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법원이 부산시의 '뒷북행정'에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린 가운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향방을 가늠할 수 없게 됐다. 법원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 자문위원 68명의 위촉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부산시의 가처분 신청을 지난 11일 받아들였다.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 강수연, 이용관 공동집행위원장, 전양준 운영위원장(왼쪽부터). 사진/뉴시스
이날 부산지법 민사14부(재판장 박종훈)는 부산시가 최근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집행위)를 상대로 낸 '부산국제영화제 신규 자문위원 위촉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지난 1월29일 68명의 집행위 자문위원을 위촉했다. 자문위원에는 영화감독 류승완, 박찬욱, 최동훈 등을 비롯해 배우 하정우, 유지태 등이 포함됐다. 집행위는 자문위원을 위촉한 사실을 지난 2월15일 부산시에 알렸고, 같은 달 19일에는 68명의 이름을 부산시 전자우편을 통해 보냈다.
하지만 부산시는 위촉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2월25일 열린 정기총회에서도 별다른 입장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 2월29일 갑작스럽게 영화제 사무국에 68명의 선임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집행위 자문위원이 68명 더 증원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14일이 지난 뒤 백지화를 요구한 것이다. 부산시는 결국 지난 3월 15일 이용관 위원장이 위촉한 자문위원 68명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새 자문위원 68명은 부산영화제 재적 회원 155명의 3분의 2를 넘어 영화제 관련 임시총회 등을 요구할 수 있다. 영화제 정관에는 자문위원을 별다른 절차 없이 집행위원장이 위촉한다고 돼있으며, 그 수도 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정관을 집행위원장이 자문위원을 무제한 위촉할 수 있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본래 영화제 집행위는 새 자문위원으로 임시총회를 열어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는 내용의 정관으로 개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법원의 이 같은 판단으로 집행위가 원했던 정관 개정은 기한 없이 장기화 될 것으로 보인다.
집행위는 법원의 이번 결정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법원이 정관에 정해진 집행위원장의 자문위원 위촉 권한을 존중해주길 기대했으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며 "하루속히 임시총회를 열어 정관 개정 후 영화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싶었으나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져, 앞으로 부산시의 협조 없이 정관 개정이 불가능하게 됐다. 조직위원장의 민간 이양을 표명한 부산시가 대승적인 결단을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영화 '다이빙 벨'로 촉발된 이번 사안은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이 핵심 쟁점이다. 집행위 측은 영화제의 조직위원장은 총회에서 선출해야한다는 입장이지만, 부산시는 당연직인 부산시장이 선출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집행위는 어떤 부분이든 간섭을 받지 않게 해달라는 입장인데, 이 점이 부산시와 충돌하고 있다.
법원이 부산시의 손을 먼저 들어준 가운데 집행위 측이 향후 어떻게 대응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일단 집행위는 자문위원 위촉과 관련한 소송에 나서는 한편, 시와도 가능한 타협점을 찾겠다는 방침이다. 무엇보다도 부산국제영화제의 파행을 막는 일이 시급하다.
영화제 한 관계자는 "자문위원 위촉에 대한 본안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소송으로 가게 되면 이 사안은 점차 장기화 될 것이다. 1년을 준비하는 영화제인데, 부산시와의 갈등으로 이미 많이 늦어졌다. 그런 가운데 이런 판결이 나왔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예정된 시간에 개최나 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집행위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는 영화제의 독립성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는 중이고, 부산시는 위원장을 직접 위촉함으로써 영화제에 간섭을 하겠다는 것이다"라며 "영화제가 온전히 치뤄질 수 있도록 시와 타협을 하고있지만,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내비쳤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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