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좁힐 수는 있겠지요. 노력하다보면 하다못해 버스라도 모두 저상버스로 바뀌는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요"
김재왕(38·변호사시험 1회) 변호사는 자신의 신념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국내 시각장애인 1호 변호사다. 선천적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갖지 못했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생물학을 전공했다. 대학원 시절에는 촉망받는 생물학자였다. 그러나 나머지 한쪽 눈마저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었다. 참담했지만 다시 일어났다. 법률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뒤 제1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장애를 가진 당사자로서 장애인을 위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지만 진로는 너무 좁았다. 결국 뜻 맞는 변호사들과 공익인권변호사 모임인 '희망을 만드는 법'(희망법)을 설립했다. 김 변호사는 "일자리가 없는 요즘 청년들이 창업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희망법에는 변호사 7명이 사법연수원과 로스쿨 출신 구분 없이 똘똘 뭉쳐있다. "국가와 자본을 비롯한 모든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한다"는 원칙이 '희망법'의 제1가치다. 때문에 사무실 살림이 어렵더라도 순수 개인 후원을 원칙으로 하고 국가나 기업 지원은 받지 않는다.
그런 그가 지난해 전국 법원을 돌며 장애인 인식개선을 강연했다. 김 변호사는 "장애인을 잘 모른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 법조인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를 만나 그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해 들어봤다.
김재왕 변호사가 공익인권 변호사모임인 '희망을 만드는 법' 사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우찬 기자
시각 장애인으로서 법률가가 되겠다는 도전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한쪽은 시력이 태어날 때부터 안 좋았고 다른 한 쪽은 대학원 다니면서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게 됐다. 이후 변호사 되겠다고 마음먹기 까지 6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장애를 갖고 나서 복지관에서 기초재활교육도 받았고, 국가인권위에서 일하다가 변호사로 일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권위 있을 때부터 변호사시험을 준비했는데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 인권위를 그만뒀다.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듯 극적인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음을 비우고 준비를 했다. 안 보이는 상태에서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음성으로 공부를 했다. ‘스크린리더’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컴퓨터 환경이나 문서파일 등을 음성으로 출력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교재나 파일로 구해서 그런 내용을 들으면서 공부를 했다.
변호사 생활 중 가장 뜻 깊었던 사건은 무엇인가.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점자정보단말기를 제공하도록 이끌어 낸 것이다. 제가 일하고 있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인 ‘희망을 만드는 법’(희망법)은 2013년부터 문제를 제기해왔다. 2014학년도 수능시험까지 전맹인 시각장애 수험생들은 컴퓨터나 점자정보단말기 등 보조기기 없이 수능시험을 치렀다. 이들에게는 점자 문제지와 문제가 녹음된 테이프가 제공됐다. 국어의 긴 지문을 한 번만 읽고 풀고, 수학 방정식 문제를 암산으로 풀었다. 영어 독해 문제를 원어민의 음성을 듣고 풀기도 했다. 명백한 차별이었다.
'희망법'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이에리사 의원실, 더불어 민주당 박홍근 의원실, (사)한국시각장애인가족협회, 장애·비장애학생연대동아리 SIMB 등이 힘을 모아 시각장애학생 증언대회를 2014년 1월 열고 수능시험에 점자정보단말기 등 보조기기 도입을 촉구했다. 이후 '희망법' 등 4개 단체가 연대를 결성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측과 면담해 시각장애 수험생들이 원하는 보조기기로 수능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그 뒤 평가원이 수능시험에서 화면낭독프로그램이 설치된 컴퓨터를 제공하고 점자정보단말기 도입을 위한 연구를 진행했고 결국 지난해 3월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기본계획에서 "시각장애수험생 중 희망자에게는 전년도부터 제공한 화면낭독프로그램이 설치된 컴퓨터와 해당 프로그램용 문제지 파일을 제공하고, 이에 더하여 올해부터 2교시 수학 영역에서 필산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점자정보단말기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장애인 변호사로서 편견과 오해를 받은 적은 없었나.
제가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오해를 받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일반적인 시각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있었던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이 시각장애인들은 당연히 점자를 읽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공부도 당연히 점자로 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다시 말하면 변호사로서 업무하는 과정에서 오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오해가 많이 있는 것 같다.
작년에 법원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순회강연을 해왔다. 반응은 어땠나.
사실은 그게 어려운 문제다. 안 보이다 보니까 교육하면서 반응을 알기가 어렵다. 나중에 슬쩍 물어보면 다들 좋았다고는 하시는데. 진짜로 좋아서 좋았다는 건지 그냥 물어보니까 좋았다고 하는 건지는 잘 알 수 없다. 물론 전부 다 똑같이 잘 들어준 것 같지는 않지만 몇 분은 정말 열심히 들어주신 것 같다. 질문하셨던 분도 계시고 질문했을 때 답을 주신 분도 계셨다.
이번 강연은 법원행정처에서 먼저 요청을 했다. 사실은 이런 활동을 하다보니까 법원 직원이나, 특히 판사님들이 이런 내용을 아실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재판을 하다 보면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는 생각을 재판부도 비슷하게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제가 차별을 개선하는 활동이나 소송을 하는데 있어서 재판부가 가지는 일반적인 편견이나 오해가 장벽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마침 연락이 와서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좀 무리한 일정이긴 했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국내 첫 시각장애인 변호사인 김재왕(38)씨가 지난해 11월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장애인 인식 개선교육' 강연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대법원
'희망법' 활동이 왕성하다. 공익인권변호사 단체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일을 하고 싶은데 이런 일자리가 많지 않으니까 만들었다. 요즘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창업을 하는 거랑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이런 활동을 하고 싶었고 이런 일이 제가 하는 일 중에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가 마침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쉽지는 않은 것 같다. 희망법은 상당 부분 후원으로 운영된다. 정부나 기업지원을 받는 것이 물론 단체를 운영하는 데 쉬운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지원을 받게 되면 아무래도 사건을 맡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가령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겠는가, 기업에서 돈을 받고 있는데 그 기업에서 생긴 문제데 대해 소송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할 때가 그렇다.
