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중심의 소비 성향이 짙어지면서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디자인이 핵심요소로 떠올랐다. 대기업들은 일찌감치 소비 트렌드의 변화를 인식하고 디자인경영 등 기업 현장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를 필두로 현대차의 '제네시스', LG전자의 '시그니처' 등 프리미엄 브랜드도 디자인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반면 상대적으로 자금사정이 열악한 중소기업들은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을 절감하면서도 대응은 답보다. 중소기업연구원이 지난해 9월 국내 중소기업 315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기업 절반이 "디자인, 문화·예술 등 소프트파워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데 동의한다"고 답했다. 문제는 이를 실현할 투자에는 한발짝도 내딛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응답기업의 75.6%가 디자인에 별도로 투자하지 못할 정도로 여력이 없었다.
적극적인 디자인 개발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로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단연 '비용문제'다. 디자인 관련법과 지식재산권을 관리하는 IP(지식재산권) 디자이너 육성에 나서고 있는 전혜선 디자인아이피 대표는 "인력 고용 후 지출하는 한 달 급여만큼의 업무가 발생해야 하는데, 디자인 업무 특성상 그렇지 않기에 전문인력을 고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많은 기업들이 필요한 경우 외주를 주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용부담 탓에 중소기업 대부분은 제품보다는 환경 개선에 그치고 있다. 이마저도 정책적 지원 없이는 언감생심이다. 최근 서울 문래동 일대 철공 골목은 정부가 15억8000만원을 투입해 간판을 교체하는 등 상권에 변화를 줬다. 1300여 소규모 철공소 중 일부를 대상으로 낡은 간판을 현대식으로 교체했으며, 재래식 화장실도 현대식으로 새단장했다.
서울 문래동 철공소골목 내 간판개선사업이 이뤄지기 전(왼쪽)과 이뤄진 후(오늘쪽) 모습. 사진/중기청
그마저도 일부에 그치면서 단순 환경 개선으로는 매출 증대 등의 직접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래동 내 한 철공소 대표는 "간판교체나 화장실 정비는 이곳을 처음 방문하거나 일반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곳에 필요한 일이지, 우리처럼 오랜기간 알고 지내던 거래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디자인 투자에 대한 소상공인들의 반응은 더 무덤덤하다. 하루 먹고 살기도 빠듯한 영세 소상공인들로서는 디자인 투자를 사치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근 낡은 간판을 교체한 서울 종로구 북촌로 상인들 역시 반응이 차갑기는 마찬가지. 종로구는 지난해 이곳 일대 396m 구간에 33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최대 250만원의 개선비용을 투입, 간판 개선사업을 진행했다. 이에 대해 한 상인은 "간판 교체과정에서 간판 크기와 색깔까지 제약을 두는 바람에 이전보다 주목도가 떨어졌다"며 "첫 번째 시안으로 나온 간판 색깔이 마음에 안들어 바꿔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서울 북촌로 일대 상점들의 간판개선이 이뤄진 모습.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진/최한영 기자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아직까지는 마땅히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며 "간판교체뿐만 아니라 동선을 고려한 상품진열 및 배치 등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한눈에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이 아니기에 본격적인 접근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시장의 경우에도 최근 들어 시장을 알리는 아케이드를 만들고 보기 좋도록 디스플레이를 하는 등의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진병호 전국상인연합회장은 "중기청 주도로 문화관광형 시장, 골목특성화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성과가 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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