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4대악 중 척결 대상 1호는 학교 성폭력이다
2015-08-12 06:00:00 2015-08-12 12:05:46
최진녕 변호사
퀴즈 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안전을 위해 반드시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꼽은 4대악은? 정답은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그렇다면 이 네 가지 악(惡) 중 가장 나쁜 악은 무엇일까? 적어도 최근 국민들의 답은 바로 성폭력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찰청이 관련 수사대를 출범시키는 등 4대악 근절을 치안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으나 성폭력이 척결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서울의 한 공립 고등학교에서 지난 2년간 남자교사 5명이 제자인 10대 여학생과 20대 초임 여교사 등 130여 명을 지속적으로 성희롱 내지 성추행 해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학교 내 성범죄를 통제할 책임이 있는 교장이 추문의 직접 당사자라는 소식에 국민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 해 상반기까지 성범죄로 징계 받은 교사는 모두 231명이고, 그 중 학생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교사가 107명이다. 작년에는 40명이었는데 올 해는 상반기에만 35명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상 닷새에 한 건의 성범죄가 학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은폐주의와 온정주의에 기인한 솜방망이 처벌이 학교 내 성범죄를 부추기는 주된 원인으로 지적된다. 교사가 학교 내 성범죄를 저지를 경우 교장은 관리 책임이 두려워 숨기기에 급급하고, 동료 교사들도 가해자를 위해 탄원서를 써 주는 등 온정주의로 일관하는 사례가 많다. 이번 사건이 대표적 케이스다. 은폐가 안됐더라도 해당교사는 가벼운 징계로 다시 교편을 잡을 수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최근 5년간 전국에서 성희롱 또는 성추행에 연루돼 징계 받은 초·중·고교 교사가 231명이지만 이중 54%인 123명이 정직이나 감봉, 견책만 받고 지금도 교직을 유지하고 있다. 형사처벌도 약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1년간 성범죄로 기소된 교사가 18명인데 그 중에서 3명만 실형을 선고받고 나머지는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고 있다는 비판이 크다. 제 식구 감싸기식 봐주기 처벌이 성범죄 피해 확산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교사들에 대한 성폭력 예방 교육이 지나치게 형식적이라는 점도 문제다. 학교나 공공기관의 경우 관련법에 따라 연 1회 1시간 정도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강사가 강의 현장에 도착하면 학교 관계자는 처음 의뢰했을 때와는 달리 “다 아는 내용이고 바쁘니 최대한 짧게 강의를 마쳐달라”는 주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래서야 교육현장에서의 여학생과 여교사의 인권이 지켜질 리 만무하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초·중·고교 및 대학교 내 성폭력은 학교의 비민주적·수직적 권력 관계에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대학 내 성폭력 가해자는 교사·강사나 선배인 경우가 59.2%로 압도적이었다. 특히 대학원 내 피해 사례에서는 가해자가 전부 선배와 교수·교직원이다. 성적이나 진로와 연관된 권력 구조가 교내 성범죄의 원인이라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대책이 시급하다. 먼저 교내 성폭력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도입하고, 관련자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성폭력 연루 교원은 수업에서 배제하고 즉시 직위해제해 피해자와 격리해야 한다. 징계절차가 신속히 진행되도록 징계의결 기한을 줄이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교육공무원 징계양정규칙’과 ‘공무원 징계령’을 개정해서 개혁안을 제도화해야 한다. 성범죄 전력이 있는 경우 교원자격 취득을 제한하고 교원자격을 취득한 이후에도 취소가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성폭력은 예방이 핵심이다. 성폭력은 인격살인에 비유될 만큼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교사에 대한 연1회 1시간 정도의 형식적인 성폭력예방교육을 좀 더 체계적으로 개선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속적인 성폭력 예방 교육을 통해 교사들의 성문제 관련 인권의식을 높이고, 성범죄에 대한 감수성을 꾸준히 환기시킬 필요성이 크다.
 
성범죄에 대한 무관용주의와 예방교육은 피해 방지를 위한 필요 최소한의 조건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학교 성폭력은 수직적 권력 관계에 기인한다. 장기적으로 학교 내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고, 권위주의적인 문화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교내 성폭력 사안을 숨기거나 제대로 조치하지 않으면 교장 등 학교 책임자를 최고 파면까지 강하게 제재해야 한다. 교내 성범죄 신고 체계 개편도 필수적이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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