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에 쏟아 부은 열정 35년…황혼에도 개발혼은 불타고 있다
(인터뷰)박경남 일양약품 백신본부장 전무
"남은 인생도 백신 개발로 국민건강증진 기여하겠습니다"
"국내사 생산기반 확대해야…저개발국가 진출이 열쇠"
2015-11-09 06:00:00 2015-11-09 06:00:00
과거 사스, 신종플루, 에볼라를 비롯해서 최근 메르스까지 연이은 바이러스 창궐로 인해 전세계가 공포에 떨었다.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백신이다. 백신은 특정 질환에 대비해 면역성을 가지게 하는 의약품이다. 예방 가능한 많은 질환들의 발생을 현격히 감소시켜 인류의 건강 증진에 지대한 공헌을 미치고 있다. 전세계 제약사들은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백신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200년 백신 역사를 가진 서양에 비해 국내에는 백신 개발이 뒤늦은 편이었다. 현재도 백신의 대외 의존도가 높다는 문제가 있다. 최근에는 국가적 위기에 대비해 백신 수급의 안전화를 도모하기 위해 제약사들도 생산 기반 확대에 나서고 있다. 박경남(62) 일양약품 백신본부장 전무가 그 중심에 있다. 박 전무는 국내 백신 개발 역사의 산증인이다. 1980년대부터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 동안 한길만 걷고 있는 백신 개발 전문가다.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이제 한단계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백신을 만들어 보건의료 증진에 일조하겠다는 포부다.
  
박경남 전무의 삶은 '백신 한우물 파기' 35년으로 요약된다. 백신과 연을 맺은 것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양대학교 화학과와 한남대학교 대학원 생명과학부를 졸업한 그는 1980년 녹십자에 입사해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다.
  
◇박경남 일양약품 백신본부장 전무.(사진제공=일양약품)
하지만 좌충우돌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당시 백신 개발 여건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1954년 국내에 전염병예방법이 국내 처음 제정된 이후 백신 개발은 국가가 주도했다. 1970년 후반에 접어들어서야 녹십자를 비롯해 민간 회사로 넘어갔다. 백신 사업을 이양 받아 갓 시작한 터라 시행착오가 빈번했다.
 
"국내 백신 기술력이 떨어지고 자료가 부족해서 책이나 외국 논문 등을 찾아서 공부했습니다. 장티푸스, 콜레라 등 미생물을 이용한 옛날 백신이 주를 이뤘죠. 개발과 실패를 거듭하다 1980년대에 국내 백신 사업이 한단계 진일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박 전무가 개발에 참여한 혈장 유래 B형간염 토종백신이 1983년 국내에 출시됐다. 세계에서 3번째로 개발된 B형간염 백신이다. 당시 국내에는 고가의 수입 백신에 의존하던 상황이었다. 국산 백신이 개발되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접종이 가능해졌다. 1980년대 B형간염 보균율은 전체 국민들의 13% 정도였지만 토종백신의 등장으로 절반으로 떨어졌다.
 
경험을 쌓은 박 전무는 이번엔 업그레이드된 B형간염 백신 개발을 주도했다. 1988년 개발된 유전자재조합 2세대 B형감염 백신이다. 혈장 유래 백신은 B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의 혈장을 원료로 이용해 제조하는 방식이다. 감염의 우려가 있고, 대량의 혈장이 필요해 원료의 수급 문제가 있었다. 이와 달리 유전자재조합 백신은 동물세포를 이용하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원가가 낮으며 안전하다.
 
박 전무는 선진 시장에 눈을 돌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라인바이오텍 네덜란드 본사와 독일 지부에서 근무했다. 2005년에는 백신전문업체인 베르나바이오텍코리아 부사장으로 금의환향했다. 2011년 전남생물의약연구센터 소장, 2013년 한화케미칼 오송공장장을 지낸 뒤 지난 4월 일양약품 백신사업본부장에 선임됐다. 백신 개발 여정의 황혼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열정은 뜨겁다.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2종과 B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2종을 한번에 예방할 수 있는 4가 독감백신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임상 3상 막바지 단계다. 차세대 독감백신을 비롯해 4종류의 새로운 백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28종의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됐지만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백신은 10종 정도입니다. 국내 백신 시장 약 7000억원 규모에서 65% 정도를 외국회사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국내사가 만든 백신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백신의 대외의존도가 높으면 국내 백신 수급체계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 확산의 국가적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선 국내 백신 생산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외산 제품으로 백신 시장이 예속화될 우려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내 백신 제조 업체들은 글로벌 제약사에 비해 영세하고 기술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 없어서 막대한 R&D 투자도 어렵다.
 
"백신은 사회성이 높은 의약품입니다. 통상 접종 대상이 환자들이 아닌 건강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백신의 원인균 분리에서 완제품 개발까지는 길게는 약 30년이 소요됩니다. 그만큼 개발 기간이 길고 비용도 막대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실정에 맞는 백신 개발 계획을 세워 준비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저개발국가로 수출이다. 저개발국가에는 백신 수요가 막대해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다른 국가로 수출 저변이 확대되는 계기도 된다. R&D 투자가 활성화되고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개발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백신 시장은 매우 작습니다. 선진 시장을 지향해야 하지만 국내 현실상 선진 시장 진입은 쉽지 않습니다. 대신 저개발국가 예방접종사업 진출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를 발판으로 다른 국가로 수출 확대도 예상합니다."
 
UN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중남미 등 저개발국가에서 예방접종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시장 규모는 연간 3조9500억원에 달한다. UN이 진행하는 국제입찰 조달품목은 결핵, 말라리아, 에이즈 등 필수 의약품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해외진출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내수시장에 제품 공급을 통해 보건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게 박 전무의 설명이다.
 
"한국은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나라입니다. 백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합니다. 백신이 저렴한 비용으로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일조할 수 있기 때문이죠.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가들의 백신 수요도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 국가의 소득이 늘어남으로써 백신 수요들도 늘어날 것이고요. 앞으로 국내를 비롯해 전세계 백신 시장의 전망은 밝다고 봅니다."
 
그는 35년의 경험을 토대로 국내 백신 사업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평소의 자신의 지론이자, 백신 사업에 첫발을 떼고 있는 일양약품에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결국 백신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기기장치들이 우수해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특히 바이오 산업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면 안 됩니다. 실제 업무에서 있어서는 계획을 잘세우고, 잘 세워진 계획을 철저히 이행하며,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항상 모든 일에는 대한 문서화가 중요합니다."
 
그는 "내가 떠나도 문제가 없도록 하라"라는 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조직에 하나의 정체성과 영혼을 불어넣어 구성원이 이동하더라도 차질 없이 연속성을 띄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양약품에서 이루고자 하는 포부를 밝혔다. "백신사업은 쉽지 않은 사업입니다. 당장은 큰 그림은 그리지 않겠습니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그려나가고자 합니다. 향후 일양약품 백신 사업의 초석을 만들어 놓고자 합니다." 
 
◇박경남 전무는 백신의 대외외존도를 줄이고 자국화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실정에 맞는 계획을 세워 준비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밝혔다.(사진제공=일양약품)
  
최원석 기자 soulch3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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