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무명팀' 레스터시티의 돌풍이 이어지면서 가장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는 팀은 아스널이다. 아스널의 강력한 라이벌인 첼시와 맨유가 일찌감치 선두권에서 이탈했음에도 승리의 여신은 아스널의 손을 잡지 않는 모습이다.
5일 기준으로 EPL 32라운드까지의 성적을 살펴보면 레스터시티의 1위(승점69)가 확고하다. 2위 토트넘(승점62)과 3위 아스널(승점58)이 뒤를 쫓고 있는데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레스터시티는 남은 6경기 가운데 4승만 따내도 EPL 정상에 오른다.
매년 4~6위권 팀으로 분류되는 토트넘의 2위 진출은 어느 정도 납득 가능한 일이다. 5위에 처진 맨유(승점53)와 10위로 밀려난 첼시(승점44) 덕분에 반사이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레스터시티의 경우는 다르다. '만년 4위' 꼬리표를 달고 있는 아스널 입장에서는 우승하기 가장 좋았던 시즌을 레스터시티가 망쳐버렸다.
아스널이 올 시즌에도 우승하지 못한다면 2003-2004시즌 우승 이후 12년간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한다. 영국 축구 역사를 봤을 때 아스널은 올해까지 무려 89시즌간 1부 리그에서 떨어지지 않는 등 독보적인 모습을 보인 팀이다. 가장 오랜 기간 1부 리그에 머문 팀이 유독 1993년 출범한 EPL 우승과는 거리가 멀다.
올 시즌만 본다면 아스널 입장에서는 억울한 부분도 있다. 아스널은 올해 레스터시티와 맞대결에서 두 번 모두 이기며 우승 후보에 걸맞은 최소한의 역할은 해냈다. 아스널은 지난해 9월26일 레스터시티와 원정 경기에서 5-2 대승을 거뒀다. 지난 2월14일에는 홈에서 레스터시티를 2-1로 꺾었다.
하지만 시즌 전체로 봤을 때 아스널이 비효율적인 축구를 한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아스널은 토트넘과 첼시에 지고 맨유에 비기는 등 우승을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하는 팀들과 경기에서 승점을 챙기지 못했다. 아스널은 토트넘과 첼시에 지고 맨유에 비겼다. 우승을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하는 팀들과 경기에서 승점을 챙기지 못한 셈이다. 반면 레스터시티는 맨시티, 리버풀, 토트넘, 첼시, 에버튼 등 강팀들을 잇달아 꺾었다. 알토란 같은 승점을 쌓으며 아스널과의 격차를 벌렸다.
최근 나온 미국 매체 ESPN의 자체 분석을 보면 남은 일정에서 레스터시티의 우승 확률이 88%에 달한다. 토트넘이 8%를 가져갔으며 아스널은 4%에 불과하다. 물론 아스널이 전승을 거두고 레스터시티가 주춤할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아스널의 주장 페어 메르테사커는 현지 언론 스카이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아직 모든 게 끝나지 않았다. 우승이 가능하다"고 선수들을 독려했다.
그러나 영국 내에서도 팬들 많기로 소문난 구단이 아스널이다. 이 때문에 일부 현지 언론과 팬들의 비판은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으로 향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그만 벵거 체제의 아스널을 끝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벵거 감독은 1996년부터 지금까지 아스널을 이끌고 있는데 이는 현재 EPL 감독 중 가장 오래 한 팀을 이끈 경력이다.
사실 벵거 감독은 2008년까지 무려 57%에 달하는 승률로 팀을 이끌었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뛰어난 감독으로 평가받았다. 실제로 벵거 감독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2 대학교' 경제학 석사 출신 경제학자다. '아스널의 두뇌'라는 말에서 보듯 지적인 축구를 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벵거 감독은 철저한 수학적 계산과 축구를 보는 직관의 힘을 더해 티에리 앙리, 피레스, 파트리그 비에이라, 로빈 판 페르시, 데니스 베르캄프, 프레드리크 융베리, 세스크 파브레가스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을 이끌었다. 그러면서도 벵거 감독은 저렴한 가격으로 유망주를 육성해 빅클럽들과 맞서는 효율적인 구단 운영에도 힘을 보탰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는 이 모든 업적이 '우승 트로피' 앞에서 뒤로 밀리는 분위기다. 특히 아스널의 최근 행보는 과거와 달랐다. 유명 선수 영입에도 힘쓰며 일정 부분 지출을 감수했다. 올리비에 지루, 메르데자커, 메수트 외질, 알렉시스 산체스 등을 데려온 데 이어 올 시즌을 앞두고는 11시즌간 첼시에서 활약한 골키퍼 페트르 체흐까지 영입했다.
비판의 수위가 높아지자 벵거 감독은 최근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우승을 너무 꿈꿔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다가올 경기에만 집중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경기를 치러가며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아스널 홈구장 곳곳에선 벵거 감독이 떠나야 한다는 현수막이 여전히 휘날린다. 구단과 현지 전문가들은 "그래도 벵거 감독이 아스널을 이끌어야 한다"고 두둔하고 있으나 거세지는 여론을 잠재우기엔 쉽지 않아 보인다. 레스터시티가 승점을 쌓아 갈수록 아스널과 벵거 감독에 대한 팬들의 실망 지수도 덩달아 높아질 참이다.
임정혁 기자 komsy@etomato.com
◇지난 2월14일 영국 런던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4라운드 아스널과 레스터시티의 경기 도중 아스널의 외질(왼쪽)과 레스터시티의 캉테가 볼 경합을 하는 모습. 사진/아스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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