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요즘 충무로의 영화감독들은 아역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어린이 역을 맡은 사전적인 의미가 있는 아역이란 단어를 빼고 배우라고 말한다. 단순히 나이만 어릴 뿐 성인 연기자 못지않은 감정 표현과 연기력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극장가에 눈에 띄는 어린 배우 네 명이 있다. '탐정 홍길동:사라진 마을'('탐정 홍길동')의 김하나와 노정의, '곡성'의 김환희, '부산행'의 김수안이다.
영화 '탐정 홍길동'의 노정의와 김하나.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탐정 홍길동'을 보면 여덟 살의 배우 김하나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김병덕(박근형 분)의 둘째 손녀 딸 김말순을 연기한 김하나는 깜찍한 얼굴을 한 채 심드렁하면서도 대담한 대사를 선보인다. 잔인하고 냉철한 홍길동(이제훈 분) 앞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아저씨 또 거짓말해요?", "무슨 일을 저렇게 해", "뭐라는 거야" 등 성인들이나 할 법한 말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종교집단의 광기와 음산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에서 김하나는 유일하게 웃음을 유발하는 존재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우울하지 않은 건 김말순을 연기한 김하나 덕이 크다.
조성희 감독은 연기 경험이 없을 뿐더러 '탐정 홍길동' 출연에 대한 의지도 없던 김하나를 연기자로 탈바꿈시켰다. 조 감독은 "아이 자체의 순수함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더 훌륭한 연기자들이 많았음에도, 하나가 계속 눈에 밟혔다.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고 말했다.
이 영화에서 말순의 언니 동이 역을 맡은 노정의는 제2의 김유정을 연상시키는 배우다. 참하고 고운 외모와 안정적인 감정과 대사 톤 등 연기자로서의 역량을 갖추고 있다. 말순이 웃음을 만드는데 반해 노정의는 동이를 통해 영화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후반부 슬픈 소식을 접한 뒤 동이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관객 역시 눈시울을 붉힌다. 노정의는 SBS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어린 최인하(박신혜 역)과 '더 폰'에서 말괄량이 큰 딸 등 굵직굵직한 작품에 출연한 바 있는 신예다.
영화 '곡성'의 김환희와 곽도원 스틸컷.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곡성'에서 종구(곽도원 분)의 딸 효진을 연기한 김환희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할 만한 연기를 펼쳤다. 영화 초반 아버지 역의 곽도원과 다정한 부녀 사이를 그리며 해맑은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던 그는 중반부부터는 몸을 꺾거나 부들부들 떨며 귀신에 홀린 듯 연기를 펼친다. 딸을 걱정하는 마음에 치마를 올리고 병의 증세를 파악하던 종구를 보고 "이 XX놈아"라며 연신 욕을 날리는 장면이나, 악마가 잔치를 앞두고 만찬을 즐기는 느낌의 하이라이트 장면에서는 소름이 돋는다. 배우 곽도원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 고민할 때 환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엄청난 아픔을 표현하는 환희를 보면 눈물이 절로 났다. 환희 덕에 아버지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 '부산행' 김수안 스틸컷. 사진/NEW
칸 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되는 등 한국판 좀비영화로 알려진 '부산행'의 김수안은 이미 유명한 어린 배우다. 김수안은 이 영화에서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공유의 딸로 출연한다. 이 영화의 한 관계자는 "'부산행'의 히든카드다. 김수안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안은 영화 '숨바꼭질', '차이나타운', '신촌좀비만화'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한 충무로의 기대주다. 귀여운 외모에 엄마 미소를 짓다가도 강단 연기를 하면 입이 벌어지게 된다. '부산행' 이후에는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와 김용화 감독의 '신과 함께'에도 출연한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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