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tvN 금토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오나귀>)에서 박보영이 만들어낸 16시간은 실로 달콤했다.
소심하다 못해 자기의 감정을 조금도 드러내지 못하는 나봉선과 웬만한 남자보다도 더 왈가닥인 귀신 신순애가 빙의한 나봉선, 두 역할을 자유롭게 넘나든 박보영의 연기는 16회 내내 흠 잡을 곳이 없었다.
조정석에게 잠자리를 요구하는 발칙한 모습에서는 여동생이 아닌 여자의 느낌도 물씬 풍겼다. 일각에서는 "이제서야 제대로 된 캐릭터를 만났다", "신들린 연기", "동급 최강" 등 극찬에 가까운 평가가 나왔다. 일부 남성 팬들은 박보영에게 홀리다 못해 조정석에게 "돈 내고 연기했어야 한다"며 질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인간과 귀신 사이를 넘나들며 사랑스러움을 흠뻑 표출한 박보영을 지난 25일 서울 이태원동 소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나봉선인듯 신순애인듯 두 이미지를 절묘하게 갖고 있는 그는 실제 만남에서도 귀여운 매력을 한껏 드러냈다.
분명 모두가 인정할 만한 훌륭한 연기를 펼쳤음에도 박보영은 아직도 자신의 연기에 자신감이 부족하다며 고민을 털어놨다. 1990년생 이제 26세, 여동생에서 여자로 변해가는 박보영의 걱정을 들어봤다.
tvN 금토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에서 열연을 펼친 박보영. 사진/피데스스파티윰
◇첫 번째 고민 - "이 드라마를 해야 할까요?"
<오나귀>는 캐스팅 단계부터 드라마 제작사들 사이에서 재밌는 시놉시스로 불렸다. 소심한 사회 초년병 여성이 말괄량이 같은 귀신에 빙의한다는 설정부터 신선했다. 사회 초년병을 나타내려면 20대여야 했고, 상반된 성격을 자연스럽게 소화하기 위해서는 연기력도 출중해야 했다. 더불어 매력도 다양해야 했다. 몇 가지 전제조건에 딱 들어맞는 박보영에게 제안이 왔다.
"사실 이 드라마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컸어요. 어렸을 때 드라마를 한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동안 영화 환경에 크게 익숙해져 있었어요. '여유로운 환경은 아니겠구나'라는 걱정이 들더라고요. 잠도 못자고 대사도 빨리 외워야 했고, 순발력이 많이 필요할 거 같은데, 제게 그런 순발력이 있다는 생각도 안했어요. 1인 2역인데 그 차이를 정확하게 표현해야 하고, 새로운 캐릭터가 아닌 순애를 드러내야 하잖아요. 걱정이 컸죠."
고민하던 차에 연출을 맡은 유재원 PD와의 미팅 약속이 잡혔다. 괜히 드라마도 안 할 거면서 미팅에 나가는 건 결례가 아닐까란 생각에 PD를 만나는 것도 부담스러웠단다.
"대표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만나 봐도 좋을 것 같다고요. 나쁜 분이 아닌 것 같다고요. 그래서 만났는데, 정말 소소한 얘기를 감독님이랑 나눴는데, 해야겠구나라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굉장히 믿음직하고 뭔가 신뢰가 생겼어요. 감독님과 얘기 나누고 대표님에게 그랬어요. '저 이 드라마 할래요.'"
◇두 번째 고민 - "나봉선이라는 어려운 숙제"
막상 결정을 하고 나니 캐스팅 전 고민했던 지점이 숙제로 다가왔다. 어떻게 연기를 해야 될까 걱정이 들었다고 한다. 박보영은 철저하게 나봉선을 준비했다.
"나봉선은 캐릭터가 정확히 구축이 돼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소심하고 말도 못하고, 말도 흐리고, 자기 감정도 못 드러내고요. 제게도 소심한 면이 있고 봉선이가 이해되는 지점이 많아서 잘 구축이 됐어요. 문제는 순애였어요. 순애 연기는 정말 어떻게 해야될지 갈피가 안 잡히더라고요. 그래서 김슬기씨를 엄청나게 관찰했어요. 대본 리딩 때부터요. 사실 녹취를 좀 하고 싶었는데, 초면에 그건 아닌 것 같아서 말았죠."
순애를 완벽히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김슬기의 모든 것을 관찰했다. 말투와 표정은 물론 김슬기가 자주 보이는 입술을 '앙 다문' 입모양까지 따라하려 했다. 목소리도 일부로 톤을 더 높여서 연기했다. 박보영의 철두철미한 노력 덕에 신순애가 빙의한 나봉선 속에서 김슬기가 보였다.
그 다음은 여자 박보영이었다. 이제껏 박보영은 여자라기보다는 여동생에 가까웠다. 아직도 교복이 잘 어울리는 그의 동안 외모와 특유의 눈웃음은 '발칙' 혹은 '도발'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신순애가 빙의한 나봉선은 "이러면 나 자기랑 자고 싶어지잖아", "우리 한 번 해요" 등 발칙하고 도발적인 대사를 뱉어야 했다. 누가 봐도 센 이 대사 처리를 어떻게 해야될까가 고민이었다.
