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 법칙'이란 건물의 깨진 유리창을 내버려두면 결국 그 일대가 무법천지의 우범지대가 될 수 있다는 범죄환경학적 이론이다. 깨진 유리창을 본 사람들은 이 건물이 방치돼 있다는 생각에 다른 유리창도 재미 삼아 깨는 등 가벼운 범죄를 쉽사리 저지르게 된다. 이러한 행동이 쌓이면 종국에는 살인과 강도 등 더 큰 범죄로 번질 수 있다는 이론으로, 미국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 공동 발표한 글에서 처음 소개됐다. '월메이드'는 공공예술을 통해 깨진 유리창 법칙을 예방하고자 하는 사회적기업이다. 복잡하고 삭막한 도시에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담긴 벽화를 그려넣어 시민들의 심적 안정과 함께 삶의 윤택함을 추구한다. 작업과정에서 지역사회 구성원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마을에 대한 애착과 공동체 의식을 높여 지속 가능한 마을이 되도록 하는 것도 이들의 바람이다.
[뉴스토마토 이지은기자] 월메이드는 기업과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벽화 그리기 사업을 따내 서울 곳곳의 어두운 골목길을 벽화로 밝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단순히 환경 미화 차원을 넘어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거리를 만들어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고, 지역민들의 마을에 대한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자 한다.
광고분야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던 허창주 월메이드 대표는 유럽여행 중 여유롭고 이야기가 담긴(스토리텔링) 골목들을 보면서 창업에 대한 의지를 키웠다. 삶의 터전인 골목에서 편안하게 담소를 나누고, 차를 마시는 등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일상을 한국에서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월메이드가 태어났다. 2012년 공공예술 소셜벤처로 설립, 2013년 서울시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됐다. 2015년에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공공예술을 통해 살고 싶고, 걷고 싶은 마을을 목표로 세웠다. 5년 짧은 기간 동안 서울 곳곳에는 월메이드의 손길로 채워졌다. 향후 이 손길을 대한민국 곳곳에 남기는 것이 소망이다. 허 대표는 "획일화되고 삭막한 주거환경에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불어넣어 살고 싶고, 걷고 싶은 마을을 만들고 싶다"며 "주민들이 직접 벽화 그리기 작업에 참여하면서 내가 사는 동네와 이웃에 대한 애정을 더 갖게 되는 것도 우리가 바라는 바 중 하나"라고 말했다.
허창주 월메이드 대표. 사진/월메이드
담장 위 화가들 '마을을 바꾸다'
월메이드는 그간 서울 홍은동, 인천서구 절골마을 등 5개 지역의 마을 재생 프로젝트를 맡았다. 마을 재생 프로젝트는 주민과 예술가가 협업해 살고 싶고, 걷고 싶은 마을을 만드는 공동 작업이다. 참여를 통해 결과보다는 작업 과정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느리지만 집주인과 임대인이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월메이드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마을재생 프로젝트는 2~3명의 예술가와 주민들이 소통하며 진행된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연간 단위로 진행되기에 긴밀한 소통과 협업은 필수다. 허 대표는 "마을이나 지역에 대한 관심이 적은 편이어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힘든 점이 많았다"며 "무미건조한 회색 벽이 하얀 바탕에 대나무, 소나무 등이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으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주민들의 만족감이 커지고, 참여도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내 진행된 벽화. 사진/월메이드
월메이드의 또 다른 사업 영역은 범죄 예방 디자인이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도시설계나 건축설계 단계에서부터 적용하고 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개념으로, 마을의 흉물이나 쓰레기 무단투기, 빈 집 등 부정적인 환경요소를 사전에 차단해 범죄심리 감소와 주민에게 안정감을 갖게 하는 디자인 심리학적 접근이다.
허대표는 지금까지 서울 남구로역 주변과 서울 홍제동 포방터길 두 곳의 디자인을 담당했다. 남구로역 일대는 매일 새벽 인력시장이 형성되는 장터다. 3000여명의 건설 노동자가 일자리를 위해 이곳으로 모였고, 당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새벽부터 길거리에서 술판을 벌이기 일쑤였다. 고성과 싸움으로 동네는 몸살을 앓았다.
월메이드는 주민 설문조사를 통해 남구로역 주변을 범죄 예방 디자인 대상 골목길로 정했다. 중국 동포 거주 비율이 높은 지역 특성을 반영해 대나무, 판다 등 중국인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벽화 소재로 선택했다. 이후 월메이드 직원이 밑그림을 그리면 지역주민, 자원봉사자들이 페인트로 색칠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허 대표는 "당장 범죄율이 떨어진다는 수치적인 효과를 논할 수는 없지만 일단 환경이 환하게 변하면 행인이나 지역주민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월메이드는 기업들과 함께 벽화 그리기 활동도 하고 있다. 현재까지
현대건설(000720), 포스코에너지,
삼성SDI(006400) 등 30개 이상의 기업들과 일회성 또는 연간 계획으로 벽화그리기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예전에는 기업들이 단순히 기부금만 냈지만, 최근에는 임직원들이 직접 참여해 지속적으로 도움이 되는 봉사활동이 느는 추세다. 특히 벽화는 임직원들이 쉽고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고, 시각적인 결과물도 나오는 일이다 보니 봉사자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허 대표는 "공공기관과 함께 진행하는 예산사업, 기업의 사회공헌활동과 연계해 매년 30% 이상의 매출 성장을 달성하고 있다"며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제작 과정의 공익성과 결과의 지속성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으로 진행된 벽화그리기. 사진/월메이드
"마을 공동체 회복에 기여, B2C도 진출"
허 대표는 월메이드의 지향점으로 '마을 공동체 회복'을 꼽았다. 그는 "일반적으로 도시 재생이 필요한 마을들은 환경이 좋지 않고 지역민들의 자부심이 낮은 경우가 대부분으로, 공동체 의식도 전무하다"면서 "공공 예술작업이 마을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사람과 사람을 만나는 계기를 만드는 고리역할은 해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어 "특히 공공 예술은 삭막하고 건축적으로 특징이 없는 우리나라 주거환경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며 "작업 스케일상 작가 혼자 할 수 없고 소통이 수반되는 작업이기에, 우리사회의 최소 안전망이 되어야 할 마을 공동체 회복에 기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좋은 작품과 프로젝트도 발굴해야 한다. 그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콘텐츠 개발로 상상이 실현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월메이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는 월메이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이기도 하다.
콘텐츠 개발을 위한 시작으로 올해는 '아트 타일'을 개발해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시각 예술가들과 협업해 아트 타일을 만들어 냄비 받침 등으로 제품을 양산해 출시한다. 향후 품목을 다양화해 나갈 예정이다.
허 대표는 "문화예술회사이다 보니 콘텐츠 개발 역량을 강화해 우리 회사만의 킬러 콘텐츠를 발굴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트 타일을 떠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 공공기관과 협업하는 B2B(기업간 거래) 분야만 하다 보니 한계가 있다"며 "B2C 제품을 통해 소비자에게 친숙한 월메이드가 되고자 한다"고 부연했다.
아트 타일 제품 개발을 통해 예술가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도 B2C 시장에 진출하는 이유다. 허 대표는 "프로젝트성 사업으로는 기업 지속가능성과 예술가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어렵다"며 "예술가들과 잘 팔릴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해 이들을 월메이드 플랫폼 안에 품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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