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등 금융협회들이 2인자 자리인 전무직에 관피아(관료+마피아)나 금피아(금융감독원+마피아) 출신을 내정해 놓고 정부와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다.
금융당국의 암묵적인 요구에 장기 공석으로 남겨두면서 여론의 역풍이 덜 한 타이밍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 협회 내부에서는 민간출신 협회장이 선임됐으니 2인자 자리에는 힘 있는 당국 출신이 내려와야 한다는 분위기도 읽힌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공석인 은행연합회와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전무 자리에 금융당국 인사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연합회의 전무직에 금융위원회 출신 간부가 내정됐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금융위원회 퇴직자가 은행연합회 전무직에 내정됐다"며 "관료 출신을 앉히려는 시도가 두번이나 무산되자 매우 조심스러운 상태로,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은행연합회의 전무직은 민성기 전무가 올해 초 신설된 신용정보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 7개월째 공석으로 있다. 은행연합회는 김형돈 전 조세심판원장을 전무로 선임하려 했지만 공직자윤리위원회 취업심사에서 취업불승인 결정을 받으며 두 차례나 전무 인선에 발목이 잡혔다.
생명보험협회 전무에도 금융위원회 출신 과장이 내정됐다. 이 간부는 이달 말 열리는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받게 된다. 생보협회는 지난해 9월말 오수상 부회장이 임기를 끝내고 전무자리가 지금까지 공석이다.
손해보험협회의 전무 자리 역시 금융감독원 출신 국장이 내정됐다는 설이 돌고 있다. 손보협회는 지난해 1월 장상용 전 부회장이 퇴임한 뒤 19개월째 공석으로 있다.
이들 관피아, 금피아 인사들이 금융협회 고위직에 내정된 상태지만 금융협회들은 정식 선임을 주저하고 있다. 결국 금융당국 퇴직자들에게 자리를 내주느라 전무자리를 수개월째 공석으로 남겨뒀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 등 금융협회들은 그동안 금융당국 출신 인사가 차지했던 부회장직을 없애고 정관까지 변경해 전무 자리를 새롭게 신설하는 등 적극적으로 관피아 척결에 나섰다.
하지만 2인자 자리의 직책이 부회장에서 전무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협회 2인자 자리는 금융당국의 몫이라는 인식은 달라진 게 없는 상황이다.
한 협회 관계자는 "금융협회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하나같이 전무 자리를 공석으로 두고 있다"며 "금융당국이나 정부 관료 출신의 몫이니 함부로 손을 대지 말라는 시그널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으로부터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인사가 오기를 기대하는 협회들이 이런 파행을 스스로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금융권 인사는 "금융협회 내부에서는 최근 협회장들이 민간 출신들로 채워졌으니 당국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관피아나 금피아 인사가 2인자 자리에 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며 "그렇다 하더라도 수개월째 공석으로 두면서 낙하산을 기다리는 모양새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정부 주최 행사에 참석한 금융협회장들. 왼쪽부터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 이수창 생명보험협회장,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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