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임금제가 답이다)영국, 복지비용 대신 임금 인상
시민단체 운동으로 물꼬, 15년만에 국가 정책으로 확산
2016-05-10 12:00:00 2016-05-10 12:00:00
[뉴스토마토 박용준기자] 지난달 1일, 영국은 최저임금제를 생활임금으로 대체·보완하는 법정 생활임금제를 도입했다. 25세 이상 노동자에게 임금을 이전보다 기존 최저임금 6.7파운드에서 7.5% 인상된 시간당 최저 7.2파운드(약 1만1898원)를 주는 내용으로 대상 노동자는 600만명이다. 생활임금제 도입으로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 부정적 견해도 있지만,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 안정과 더불어 소비 활성화로 기업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영국은 기대하고 있다.
 
영국의 생활임금제는 2001년 시민단체 런던시티즌즈(London Citizens)의 동부 런던 지부인 텔코(TELCO)를 중심으로 생활임금 도입 운동이 벌어지면서 물꼬를 텄다. 텔코는 주민 1000여명과 함께 지역 빈곤층 문제 해결을 위해 지자체와 지역 기업에 생활임금 도입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을 벌였다. 이어 영국 공공분야 노조도 텔코의 생활임금 시민운동을 지원하고 나섰고, 퀸메리대학의 제인 윌스 교수도 생활임금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는 보고서를 발간해 뒷받침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2004년 런던시장 선거에서 후보들이 생활임금제의 중요성에 공감하면서 런던시가 생활임금제도를 도입하는 초석을 놓았다. 2008년 런던시장 선거에서는 보수당 역시 생활임금에 대한 지지를 선언해 생활임금제가 정파와 관계없이 공공의 지지를 받는 제도로 자리 잡게 됐다.
 
이미 지난해 런던시의 생활임금은 9.4파운드(약 1만6920원)로 법정 최저임금보다 40% 가량 높았으며, 최저임금과의 격차 역시 2005년 1.65파운드에서 2015년 2.7파운드로 점차 확대됐다. 생활임금제도 확산에는 시민단체·민간기업·런던시 등이 협력해 설립한 ‘생활임금재단’을 빼놓을 수 없다. 생활임금재단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면서 인증제도 운영, 인증기업 지원, 생활임금 포럼 운영, 생활임금주간 개최 등 민간 확산과 시민 인식 개선을 펼쳤으며, 현재 대표적인 저임금 분야인 사회복지 분야에 생활임금도입을 위해 힘쓰고 있다.
 
버버리, 내이션와이드, 아비바, KPMG 등 대기업들도 설립 초기부터 파트너로 생활임금재단에 참여한 결과, 런던 내 생활임금 인증기업은 2012년 78개 기업에서 지난해 724 곳으로 크게 늘었다. 런던시의 적극적인 생활임금 도입은 결국 영국 정부를 움직였고,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총리는 “생활임금은 적절하게 이행될 때에만 제대로 작동한다”며 국가차원에서 생활임금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영국 정부는 25세 이상 근로자의 생활임금을 2020년까지 연 평균 6.25% 인상해 시간당 9파운드까지 올릴 계획이다. 지난해 영국 물가 인상률이 1% 안팎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수준이다. 또 생활임금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사업주에게 벌금을 두 배로 징수하고 15년간 사업자자격을 박탈하는 등 생활임금 정착을 위한 강제수단도 갖췄다.
 
특이한 점은 ‘생활임금 전국 도입’이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의 지난해 5월 총선 주요 공약이었다는 점이다. 보수당은 애초 1998년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가 최저임금제를 도입할 때만 해도 최저임금제가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올려도 실질적인 실업 증가가 일어나지 않았고, 이후 최저임금을 바라보는 영국 경제학계의 시선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에 영국 정부가 오는 2019년 재정 흑자를 달성한다는 목표 아래 대대적인 재정 감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생활임금제를 도입해 극단적인 노동 착취를 없애고 고용안정성을 높이겠다는 조치다.
 
영국 정부는 국가가 복지비용을 감당하기 힘겨워지자 직접적인 복지비용 부담 대신 임금을 올려 소득 불평등을 없애 국가 경제를 건강하게 만들겠다는 ‘거대한 실험’을 택했다. 이제 영국은 그 성과물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달 1일 영국 맨체스터의 한 슈퍼마켓 외부에 생활임금 도입을 알리는 홍보물이 전시돼 있다.사진/로이터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진규 온라인뉴스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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