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구원’이 23일 발표한 <메가시티 삶의 질과 서울형 행복지표>에 따르면 서울시민의 행복가치관은 건강-소득-안전-고용 순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돈을 더 벌수록 행복”하단다. 조사는 OECD의 행복지수 판단 항목을 기준으로 이루어졌다. OECD 회원국과 러시아·브라질을 합친 36개국 중에서 서울은 러시아·폴란드·룩셈부르크와 비슷한 특성을 보였다.
한 가지 재밌는 결과로, 사람들이 실제 행복을 느끼는 기준은 조금 달랐다. 소득 만족도가 1점 늘어날 때 행복감은 겨우 0.365점이 늘어났고 가정생활 만족도는 1점 당 행복감이 1.683점이었다. 재정상태는 1 : 1.44로 높은 편이었으나 사회생활 역시 1 : 1.354로 기여도가 컸다. 즉 서울시민들은 ‘실제로 00일 때 더 행복하다’에 관해선 인간관계 등의 주관적 요소를 상대적으로 많이 인식했지만, ‘00 이라면 행복하겠다’, 즉 행복의 충분조건으론 소득의 크기와 경제적 능력을 택한 것이다.
캡처/바람아시아
심리학에 ‘인지부조화’란 개념이 있다. 개인의 내적인 신념 혹은 태도와 외적 행동 사이에 간극이 발생한 상태를 가리킨다. 용어에 기시감이 드는 까닭은 실생활에서 셀 수 없이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인데, 단적인 예가 바로 흡연이다. 거의 모든 흡연자는 ‘담배를 피우면 폐암을 비롯한 각종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 혹은 ‘담배를 피우면 건강에 매우 해롭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한 손에 담배를 태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사람들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곧 불안정한 상태로 인식한다. 따라서 잠시라도 그런 상태에 빠지면 재빨리 신념과 행동의 간극을 좁히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인지부조화를 해결하는 원론적 선택지는 매우 간명하다. 신념을 바꾸거나, 혹은 행동을 바꾸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를 선택한다. 위의 예로 돌아가서 흡연자는 담배를 끊음으로써가 아니라 “이거 핀다고 죽겠어?”, “흡연자 모두가 암에 걸리는 건 아니잖아”라는 식의 태도 변화로 불편한 마음을 달랜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그 속성상 행동은 ‘이미 벌어졌’거나 ‘습관적’으로 나타나는 까닭이다. 간단히 말해, 전자가 더 쉽다.
최근 며칠 지구 상 가장 위험한 지역이었던 한반도에서 얼음장을 걷던 남북 간의 긴장이 풀렸다. 안보의 안개가 걷히자 드러난 건 아니나 다를까, 경제성장이라는 씨앗이었다. 노동개혁과 경제성장률의 열매를 맺자는 대통령의 당부가 이어졌다. 요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하향평준화’와 아버지의 월급을 줄여 아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창조경제’이며 궁극적 목표는 ‘성장률 00% 맞추기’다. 때마침 지지율 상승의 단비도 내린다. 이러한 지속적이고 일관된 경제 기조에도 행복의 조건으로 경제를 원하는 이유가 뭘까?
매슬로우는 5단계 욕구 이론에서 물질욕을 포함한 생존 및 안전의 하위 욕구를 충족하지 않고서는 자아실현의 상위 욕구로 나아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질 좋은’ 행복을 영유하기 위해선 상위 욕구를 지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구원의 조사 결과는 상위 욕구에 대한 당위적 갈증을 잘 보여준다. 사람들은 가족관계, 생활영역별 만족도, 문화생활, 계층 이동의 가능성 등에서 실질적으로 행복을 ‘더 크게’ 느꼈다. 하지만 행복을 위해 그들이 ‘원하는’ 건 하위 욕구였다.
정부의 일관적인 경제살리기 복지부동 태세를 보면, 일찍이 하위 욕구가 충족된 후 상위 욕구로 나아갔음직하다. 허나 행복의 우선순위는 소득의 크기라며 신념을 바꾸는 현실은, 일반 국민의 하위 욕구조차 채워주지 못하는 ‘그들만의’ 경제 담론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국가가 경제성장의 미명 아래 국민들을 효율적인 외나무다리 경쟁으로 옥죄었고, 언뜻 보이는 다리 밑에선 아사(餓死)의 잔영이 번뜩였다. 그 탓인지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더 많이’ 행복한지 알면서도 소득의 크기에만 목을 매는 집단적 인지부조화에 빠진 것이다.
대상이 한낱 담배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거대한 시스템과 결부되면 사람들은 신념에 따라 행동을 바꾸기보단 더더욱 ‘행복’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바꾸는 벼랑 끝 선택을 한다. 매슬로우의 이론대로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가 자아실현 따위에 앞설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간편한 요행일수록 정도에서 멀어진다는 단순한 진리에 있다. 예컨대 흡연자가 인지부조화를 일시적으로 해결했다고 해서 흡연이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변하진 않는다. 행복에 대한 인지부조화의 단편적 해소와 그 반복의 끝에 무엇이 놓여있을는지, 불 보듯 뻔하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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