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하 한샘 회장은 국내 최장수 전문 경영인(CEO)중 한명으로 손꼽힌다. 1949년 서울 출생인 최 회장은 1973년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해 대우중공업에서 엔지니어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1979년 공자가 ‘모든 기초를 세우는 나이’라고 표현한 이립(30세)에 한샘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후 공장장과 영업이사 등 요직을 거쳐 1994년 대표이사에 취임했고, 지금까지 22년간 한샘을 이끌어왔다.
최 회장의 지휘아래 한샘은 급성장한다. 대표이사 취임 당시 연매출 1000억원대의 주방가구 회사 한샘은 지난해 연매출 1조7000억원대의 종합 홈 인테리어 회사가 됐다. 그렇지만 그는 “세계 최강의 인테리어 기업이 되는 것이 한샘 창립 때부터 목표”라며 또 다른 도약을 꿈꾼다. 무대는 중국이다. 최 회장은 “중국현지에 맞는 차별화된 상품, 유통·마케팅·서비스를 통해 750조원의 중국 홈인테리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최양하 회장과 한샘과의 기나긴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37년 전인 1979년, 지인의 소개로 그가 한샘에 합류하면서 시작된다. 최 회장은 “당시는 신흥재벌들이 욱일승천하던 시절로 ‘나도 신흥재벌 한번 일궈보고 싶다’는 게 모든 샐러리맨들의 꿈이었다”며 “요즘으로 치면 벤처열풍 같은 것이다. 아내와 가족들이 반대했지만 꿈을 펼쳐보자는 생각에 회사를 옮겼다”고 회고했다.
최양하 한샘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샘 본사에 진열된 제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야심차게 이직해 생산과장이라는 직함도 받았지만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목공소나 다름없었던 허름한 공장이었다. 최 회장은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주변에 자랑할 만한 회사로 키워낼 때까지는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는 오기가 생겼다”면서 “그때부터 생산라인의 기계화·자동화 작업을 했다. 죽어라고 일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구식에 허름했던 공장시설이 오히려 신식 자동화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처럼 위기나 한계상황을 기회로 삼아 도약하는 것은 최 회장 리더십의 특징으로, 한샘의 발전사에서 ‘위기는 곧 기회’였다.
1980년대 국내 건설사들의 중동 진출 붐에 힘입어 성장가도를 달렸던 한샘은 중동 붐이 끝나자 소비자 판매 중심으로 전환했다. 비슷한 처지의 경쟁사들이 할인행사를 남발하며 제살 깎아먹기식 출혈경쟁에 돌입했지만 당시 영업이사였던 최 회장은 거기에 흔들리지 않고 ‘노세일’, ‘고급화’ 전략을 구사했고, 이는 역으로 고객들의 신뢰를 얻는 길이 됐다.
대표이사 전무에서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한 1997년, 그해 말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가 닥쳐왔다. 다른 회사들은 직원을 해고하고 투자를 축소하며 사업 영역을 줄여가면서 몸을 사렸다. 한샘은 달랐다. 주방에서 뛰쳐나와 거실과 침실 등 인테리어 가구로 사업 영역을 공격적으로 확장했고 4년 만에 업계1위에 올라선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온라인 판매, IK유통, 직매장을 확대하고 기존 대리점도 대형화했다. 그 결과는 매해 연간 30% 안팎의 매출 고속 성장으로 이어졌다. 2009년 1만원대에 머물던 주식은 6월22일 종가기준 16만4000원이다.
최 회장은 “어려운 시절일수록 기회는 더 크다는 것이 경영철학”이라며 “앞으로 더 큰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만큼 기회도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최양하 한샘 회장이 지난 4월 신입사원들과 간담회에서 격의 없이 대화하고 있다. 사진/한샘
“목표는 세계 최고, 미래는 중국에 있다”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와 한국 경제의 저성장이 기약없이 이어지면서 수출과 내수 모두 최악의 상황이다. 이러한 위기의 탈출구로 최 회장은 중국 시장에 주목한다.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 “한샘의 미래는 중국시장에 있다”고 단언했다.
