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철강재가 빠르게 잠식 중인 국내 철강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공급망 선진화와 지속성을 고려한 장기적 관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중국산 철강제품이 힘 못 쓰는 일본 철강시장의 특성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업체 간 협의체 구성과 협력 모델 도출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산 제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일본의 특성을 참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국내 시장을 위협 중인 중국산 철강재는 일본 시장에서는 좀처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일본 철강업 및 수요산업의 특성, 거래관행, 유통 구조 등의 벽에 가로막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 건설업은 외국 철강 업체가 JIS(일본 공업 표준화법에 따른 용품의 규격 기준) 규격을 취득해도 발주자가 수입산을 배제하고 구매하는 관행이 남아있다. 특수한 고급 제품이 요구되지 않는 범용 표준사양의 경우 중국 제품도 기술적으로 부족함이 없지만 설계회사가 일본 고로사 회사규격 및 제품명을 명기하는 방식으로 자국 제품 구매를 유도하게 된다.
자동차용 강판도 상황은 비슷하다. 높은 기술 장벽과 함께 특정 철강사 제품을 지정해 구매하는 관행과 까다로운 거래조건들로 신규·외국 업체의 진입을 어렵게 한다. 일본 내 자동차사는 90% 가량은 부품업체 및 위탁조립업체에서 사용하는 강재를 총괄해서 구매하는 '집중구매 방식'을 사용 중이다. 참여업체는 대부분 일본 철강사를 이용한다.
또 장기간 자국 철강사들과 만들어온 까다로운 기준을 수입재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점도 가격 경쟁력에 비해 품질에 취약점을 가진 중국산 제품의 진입에 장애물로 작용하는 요소다.
조선업 역시 외국계 업체의 선박 발주 비율이 높아 저가 중국산 조달을 확대 중인 국내와 달리 일본 철강사가 생산한 후판 구매를 우선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있다.
특히 일본 상사들은 단순 생산·판매 역할 뿐만 아니라 수입재에 대한 견제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철강사가 상사에 판매하는 비중이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시장에서 상사가 철강 공급망에 존재하는 복잡성을 해소하고 '철강사-수요업체'간 거래 지속성을 지원하는 형태다.
이 과정에서 상사가 국내외 철강 시장에서 보유중인 네트워크를 통해 수입재에 대한 간접적인 감시 및 견제가 가능하다. 수요처 입장에서는 상사의 네트워크 및 자금력을 활용해 조달 시스템을 외부에 의존하는 동시에 양질의 소재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게 된다. 당장 약간의 고비용 구조가 갖춰지지만 소재 선별이라는 장기적 장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저가격과 효율성을 중시한 구매 문화가 확산 중인 한국 철강시장과 상반된 모습이다. 국내 철강시장은 엔저현상 및 중국 발 공급과잉에 따라 저가격 제품을 우선 조달하고 구매처를 다변화하기 위한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
특히, 중소형 건설용 철강재는 저가 구매가 절대적으로 최종 고객사의 품질 요구 수준이 일본에 비해 크게 낮은 편이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이같은 기조가 중장기적으로 국산 제품에 대한 프리미엄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업계에 따르면 국내산 판재류 철강재품의 가격 프리미엄이 과거 5만원 이상에서 최근 1만~2만원으로 축소된 상황이다.
이에 일부 중국 철강사들은 한국 사무소 및 가공 거점을 설치하는 등 공격적으로 국내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납품기한과 불만요소 대응 등 비가격적 요소들도 점진적으로 향상됐다는 평가다.
또 국내로의 유입이 상사를 비롯해 10여개의 중형 유통업체, 수백개에 이르는 대행사를 통한 수입이 이뤄지는 등 다양한 경로로 수입되는 점 또한 중국산 철강재가 국내에서 경쟁력을 갖게 하는 요소다. 통제되지 않는 영세 수입상의 활발한 신규 진입은 생존을 위한 저가격 경쟁이 전개되는 등 수입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일부 유통상의 부적합 강재 유통 등 시장질서 혼란을 초래하는 부작용을 야기하기도 한다. 포스코 경영연구원은 이처럼 과도하게 개방된 국내 시장형태가 철강 생태계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국내 역시 유통업체의 기능 고도화와 대형화 등 유통 시장 선진화를 추진해 진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비교적 영세 업체가 많은 국내 철강 유통 시장을 통합해 규모의 경제성을 확보하고 수익원 다변화, 업체 간 연계 등을 통한 글로벌 진출 등 근본적 모델 혁신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부적합 철강재 근절 등 시장질서 확립과 시장 고도화를 위한 업체 간 협의체 구성 및 협력 모델 도출 방안 등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진우 철강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은 "시장 대응력 제고를 위한 내수 유통 채널 강화 뿐 만 아니라 거래의 지속성을 우선 고려한 마케팅 정책의 재정립 역시 장기적 경쟁력 마련을 위해 필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광양제철소 직원들이 철의 중간 소재인 슬라브 표면을 고르게 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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