끌어모을 계획이다. 현재는 서울 본사의 중앙연구소와 영등포 당산동의 로봇 연구소, 거제 옥포조선소 등에 설계 및 R&D 인력이 흩어져 있다.
대우조선해양 거제조선소에서 다양한 선박과 해양설비가 제작되고 있다. 사진/대우조선해양.
◇해양플랜트 기자재 국산화 본격화
해양플랜트 기자재 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 해양플랜트의 경우 수주금액의 절반 이상을 기자재 비용으로 해외업체에 지불하고 있다. 국산화율은 20% 미만으로 알려졌다.
국내 조선3사가 전 세계를 통틀어 대규모 해양플랜트를 건조할 수 있는 도크를 보유하고는 있지만 건조 분야에서만 수위를 다툴 뿐 알짜사업은 모두 해외업체가 가져가는 셈이다.
이에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9월 TFT를 구성해 해양플랜트 기자재 국산화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현대중공업은 해양플랜트 분야에서만 연간 18억달러의 기자재를 수입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약 54%에 달하는 165개 핵심 기자재에 대해 오는 2018년까지 국내 중소기업과 함께 국산화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국산화 개발이 완료된 디젤엔진발전기 등 106개 품목은 프로젝트 적용을 위해 발주처 벤더(업체) 등록을 지원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아직 국산화가 완료되지 않은 59개 품목 중 국산화가 시급한 폐열회수처리시스템 등 38개 품목을 우선 개발품으로 선정, 설계기술과 해석기술 등을 지원함으로써 중소·중견기업의 국산화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또 터렛 등 중소·중견기업이 독자 개발하기 힘든 대형 패키지 장비의 경우 공동으로 개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외에도 조선3사는 지난해 조선해양플랜트협회 등과 기자재협의회를 구성하는 등 기자재 국산화에 앞장서고 있다.
또 올해 5월 조선해양플랜트협회, DNV GL(노르웨이·독일 선급협회) 등과 ‘해양 표준화 공동추진 협약’을 체결하고, 발주처와 프로젝트별로 다른 자재의 사양과 디자인을 표준화하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조선업 미래먹거리 선점 위해 정부도 동참
정부도 해양플랜트 산업 지원에 팔을 걷고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6월 해양플랜트 설계전문인력 양성사업 운영기관으로 조선해양플랜트협회를 선정하고 설계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을 시작했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올 2월까지 시범사업을 완료했으며, 3월부터 앞으로 3년 간 1차 사업을 추진한다. 올해는 해양플랜트 설계 경력엔지니어와 관련학과 석박사급 140명을 대상으로 해외 설계엔지니어링 업체와 연계한 해양플랜트 기본·FEED설계 교육이 진행된다.
이달 10일에는 경남 거제 해양플랜트산업지원센터가 착공에 들어갔다. 23만5541㎡의 부지 위에 지어질 지원센터는 정부가 252억원을 투자할 계획으로 2017년 2월 준공 예정이다.
해양수산부는 지원센터 건립을 통해 해양플랜트 설계·엔지니어링 기술개발 지원을 통한 기술자립, 기자재 국산화율의 증대, 전문인력 양성은 물론 산·학·연을 연계해 해양플랜트산업의 성장기반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어 15일에는 울산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문을 열었다. 울산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수주 금액의 50% 이상을 기자재 비용으로 해외업체에 지불하는 해양플랜트의 원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자재 국산화 생태계를 구축한다. 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 대기업의 국산화 수요와 중소기업 보유기술을 연계하고, 중소 기자재 업체들이 제품 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술지원 시범사업을 수행한다.
지난 15일 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과 현대중공업 최길선 회장(오른쪽 두 번째), 김기현 울산시장(오른쪽 네 번째)이 현대중공업 신현수 중앙기술원장(맨 오른쪽)으로부터 스마트십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
최승근 기자 painap@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