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들 죽었어요. 잊혀지겠죠? 미안합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암살>에 김원봉 역으로 출연한 조승우의 명대사다.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이건만, 2015년 현재 역사 교과서에서 그 분들의 이름은 잊힐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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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일제강점기의 독립 운동가들을 다룬 내용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최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마련한 초안 ‘2015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안’에서 독립운동을 간략하게 서술하도록 한 탓이다.
초안에 따르면 3.1 운동을 제외한 다른 독립운동 관련 내용은 대부분 언급조차 되지 않고 생략되었다. ‘되도록 줄여서 간략히 소개하라’는 기준 때문이다. 교육 당국은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이유로 이러한 방침을 내놓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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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학습 부담만이 이유라고하기엔 이상한 부분이 있다. 기존의 지침에서는 ‘다양한 민족 운동에 대하여 균형있게 서술한다.’라는 문구에 맞추어 다양한 독립운동을 집필하도록 했다. 하지만 새로운 초안은 완전히 달랐다. 짧은 지필 기준안인데도 불구하고 3·1 운동은 여덟 군데나 등장한다. 반면 다른 독립운동들은 ‘되도록 줄여 간략히 소개한다.’라는 지침 하에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심지어 6·10 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은 초안에서 아예 생략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1946년 좌우합작운동은 김구 선생이 이끌던 한국독립당과 김원봉의 계보를 잇는 민족혁명당 간의 합의를 통해 이뤄졌다. 하지만 초안의 ‘1930년대 중국에서 활동한 다양한 독립운동 정당을 자세히 다룰 경우 학습 부담이 대폭 늘어날 거라는 지적이 있다. 그 지적에 유의해 되도록 생략하고 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도록 한다.’라는 지침을 보면 사실상 민족혁명당의 역사를 다루지 말라는 말과 다를 게 없다.
친일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초안에는 ‘친일적 인사의 활동을 서술할 때는 대표적 인물인 이광수, 최린 등의 활동을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한다.’라고 적혀있다. 이는 곧 대표적 인물 외의 다른 친일 행적을 보인 인물들에 대한 사실이 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가 된다. 현재 교과서에 소개되고 있는 친일파들이 대거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친일, 그리고 독립운동은 대한민국 근대사를 설명하는 주된 두 틀이다. 두 역사에 대한 설명이 빠지면, 학생들의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학습 부담을 이유로 학생들의 이해도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부와 여당은 ‘국민이 분열되지 않도록 하나의 역사를 가르쳐야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역사에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국가가 하나의 시선을 독점한다면, 이는 왜곡과 다를 바 없다. 역사교과서의 오류를 줄이겠다며 시작했지만, 취지가 퇴색됨은 물론 어긋나고 있다.
부디, 잊혀지지 않았으면 한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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