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은 우리 능력껏 최대한 ‘유럽가족’을 재창조하여, 그 가족에게 안정된 구조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유럽 대륙이 평화, 안전, 자유 속에서 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리는 유럽합중국을 건설해야만 합니다. (…) 이 소란스럽고 강력한 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확장된 애국심과 공통의 시민정신을 부여해줄 유럽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유럽을 일어서게 하라!”
위 내용은 1946년 9월19일,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윈스턴 처칠이 한 연설의 일부 내용이다. 2016년은 처칠의 연설이 나온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2016년 6월23일 영국. 영국은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 잔류와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51.9%가 탈퇴를 선택했다. 세계 5위 경제대국인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전 세계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불확실성의 시대로 몰아넣었다. 법률적으로 내년 초에 이루어지겠지만 정치적으로는 이미 유럽연합과 결별의 길에 들어섰다. 유럽연합의 해체라는 판도라상자가 열린 것이다.
독일 베텔스만 재단은 이러한 판도라상자에 대해 분석한 적이 있다. 영국의 예는 아니지만 그리스와 포르투갈이 동시에 탈퇴할 경우, 실업률 상승과 수요 감소라는 측면에서 두 나라는 물론이고 유로존 전역이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된다고 보고했다. 만일 스페인이 탈퇴한다면 미국의 손실은 2020년까지 1조2000억유로로 추정되고, 이탈리아마저 탈퇴한다면 독일은 1조7000억유로, 미국은 2조8000억유로, 중국은 1조9000억유로를 잃게 되어 세계 경제는 위기로 치달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렇듯 지금 브렉시트는 유럽의 문제만이 아니다.
알려졌다시피 유럽연합의 모델은 미국, 즉 미합중국이었다. 연방제를 바탕으로 경제적 통합을 거쳐 이후에는 정치적 통합까지 이루고자 했던 유럽연합은 새로운 정치를 꿈꾼 유럽주의자들에 의해 여기까지 왔다. 근대와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끊임없이 벌어졌던 유럽의 분쟁과 갈등을 치유하고자 했던 장 모네와 같은 유럽주의자들의 상상을 현실 정치인들이 받아들이면서 현실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상상’이 비전이었던 유럽연합이 무너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유럽주의자들의 상상이 몰락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 오늘 우리는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우리 대부분에게 별 의미가 없습니다. 부의 대부분을 한 줌의 개인들이 소유하고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미국은 지구상 다른 어느 주요 국가보다 소득과 부가 불평등한 나라이며, 1920년대 이후 어떤 시대보다 빈부 격차가 큽니다. 부와 소득 불평등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도덕적인 문제이자, 우리 시대의 막중한 경제이슈이며, 우리 시대의 심각한 이유입니다. (…)”
위 내용은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출마한 버니 샌더스의 대선 출마 연설문 중 일부다. 미국 민주당 대선에서 돌풍을 몰고 온 진보적 민주주의자이자 민주적 사회주의자인 샌더스는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 열풍과 동전의 양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가 소득불평등과 실업에 따른 서민들의 고통을 이민자와 인종차별, 범죄자라는 ‘증오’에 기반하고 있다면, 샌더스는 초부유층의 경제독식과 월스트리트의 금융범죄 등 경제적인 요인의 ‘변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 사회라는 똑같은 현실을 두고 전혀 다른 대처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브렉시트도 마찬가지다. 소득양극화와 실업의 증가로 인한 영국 사회의 위기라는 똑같은 현실을 두고 잔류와 탈퇴라는 전혀 다른 처방을 내린 것이다. 누구의 선택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은 아직 내리기엔 섣부르다. 이것이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 또한 아직 가늠이 되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문제는 브렉시트와 트럼프, 샌더스의 출현이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글로벌 경제에 대한 변화 요구이다. 세계화한 경제가 여러 나라 대다수 사람들을 위해 작동하지 않고 경제 엘리트들에 유리한 경제모델이라는 비판이다.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는 동안 많은 노동자들이 그들의 삶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고 이들이 곧 유럽연합과 세계화한 경제에 등을 돌렸다는 평가를 단지 정치적, 경제적 편향성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정확한 민심의 진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할 때인지도 모른다.
2016년은 미국이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해이다. 영국 또한 새로운 총리를 뽑아야 하는 정치적 상황이다. 미국과 영국이 세계경제와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을 볼 때 대통령 당선자와 총리의 면모가 주요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글로벌 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브렉시트와 같은 현실에서 올해가 세계화된 자유무역 경제의 새 틀을 짜는 ‘정초선거(founding election)’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 세계가 급변하고 있다. 우리가 평생고용과 같은 상식으로 간직하고 있던 구조가 IMF 시절 속절없이 무너진 것처럼 지금 세계의 변화에 누구보다 깨어있어야 할 때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이 어디로 흐를지 가장 민감하게 촉수를 세우고 있어야 한다. 여야가 전당대회와 내년 대선으로 치닫기 시작하는 요즘, 2017년 우리는 과연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정초선거를 준비하고 있는가? 문제는 정치다.
양대웅 코리아 아이디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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