그래서 어려워도 개인 후원으로 운영하는 게 활동의 폭을 좁히지 않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후원으로만 운영하는 게 쉽지 않다. 일단 안정적으로 운영될 만큼 후원자가 늘지 않았고 후원도 지인들이나 연수원, 로스쿨 졸업생 모임 같은 데서 만든 공익기금으로 그나마 유지된다. 후원만으로는 안 되니까 기관에서 하는 연구용역을 받아서 하기도 하고. 법원 등에서 공익 강연도 한다. 여기서 얻는 수익은 제가 받는 게 아니라 단체로 귀속된다. 단체 사업으로 하고. 부족한 부분은 그렇게 충당하고 있다.
'희망법'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나.
총 8명(변호사 7명, 사무국장 1명)이다. 관심 갖고 있는 분야가 조금씩 다르다. 주로 관심 갖고 있는 분야는 크게 3가지인데 장애인인권, 성소수자인권,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다. 저는 그 중에 장애인인권에 관심이 있어 그 부분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3가지만 하는 건 아니다. 시국이 시끄럽다 보니까 집회나 시위하다가 기소된 분들을 변호하는 활동도 한다.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사례도 많이 있나.
전통적인 개념의 인권침해는 국가가 개인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기업이 거대화 되고, 권력화 되면서 개별적인 사안에서는 국가에 필적할 정도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대표적인데, 이것을 ‘권력형 괴롭힘’이라고 하는데, 기업 안에서 특정인을 쫓아내기 위해 괴롭히는 사안이 있다.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금 맡고 있는 주요 사건은 어떤 것이 있나.
최근에 하고 있는 것은 에버랜드에서 시각장애를 이유로 놀이기구 탑승을 제한하고 있는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지난해 9월 1심 승소판결이 나온 사건과 다르다. 그 사건은 지적장애인에 대한 차별 건이다. 그 사건도 제가 대리를 했다. 쌍방이 항소하지 않아서 일부승소로 확정이 됐다. 에버랜드 가이드북도 판결 취지대로 수정이 됐다. 또 다른 주요 사건은 장애인 표준사업장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나 차별이 있다는 내부 고발사건이 있다. 사업주가 내부고발자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1심을 맡아서 진행 중이다.
장애인 인권과 법적 권리 보호를 위해 특히 법조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장애인들은 아무래도 사회에서 비주류다. 돈이 없는 집에서 장애인이 나오면 지원을 못해주는 경우도 있다. 또는 장애가 있어서 교육을 못 받거나 가세가 기우는 일도 있다. 또 사회 계층을 나누면 장애인들이 하위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법조인은 상대적으로 상류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까 상류층으로 갈수록 장애인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분(법조인)들은 특히나 장애인을 만나본 적도 많지 않고 경험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만큼 잘 모른다. 일반적인 오해나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일단 잘 모르는 게 더 큰 문제다.
법조인들이 가장 먼저 인식해야 할 것이 스스로 장애인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장애와 관련해서는 장애 당사자가 법조인보다 더 잘 알 수 있다. 장애인이 당사자나 이해관계가 있는 사건에서는 당사자나 장애 관련 전문가들에게 장애에 대해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연구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 노력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 지적장애와 관련된 것이다. 지체장애나 시각장애, 청각장애 같은 신체장애인들은 겉에서 보기에 표가 나니까 그래도 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지적장애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잘 표가 안 난다. 특히 우리가 사회에서 만나는 지적장애인들은 대부분 경증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만나면 말이 통하고 그러니까 장애가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 말이 통하기는 하지만 어려운 얘기를 하면 다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법과 관련된 부분은 지적장애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네네’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마치 다 알고 그런 행위를 한 것 처럼 여겨져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많다.
"장애는 사회적 문제
사회적 지원 없으면
장애인 성공 못해"
지난해 강연에서 ‘장애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적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떤 의미인가.
장애에 대한 오해일 수도 있는데.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불쌍하다’는 동정의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장애인 중 몇몇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에 대해 장애를 ‘극복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그런데 장애를 극복했다는 것은, 즉 극복이라는 것은 뛰어넘어서 더 이상 없는 것을 말한다. 장애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제가 변호사가 제가 됐다고 해서 사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게 아니다. 역시 변호사로서 일하면서도 불편함이 여전히 존재한다. 없어지지 않는다. 장애는 평생 가지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극복이 아니라 매순간 적응해 나간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또 하나의 문제는 ‘불쌍하다’, ‘극복했다’ 두 가지 시선 모두 장애라는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다. 뭔가 불편해 보이니까 불쌍해 보이고, 대부분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개중에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이 있으면 ‘봐라 저 사람은 하지 않나. 다른 사람은 왜 못하나’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장애라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제가 변호사가 된 과정도 그렇고 하고 있는 일도 그렇고 주변에서 지원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원하는 문제는 사회적인 문제이고 그런 사회와의 상호작용이 없었으면 저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없다. 장애와 관련해서 흔히들 이런 부분을 못 보시고 개인만 보시는 것 같다.
이 길에 들어선 이상 갈 길이 먼 것 같다.
하면 할수록 일거리가 많다. 사회 곳곳에 차별적인 부분들이 참 많다. 장애와 관련해서는 차별이 사라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차이는 있으니까. 그렇지만 어떻게든 그 차이를 좁혀가는 게 제가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다못해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로 바뀌는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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