"사실 너무 야하다고 생각했어요. 거부감이 컸어요. 이것 때문에 감독님과 상의도 많이 했죠. 또 너무 애 같아도 안 되잖아요. 그렇다고 진지하게 '우리 한 번 해요'라고 하기엔 너무 망측하고요. 그래서 처음엔 적극적으로 연기하지 못했어요. 조정석씨의 옷을 벗기는 장면도 어색했고요. 감독님하고 조정석씨하고 더 적극적으로 하라면서 가르쳐주더라고요. 나중에는 장난기를 발휘해서 더 오버하기도 했어요. 너무 민망해서 일부러 웃으면서 그런 대사를 친 건데 생각보다 더 캐릭터랑 잘 맞았던 거 같아요."
도발적이고 발칙한 대사는 대중에 박보영을 여동생에서 여자로 보이게끔 하는데 기여했다. 실제 박보영에게도 그런 적극적인 여성이 내면에 숨겨져 있는 것일까.
"있나봐요. 제 마음 속에 그런 야한 얘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마음을 먹고 연기는 했지만, 조금은 있었으니까 많은 분들이 느끼지 않았을까요? 하하."
◇세 번째 고민 - "가슴 절절한 사랑이 없어요."
<오나귀>에서 나봉선은 귀신 신순애와 거래를 한다. 신순애는 양기남인 강선우(조정석 분)와 잠을 잔 뒤 처녀귀신인 자신의 한을 풀고, 그러면서 강선우를 나봉선의 남자로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했다. 장고 끝에 나봉선은 신순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언제 어디서든 내 몸 속에 빙의해도 된다고 약속한다.
실제 박보영에게도 자신의 몸을 귀신에게 내어줄 만큼 진한 사랑의 경험이 있을까 궁금했다.
"아직 없어요. 많은 분들이 '앞으로 멜로 해보고 싶지 않아?'라고 물어보세요. 근데 아직 자신이 없어요. 아직 그만큼 가슴 절절한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요. 막 찌릿찌릿하고 헤어지고 나면 가슴에서 식초가 흐르고 하는 그런 느낌의 사랑을 못 해본 거 같아요. 내가 한 건 '그냥 좋아했던 거였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늑대소년>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정도의 좋아하는 감정은 표현할 수 있었을 것 같아서였어요. 시간이 지나고 더 겪어봐야 할 것 같아요."
◇네 번째 고민 - "아직도 자신없는 연기"
<오나귀>에서 훌륭한 연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박보영은 아직도 "연기가 자신이 없다"는 말을 말끝마다 붙였다. 과도한 겸손같지는 않았다. 실제로 자신의 연기력에 확신이 없는 듯 했다. 물론 모든 부문에서 완벽한 연기자라 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뚜렷한 성과를 보인 그다. 인지도나 연기적인 측면에서 남부러울 것 없어보이는 그는 왜 그런 고민을 항상 담아두고 있는 걸까.
"아직도 저는 제가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늘 이게 맞는 건지 아닌지 계속 생각하게 돼요. 그래서 감독님을 많이 괴롭히기도 하고요. '컷' 했을 때 뭔가 찝찝하면 바로 쪼르르 가서 '뭐가 이상해요'라고 물어보고요. 사실 얼마 전까지 슬럼프였어요. 연기를 하는 게 재밌어서 시작했는데, 언제부턴가 일로 다가오더라고요. 연기에 대해서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도 들었어요. '난 왜 잘하지 못하는 걸까'라는 생각에 잠겨있었어요."
박보영은 2015년은 그에게 새로운 출발점이 된 해라고 표현했다. 올해 촬영한 영화 <돌연변이>에 연이어 <오나귀>까지 행복한 촬영장을 경험했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인생에 대한 신념도 생겼다. "그래. 내가 이 맛에 연기를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제가 일하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잊고 연기를 했었는데, 올해 그 감사함을 다시 느끼게 됐어요. 작품은 어차피 혼자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스태프 하나 하나의 호흡과 화합에서 잘 되는 거라고 다시 되새기게 됐어요. <돌연변이>와 <오나귀>에서 힐링하는 기분이었어요. 앞으로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때를 돌아볼 거 같아요."
◇다섯 번째 고민 - "서른 살을 향해가는 박보영"
스물여섯 살은 이제 더 이상 어린 나이가 아니다. 인생에 있어서 자신만의 철학 혹은 세계관이 서서히 잡혀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박보영은 조금씩 주관과 신념이 쌓아져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관이나 신념은 아직 조금 더 쌓아야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주관이 뚜렷한 애는 아니거든요. 어릴 때는 이 사람이 하는 말도 맞는 것 같고, 저 사람이 하는 말도 맞는 것 같았어요. 일을 하면서 몇 가지 문제에 부딪혔고 그 때마다 들은 생각이 '내가 흔들리면 안 되겠구나'였어요. 그래서 시비를 가릴 줄 아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이에요."
앞으로 4년이면 그의 나이 앞자리도 2에서 3으로 바뀐다. 박보영은 서른 살이 된 박보영을 어떻게 상상하고 있을까.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의 도라희도 사회 초년병이고, <오나귀>의 봉선이도 사회 초년병이에요.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인 셈이죠. 그 때도 제가 기반을 다져서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했으면 해요. 그 때는 멜로도 했으면 좋겠고요. 얼굴에 그런 나이가 조금은 묻어나왔으면 좋겠어요."
아직까지도 앳된 모습이 얼굴에 가득 차 있지만, 박보영은 마냥 어리기만 한 여동생의 느낌은 아니었다. 나봉선이 신순애를 만나 성장한 것처럼 그도 인간 박보영으로서, 또 배우 박보영으로서 자라고 있었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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