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이 대손충당금 부담을 무릅쓰고라도 한계기업을 깔끔하게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올 4분기 동안 중·소 부실기업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히는 등 뚜렷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구조조정 업무가 미진하면 제재마저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터라 국책은행인데다 중소기업 대출이 많은 기업은행 입장에서 느끼는 압박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이 중소 한계기업으로 분류된 기업을 정리해야 하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5 중소기업 정기 신용위험평가' 결과 구조조정 대상기업 수가 현저하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번 평가에서 구조조정 대상기업으로 분류된 중소기업은 지난해 보다 50곳 늘어난 175개 업체다. 지난 2011년에 기록한 77곳과 비교하면 2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기업은행 을지로 본점. 사진/뉴시스
거래하던 기업이 부실기업으로 판명나 구조조정에 돌입하게 되면 채권은행은 대손충당금을 늘려야 하는 부담을 질 수밖에 없는데, 기업은행의 경우 그 규모가 더 커질 우려가 높다. 태생적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비중이 다른 은행들 보다 많기 때문이다.
지난 3분기 중소기업 대출 잔액이 전년말 대비 8.4% 증가한 125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체여신의 70%를 넘는 규모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대출 점유율 22.5%로 현재 국내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김수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매년 3분기에 진행되는 중소기업 신용평가가 4분기로 연기돼 좀비 기업 선별 영향도 4분기에 반영될 예정"이라며 "대손 충당금이 다소 크게 늘어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한 가지 부담은 금감원이 은행의 구조조정이 미흡하다고 판단할 경우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채권은행이 구조조정 대상 중소기업의 회생가능성을 냉정하게 보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제재조치 할 것"이라고 지난 11일 밝힌 바 있다.
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이 시중은행보다 기업 워크아웃 시점을 늦게 잡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당국의 관리 감독이 강화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한국개발연구원, KDI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이후 워크아웃이 개시된 39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해본 결과, 국책은행의 경우 워크아웃 개시시점은 한계기업 식별시점보다 1.3년 늦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기업은행 관계자는 "대손충당금 부담은 이미 예상에 있던 것"이라며 "채권은행단이 모여서 MOU를 체결하고 취약한 기업을 상대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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