사실 한샘은 지난 1996년 북경법인(한샘 주방설비 유한공사)을 설립한 이래 현지 공장을 설립하는 등 꾸준히 중국 시장의 문을 두드려왔다. 북경법인은 B2B 위주로 개발상(부동산·건설사)을 대상으로 신축 아파트에 부엌가구와 관련 상품 및 기기류를 공급하고 있다.
올해 2월에는 일반고객 공략(B2C)을 위해 상해법인(한샘 가구 유한공사)을 설립했다. 한샘은 약 750조원으로 추정되는 중국 홈인테리어 시장에 가구, 생활용품, 건자재 등 기존 한국에서 진행해온 모든 아이템을 유통할 계획이다.
최 회장은 “한샘은 창립 초기부터 세계적인 기업, 세계 최강의 기업을 목표로 지난 46년간 사업을 해 왔다”며 “세계에서 시장 규모가 가장 거대한 중국에서 성공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이 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 시장 공략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1차로 중국현지에서 약 70명의 인재를 선발했고, 한국 본사의 사업 전 부문에서 책임자급을 차출해 약 20명이 중국어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를 교육받고 직접 현지로 들어가 본격 시장조사에 나섰다”며 “중국의 주거문화를 어느 기업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충분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중국인들이 열광할만한 제품과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 회장은 현재 국내시장에서 급속히 세를 넓혀가는 ‘가구공룡’ 이케아(IKEA)와의 경쟁에도 한샘이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다. 강력한 제품경쟁력과 유통경쟁력을 가진 이케아는 지난해 경기 광명점 단 한 곳으로 매출 3080억원을 달성, 업계 3위 올라서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게다가 오는 2020년까지 5곳 매장을 추가 오픈한다는 계획이다.
그렇지만 최 회장은 “이케아와는 주요 타깃에 차이가 있다. 이케아가 중·저가, 독신과 신혼이 메인타깃이라면 한샘은 중·고가, 신혼에서 4~50대 고객이 메인 타깃”이라고 설명했다. 또 “영업방식에서도 이케아가 DIY(Do It Yourself)로 고객이 직접 배송과 설치를 하도록 하는 반면 한샘은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진단해 그에 맞는 공간을 제안하고 배송과 설치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고 비교했다. ‘고객감동’ 서비스로 이케아와의 경쟁을 이겨낸다는 심산이다.
최양하 한샘 회장이 지난 1월 한국공학한림원 신년하례식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한샘
“한샘 경쟁력 강화, 중소 제조사·대리점과 상생에서”
종합 홈 인테리어 기업 한샘은 객관적인 매출액을 기준으로 보면 중견기업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구업계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타공인 독보적 1위로 업계 내 ‘삼성’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또는 소상공인)의 ‘상생’이 화두가 된 요즘 한샘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한샘이 어떤 방식의 상생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가구업계의 전반적 기류가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최 회장은 “한샘은 제조비중이 20%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의 제품은 주문제작방식(OEM)으로 협력사를 통해 공급받는다. 공급처의 70~80%가 국내 중소 제조업체”라며 “유통 부문에서도 한샘의 매출 대부분은 대리점 또는 제휴점 즉 소상공인들이 담당하고 있다”면서 중소기업·소상공인과의 상생은 한샘에게 있어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강조했다.
그는 “중소 제조사의 경쟁력 강화는 향후 한샘의 경쟁력과 직결돼 협력사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며 “국내 가구산업의 균형성장과 상생협력을 목표로 ‘가구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공급자 박람회’를 후원하고 있고, ‘가구디자인 공모전’을 통해 제안된 중소기업 상품을 구매하는 형태의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기도지사가 주관하는 ‘가구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협의회’에도 적극 참여중이며 소상공인과의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긍정적인 방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최 회장은 “가구 선진국인 유럽을 보면 대형업체는 대중적인 제품을 소품종 대량으로 생산·공급하고 중소업체는 고객 맞춤형, 즉 커스터마이즈 제품을 생산·판매한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윤 나눠먹기’식 상생이 아니라 각자의 특색을 살릴 수 있는 상생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가구 명품을 만드는 이탈리아나 독일의 가구회사는 대부분이 매출 1000~2000억원대의 중견·중소기업”이라며 “앞으로 국내 가구시장도 대기업은 규격화된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해 싼 가격으로 공급하고 중소기업은 고객맞춤형 가구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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