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률을 모두 정비했다. 이로써 일본은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되었다. 이번 법률 정비의 핵심은 일본이 자신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국가가 공격당했을 때 그 공격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고 국민의 권리가 근저로부터 뒤집힐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반격하는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일본과 관계가 깊은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번 법제 정비로 일본은 한반도 유사상황 발생시 자위대가 미군의 장비나 무기를 방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반도 유사시 미군을 따라 자동적으로 한반도에 상륙, 작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의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는 우리로서는 지극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전쟁가능국가 일본에 대한 생각은 처해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평가한다. 일본 정부는 이제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적인 국가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 국민들 중 다수는 일본 정부가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로 국민을 끌고 갈까 걱정하고 반대하고 있다. 미국은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지역적, 국제적 안보활동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는 일본의 노력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격렬하게 반대했고 우리 정치권도 강력히 규탄했다. 전쟁가능국가 일본의 등장은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위협 요소임이 틀림없다. 군비경쟁이 다시 격화될 수도 있다.
이러한 차이점을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먼저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 차이라고 볼 수 있다. 확실히 가해자는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가해자는 소통과 공감능력이 없다.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는 피해자를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일본은 영국, 프랑스, 독일을 따라서 식민지를 만들었고 전쟁에 져서 식민지를 포기당했다. 국가주의 사고에 충실한 일본 우익의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국가 성장과정이었다고 본다. 전쟁을 포기한 평화헌법은 미국이 강요한 것일 뿐, 일본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정상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평화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본다.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그렇지 않다. 식민지 민중들은 생명과 재산을 깡그리 잃어버리는 위기를 맞았다. 인간의 정체성, 민족의 정체성을 파괴당했으며 인권은 유린당했다. 동아시아의 식민은 곧 전쟁이었고 한반도는 내전까지 겪었다. 그리고 국가폭력도 일상화되었다. 모두 식민주의의 잔재이다. 중국과 한반도에는 이에 대한 공포, 트라우마가 깊게 남아있다. 일본의 평범한 국민들도 전쟁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다음으로 일본의 재무장에 대한 입장은 식민과 전쟁의 과거사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일본은 자신들이 자행한 식민과 전쟁은 손해배상과 수교로 청산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식민과 전쟁의 과거사는 손해배상으로 청산되지 않는다.
과거사 문제는 인권의 관점에서 재해석되었고 식민과 전쟁은 인류보편의 문제가 되었다. 독일의 과거사는 나치의 청산, 피해국가에 대한 배상에 그치지 않았다. 유대인 학살이라는 인류보편의 가치를 침해한 일에 대한 반성, 처벌과 사과까지 발전했다. 유대인 학살이 인류보편의 문제, 인권의 문제인 이상 학살에 관여한 자는 독일에 반대했던 프랑스인, 레지스탕스라도 처벌되었어야 한다.
실제 프랑스인으로서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모리스 파퐁이다. 그는 독일 점령시 비시정부 하에서 유대인 학살에 관여했지만 한편으로는 레지스탕스 출신들이 인정한 레지스탕스였다. 2차 대전이후 프랑스에서 장관까지 지냈다. 하지만 프랑스는 모리스 파퐁을 유대인 학살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1998년, 징역 10년 형으로 처벌했다. 비록 그의 나이 87세에 처벌한 것은 한계였지만.
우리에게는 ‘종군위안부’라고 불리는 일본군 성노예의 문제가 있다. 이 문제가 국제적으로 공감을 얻는 것은 식민지 여성의 문제가 인권의 문제, 인류보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사는 인류보편의 문제, 인권의 문제로 발전했다.
전쟁가능국가 일본의 등장은 동아시아 평화질서의 위협 요소이다. 이와 동시에 인류보편의 문제,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 과거사를 망각하는 위험한 행위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전쟁가능국가인 일본이 실제로 전쟁으로 나서지 않도록 하고 이를 통하여 과거사에 대한 인식전환을 촉구하는 것이다. 일본과 동아시아 시민들의 공동행동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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