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용민기자] 20대 총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민의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지만, 간접적인 반성의 메시지도 없었다. 핵심 국정과제의 중단 없는 추진을 천명하는 등 국정운영 기조를 그대로 밀고나갈 태세다. 총선 민의를 잘못 받아들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1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이번 선거의 결과는 국민의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며 “20대 국회가 민생과 경제에 매진하는, 일하는 국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정부도 새롭게 출범하는 국회에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국민의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에 두고 사명감으로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마무리하도록 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겉으로만 보면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에 심판을 내린 총선 참패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 그러나 발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박 대통령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이 생각한 민의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차기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약속했지만 원론에 그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동안 어떤 정부도 국회와 협력하지 않겠다고 한 정부는 없었다.
집권 여당이 참패한 선거 결과를 겸허히 수용한다면 간접적으로라도 사과를 하며 국정운영의 변화를 시사하거나 인적쇄신을 언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기존의 국정운영 기조를 더 강하게 밀고 나갈 것을 암시했을 뿐이다.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침체와 북한의 도발 위협을 비롯한 대내외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개혁들이 중단되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뤄져 나가기를 바란다”고 천명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 활성화와 구조개혁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여야가 첨예하게 갈등한 경제·노동 관련 법안 처리를 계속 밀어붙이라고 여당에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여전히 야당이 자신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강경 기조를 유지했다. 북한과의 어떠한 대화와 타협도 없다는 듯 이날도 북한의 위협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다양한 방법으로 도발과 위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5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도 포착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비주류조차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상태다. 김성태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의 결과는 대통령께서 국회 탓말 해서는 될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며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의 난맥상을 인정하고, 국정운영 기조를 크게 변화시키겠다는 의지가 지금 절실한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재경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총선 이후 첫 발언이어서 기대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민의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을 뿐 단 한마디의 반성도 없었다”며 “선거 전의 인식과 달라진 것이 없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 엄정하고 준엄한 질타에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싶지 않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최용민 기자 yongmin03@etomato.com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 집현실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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