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쩝”
나를 배려하지 않는구나. 이렇게 결론짓기까지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익숙한 소리라 불쾌할 것 까지는 없었지만 그날따라 소리의 이유가 무척 궁금했다.
마흔이 넘으면 청력에 이상이 생겨 자신의 밥을 먹는 소리가 안 들리나. 그렇다면 나도 훗날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테니 그러려니 해야지. 아냐. 그 나이의 모든 남자가 소리를 내며 먹는 건 아니니 더 그럴듯한 이유가 숨어있을지 몰라. 병장이 돼서야 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 있는 것처럼 “쩝쩝”소리는 그의 지위를 보여주는 표식일지도. 그냥 구강구조가 특이해서 유난히 소리가 많이 나는 건가. 아니면 단지 조심성이 없는 건가. 아무튼 입을 조금만 닫고 식사하셨으면.
그날로부터 며칠 후 동문회에 갔다. 술집 안 예약된 방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보기 싫은 선배들도 보였지만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절반이나 있어 오늘은 편하겠구나 싶었다. 선배들을 피해 일부러 앳된 얼굴들이 모인 테이블에 앉았고, 그날 술자리는 여느 때와 달리 어떤 부정적인 느낌도 남기지 않고 잘 마무리했다. 집에 도착할 무렵 취기도 완전히 가셨다.
“띠리링”
다음날 아침 모르는 번호로 장문의 문자 메시지가 왔다. 내가 술을 많이 권했다는 데 혹시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사과를 구하고 싶다고 했다. 예의를 차리기 위한 사족이 무척 많았고 좋은 술자리였다며 나중을 기약하는 말까지 덧붙였다. 멍했다. 기억 밖의 낯선 사실보다 그가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는 게 더 당혹스러웠다.
그 문자 메시지 덕에 나는 중년 남자의 식사가“쩝쩝”소리를 동반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중년 남자는 나를 배려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Judge’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없었다. 배려심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향할 대상이 부재(不在)했다. 그 남자의 세계엔 내가 살고 있지 않았다.
“쩝쩝”소리의 진짜 이유는 차갑도록 간단했고, 나는 내 세계에 부재중인 사람들을 떠올리려 애썼다. 여성이니 노동자니 하는 주워들은 말과 위안부인가 뭔가 하는 신문에서 본 말들이 맴돌았으나 내 세계에 잠시도 내려앉지 못했고 배려심은 여전히 충분했다.
사진/바람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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